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07. 5. 29. 19:57
아버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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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병으로 누운뒤 수연이네 집은 언제나 우울했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끝내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몸의 반쪽이 거의 마비된 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했다.
말수가 없던 아버지는 병으로 누운뒤 더 말이 없어지고
깊게 그늘진 눈으로 온종일 방 안 천장만 바라보았다.
"아주 잘했구나, 성준아. 고맙다.' 
하지만 엄마는 이내 쓸쓸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 등록금까지 마련한다는 것은 엄마에게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다.
게다가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 자취나 하숙까지 해야했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봉제공장에서 버는 돈만으로
엄마는 허망한 얼굴로 땅이 꺼지도록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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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대학에 못 들어가서 난린데. 우리집은 왜이래. 말도 안돼.
이번에 등록금 못 내면 나는 집을 나가서 혼자 살거야,
그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엄마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에게 해줄 일은 산더미 같은데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어떡해요.
나 혼자 둥둥거려 봐야 밥 먹고 살기도 힘들잖아요"
설움에 복받친 엄마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엄마는 깡마른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꺽꺽 흐느꼈다.
그런 엄마가 가엾어서 수연이도 옆에 앉아 훌쩍였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힌 엄마는머쓱해진 얼굴로 아버지를 위로했다.
당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 줄, 전들 왜 모르겠어요.
아까는 하도 속이 상해서 그랬어요. 마음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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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집을 나간 성준은 며칠이 지나도록 소식이 감감했다.
그런데 안방 문틈 사이로 아버지의 느릿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어장애가 있는 아버지는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더듬더듬 거리며
"여....여.......여보세요. 제.....제가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아버지의 힘에 겨운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제....제 아들놈, 대..........대학 등록금 때문에.. 
그 .......그....그러는거니까....꼭......꼭
좀 부....부탁드립니다. 꼭...........꼭이요."
문득 오래전 학교 선생님이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사랑은 등대 같은 거야.
밝은 낮에는 태연한 척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가,
어두운 밤만 되면 깜박깜박 제 몸을 밝히는 등대와도 같은 게
아버지들의 침묵 속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담겨 있는 거야." 
꽉 다문 입술을 비집고 자꾸만 자꾸만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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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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