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간의 교장자격 시도연수를 받으며....
아직은 쌀쌀했던 두주전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7시 40분경 수원시 교육청에서 곽**교감님을 만나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연수였던가!
경기도 여주의 일성 남한강 콘도미니엄에 9시경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입소식하러 2층으로 내려갔더니, 벌써 많은 분들이 오셨다. 2004 교감 동기생들이 47명이 함께 받는 연수라 서로 낯익은 얼굴들이 보여 반가웠다.
입소식을 마치고 나서 강의가 시작되고, 점심먹고 다시 강의가 이어지고 저녁을 먹고 신륵사 주변을 산책하고 서로의 정을 나누었다.
다음날 부터 연수 일정은 9시10분부터 강의가 시작되어 1시에 점심식사를 하고, 2시부터 5시까지 강의가 진행되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연수를 받는데,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결림은 어인일인가!
첫주의 특강과 앞으로의 직무를 위한 강의는 앞으로의 직무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 다 내 생각과 같으랴!하면서 열심히 들어보았다. 두번째 주 월요일 아침부터 논술시험이다. 미리 준비해간 자료를 토대로 작성하는 것이지만, 연수생들의 진지한 태도에 조금은 감동을 받았다.
아직도 시험이 이렇게 따라다니다니....그래도 부담이 적은 시험이기에 마음은 홀가분해 졌다.
이어지는 강의는 긍정의 힘으로 새롭게 변하라는 내용이다. 교장으로 나가면 지난 모든 것을 잊으라고 하였던 내용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래 그동안의 내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내가 연수 떠나가기전 직원회의에서 부탁했던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제목으로 부탁했던 내용이다.
재작년 혁신 연수에서도 그랬지만, 마찬가지로 <내가 먼저 변하여야 한다> 는 것이다.
2주 3일째 수요일 현장견학으로 2004교감 연수때 보았던 명성황후 생가와 세종대왕릉, 목아박물관을 관람했다. 명성황후 생가옆에 전에 보지 못했던 박물관(?)인가가 새로 생겨 눈길을 끌었지만, 총무님의 재촉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오후 3시경인가 여주자영농고를 방문했었다. 학교 대지가 30만평이라고 하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무지하게 넓은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화훼 시설과 edufarm을 방문하면서, 요플레도 시식해보고, 선물로 계란과 소시지를 받으며, 아쉬운 시간을 달랬다. 정말 농업이 발전해야 안정적인 삶을 살 수가 있을 텐데....하는 서글픈 마음을 가지고 차로 돌아왔다.
우리의 농업은 점점 사양길인데, 어떻게 세계의 식량무기화에 대처할 것인가! 불과 식량의 무기화가 올것이라는 것을 염려했던 것이 10년도 안되었는데, 벌써 우리는 경험하지 않는가 말이다.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 함께 생활했던 10일간이 지나고 보니 빨리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연수였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비워지지 않아 더 많은 것을 담을 수가 없었음을 깨닫고 돌아왔다.
다음 주에 시작하는 교원대학교에서의 315명의 전국구 교장연수에서는 고집과 아집을 버리고, 더 큰 그릇을 가지고 가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내 자신이 되어보려고 합니다.
오늘 토요일 아침 출근해 보니 두주동안의 학교 생활을 챙겨보았는데, 부장님들을 비롯해 모든 선생님들이 열심히 노력해 주신것을 보고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교장님께 죄송스런 마음은...... 내 가슴저쪽에 남아 있었습니다.
앞으로 받는 연수내용 알려달라는 주문에 충실하렵니다. 다음기에 가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의 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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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를 바꾼다 해도.
사람이 고통을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환경 때문일까? 아니면 그 환경에 대처하는
대처방식 때문일까?
죽음 등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피한 환경이 존재하기에 그 누구도 환경의
영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 직전까지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음 또한 부인 할 수 없을 게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고통스런 환경 때문이 아니라 그 환경
에 대처하는 대처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인지 심리학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긍정적 사고주의자로 잘 알려진 폴 J. 마이어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한 노인에게 어느 젊은이가 찾아와 물었다.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노인이 되물었다.
“당신이 전에 살았던 고장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그야 아주 고약한 무리들이었죠. 모두들 심술 사나운 놈들이었어요. 그곳을 떠나오
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곳 사람들도 아마 같을 게야.”
잠시 후 또 한 젊은이가 노인을 찾아와 물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노인은 아까의 젊은이에게 말한 것과 똑같이 되물었다.
“당신이 전에 살았던 고장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요?”
젊은이는 “모두들 좋은 사람들이었지요. 정직하고 우정도 두텁고, 게다가 친절하거든
요. 그 사람들과 헤어지기는 정말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떠나왔지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말했다.
“이곳 사람들도 아마 같을 게야.”
좋은 환경이냐, 좋지 않은 환경이냐는 환경 그 자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
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는 이야기이다.
교우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다른 교우에게 돌리고 싶고 또 이미
그렇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이 다른 교우가 아닌 내 태도 혹은 내
대처방식일 수 있다. 부부간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제의 진짜 원인은 배우자가 아닌
내 시각과 태도 때문일 수 있다.
좋은 교우관계 혹은 좋은 부부관계를 만들 수 방법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환경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시각을 갖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배우자를 바꾼다 해도, 교회를 바꾼다 해도 머잖아 또 다시 그 문제
가 다시 찾아와 친구 삼자고 할 것이다.
(2008년 2월 14일)
-송 남 용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