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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20. 12. 25. 12:29

오늘은 크리스 마스 우리 가정에 기쁜 크리스마스 선물이 배달되었다. 

 

70 평생 살면서 만나는 크리스마스이지만 오늘은 특별하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답답해하고 있는데 모처럼 들리는 낭보이다.

몇 일전 아내가 쓴 글이 사)창작 수필 문인회 주관 2020년 제23회에서 큰 상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문학상으로 ‘현대문학상’ 3인과 ‘우수상’ 3인을 선발해 시상하는데 아내 이경숙의 작품이 우수상에 뽑힌 것이다. 갑작스런 소식에 아내는 어리둥절.

 

작고 소소한 공간

 

 

이 경숙(수원)

 

창밖에 연이어 떨어지는 빗방울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창틀에 매어놓은 작은 화분에 심긴 화초에 언제쯤 꽃봉오리가 터질까 매일 아침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것, 어디선가 날아와 작은 잎사귀에 앉아 가만히 날개 짓하는 잠자리를 숨죽여 가까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 소소하고 가슴 떨리는 기쁨을 통해 베란다를 작고 사랑스런 공간으로 만들기 전에는 몰랐다.

 

유난히 긴 장마와 코로나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예전엔 보이지 않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나무 바닥재를 깔고 햇볕 강한 오후의 볕을 가려줄 블라인드를 달았다. 자그마한 탁자를 창 옆에 놓고 예쁜 천으로 옷을 입혔다. 마주보며 앉을 의자도 놓고 창가엔 작은 화분을 매달아 놓았다. 앙증맞은 작은 꽃과 푸른 잎사귀가 싱그러움을 선사하고 밋밋하던 창문에 표정이 생겼다. 차와 음악 그리고 좋아하는 책등을 구태여 이곳으로 끌어들인다.

무엇보다 창가에 탁자를 놓고 밖을 쳐다보며, 부딪히는 거센 빗방울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비 그친 후 멀리 아이들이 그네 타며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 거기엔 어릴 적 우리 아이들이 놀고 있다. 창이란 안과 밖을 완벽하게 차단시키면서 밖과 소통하게 만든다. 밖의 모습이 더 잘 보이도록 창을 깨끗이 닦는다. 내 마음의 창도 밖을 밝게 바라볼 수 있게 닦아야지 다짐도 해보면서..... 잊혔던 옛 시간들이 이 작은 공간에 살며시 찾아 온 것만 같다. 생각지 않게 보고 싶던 친구가 찾아온 것같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집 거실에도 햇볕이 잘 들어오는 커다란 창이 있었다. 햇볕이 아까워 그때에도 식탁을 끌어다 창가에 놓았다. 식사를 해도 차를 마셔도 책을 보아도 훨씬 행복했던 기억이 나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었나 보다. 다락으로 옥상으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던 아들딸이 이제는 모두 부모가 되었다. 지금도 내 자식들은 어릴 적 살았던 햇볕이 깊이 들어오던 따뜻하고 밝은 그 공간을 그리워한다.

 

코로나로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이때 모처럼 사랑스런 손주들이 왔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있다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 베란다를 캠핑장으로 만들어 주어야지…….남편이 거실에 작은 텐트를 쳐주니 두 녀석은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그들만의 공간이 녀석들을 행복하게 한다. 오늘의 메뉴는 스테이크다. 이제 겨우 한글을 알아가는 큰 녀석에게 한글도 가르칠 겸 거기에 들어갈 재료를 써보라고 했다. 양파니 당근이니 버섯, 마늘 등을 써보라 하니 삐뚤빼뚤 열심히 쓴다. “오늘의 쉐프는 바로 너야”하니 신이 나서 어서 고기 사러가자 한다. 작은 녀석도 신나서 엉덩이를 씰룩이며 덩달아 나선다. 손주들과 함께 장보러가는 내 발걸음도 가볍다. 베란다에서 고기 구울 준비를 하니 자기가 쉐프라며 나선다. 야외 기분이 나는지 녀석들이 텐트로 베란다로 신나서 들락거린다.

 

캠핑을 좋아하던 남편 때문에 아이들 어렸을 때 참 많이도 다녔다. 지금보다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아들은 아빠를 도와 텐트를 치고 우리는 함께 음식을 만들고,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부부는 덩달아 행복했다. 한밤엔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아침엔 새소리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잠을 깨웠다. 다시 생각해도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이제는 우리의 아이들이 제 자식을 데리고 캠핑을 가는 나이가 되었다. 내 나이 때의 딸을 보니 지금의 내 나이가 새삼스러워 지기도 한다.

 

“우리가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은 우리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무심히 보던 공간을 발견하고 사랑해주니 말을 걸어왔다. 무심하던 내 마음의 공간도 들여다 봐야하겠다. 잡아 달라고 내미는 손을 못 본 척 외면해 온 것들이 내 마음속에 얼마나 많았던가. 요즘은 숨통이 트이는 공간이 좋아 조금씩 집안의 물건들을 치운다. 공간이 넓어지니 마음의 바람 길이 생겼다. 내 마음속 공간도 여유있게 넓혀가야 하는데 아직도 군더더기를 치우지 못하고 있다.

 

계속 퍼부어대는 비로 베란다에 매단 여린 꽃이 상처를 입었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기특하게도 그 여린 잎은 더 힘차지고 봉우리 졌던 꽃망울은 드디어 꽃망울을 터뜨렸다. 비온 후 더 강해지고 부는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흔들리며 꽃을 피웠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흔들리며 피는 그 사랑스러운 꽃을 보며 많은 것을 깨닫는다. 안에 들여놓은 꽃은 아무리 물을 주어도 색이 선명하지도 탐스럽지도 않더니 비바람 맞으며 견뎌낸 꽃은 더 선명하고 탐스러웠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쉴 틈을 주지 않고 시끌 벅적 거리던 사랑하는 손자들이 돌아갔다. 우리는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엔 남편과 단출한 음식으로 우리만의 캠핑을 즐겨봐야겠다. 이 작고 소소한 공간에서…….

 

의미 없던 공간을 의미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소소한 행복을 느끼듯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렇듯 멋지게 변신할 내 삶의 공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