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자전거 여행(안좌도-팔금도-증도- 지도)
자은고교 선착장에서 증도로 가는 2시 40분 배를 타기 위해 박지도에서부터는 서둘러 안좌도로 나와 달렸다. 처음엔 고교라고 해서 고등학교 인줄 알았다. 그러나 지명이었다는 것은 곧 알게 되었다.
안좌도와 팔금도를 지나, 암태도에서 은암대교를 넘었다. 자은면의 고교선착장까지 가는 동안 몇 개의 언덕을 넘었다. 산고개를 넘자 바다가 보이고 부두에는 여객선이 정박해 있다. 2시 20분이다, 표를 구입하고 배에 오르자 2시 35분, 5분 뒤에 여객선은 자은도에서 증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승선한 것이다. 이 배를 타기 위해 충분히 쉬지 못하고 페달을 밟아야 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은 여러개의 섬으로 되어있고 슬로시티로 유명하다. 우전해수욕장, 증도염전이 위치해 있으며, 이곳 소금은 유명하다고 한다.
현재는 증도대교가 생기면서 가기가 더 편해진 증도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 주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100선에 2위에 뽑힐 만큼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1위는 같은 신안군인 홍도)
현재 증도대교가 건설되어 간척화로 육지화된 지도읍과 연결되어 있다. 1950년 10월 자생공산당원들에게 기독교인 수십명이 살해당한 슬픔이 담겨있는 곳이기도 하며, "문준경 전도사 순교 기념관" 은 기사로도 소개되어, 한 해 기독교인 10만명이 찾을만큼 국내 최대의 기독교 성지 중 한 곳이 되어 있다.
증도면에 엘도라도 리조트라는 휴양지가 있으며 근처 우전리에는 증도 우전해수욕장이 있다. 육지와 잇는 증도대교가 생기면서 자가용으로 접근이 가능하게 되어 관광객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출처: 나무위키)
증도에 도착, 배에서 내려 부둣가에 있는 정자에 올라가 잠시 쉬면서 지도를 보고 최종 목적지인 임자도의 방향을 확인했다. 임자도를 향하여 달려가지만 오후3시로 목적지까지 가기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가다가 해가 기울면 중간에서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출발하여 100미터쯤 가니 부녀자들이 길가에 앉아 새참을 먹고 있다. “맛있게 잡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니 남자 한 분이 “막걸리 한 잔 하고 가세요.” 권하였다. 그러나 일행도 있고, 일하고 쉬는 그분들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냥 달렸다. 가다보니 일행이 오지 않아 잠시 서서 기다렸더니 친구는 그분들이 주는 막걸리를 한 잔 얻어먹고 오느라 늦었다는 것이다.
증도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 듯 펜션들이 많이 보인다.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몇개의 리조트와 숙박할 수 있는 곳이 보이더니 그 후로는 숙소가 보이지않는다. 벌써 해는 기울어간다.
증도면 우전리를 지나니 우람한 정자나무가 길가에 서있다. 신안군 보호수라는 표지판이 있어 자세히 보니 무려 500년이나 된 팽나무였다. 등굽이가 심해 목재로 쓰기에는 부적당하겠지만 마을의 풍치에는 일품이다. 정자나무 잎이 단면으로 보면 은행잎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잎이 아주 무성하고 나무둥치들이 여러 가닥 맞붙어 있어어 둘레가 무려 430 cm나 된다. 내 스마트폰은 자전거에 부착된 상태로 길을 찾는데 쓰이고 있어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다.
지도증도路를 달리다보니 넓은 염전이 나왔다. 신안의 특산물, 소금밭이다. 이 염전은 전형적인 어촌의 모습이다, 소금 창고와 염전이 연결된 폭 좁은 철로가 있다, 소금을 실어 나르기 위한 궤도로 보였다. 염전에서 조금 더 달리니 좌회전하기 직전에 비교적 큰 카페가 있다. 관광객을 실어 온 버스가 길가에 있고 여러 대의 승용차가 주변에 주차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붐볐다. 차 한 잔하기 위해 들어갔다. 바다와 증도대교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카페다. 첫날 천사대교를 건널때 자전거 통행금지라 애를 먹었던 일이 있어, 나는 앞에 보이는 증도대교를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몇분에게 물었지만 그들도 관광객이라 모른다고 한다. 종업원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너무 바빠 말도 건네지 못했다. 문교수님이 안으로 들어가 샤베트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관광객들이 모두 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어 사왔다는데 일명 소금아이스크림이란다. 저녁 바닷바람이 차갑지만 특별해서 작은 스푼으로 떠 먹었다. 신선한 느낌이 들었는데 약간 짭짤한 맛이 있다. 바람이 차가운데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스산했는데 동료가 다시 따끈한 엉겅퀴차를 사왔다. 큰 컵이라 양이 많아 다 미시는데 10분 이상의 시간이 결렀다.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떠나니 한산해져 일하는 종업원에게 우리가 자전거로 증도대교를 넘을 수 있는가를 물었다. 그때야 대답해 준다. "아마 갈 수가 있을 거에요. 전에 자전거 타고 온 손님들이 그곳으로 갔으니까요"
카페의 야외벤치에서 팀장님이 여행객들에게 사진촬영을 해준다. 팀장이 재주가 많아 사진도 잘 찍는다. 찍어 준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들었나 보다.
신안군은 섬이 많은데 다리를 놓아 연결해 주고 있다.
서서히 땅거미가 짙어오는 시각, 증도대교를 통과해 임자도로 가기위해 출발한다. 거리가 멀어 오늘 도착할 수가 없어 해 지기전 숙소를 잡아야 한다. 카페에서 출발하니 길 우측에 바다를 막은 나즈막한 둑이 있다. 둑 경사지에 1 m 정도의 작은 나무에 파란, 노란 열매가 맺혀있다. 팀장님이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며, 확인해보니 돈나무였다. 제주도의 도두섬에 돈나무 터널이 있는데 그 나무는 키가 2 m가 넘는데 이건 1m도 되지 않아 작은 반송 모양이었다. 그래서 돈나무로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그 작은 나무들이 둑을 따라 1 km 정도 줄지어 있다. 아마 식재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달려간다.
육지보다 해가 빨리지는 느낌이다. 아마 산이 없어 곧바로 바다속으로 빠지기 때문일까?
증도大橋로 오르기 전, 자전거에서 내려 패딩점퍼를 꺼내 입고 자전거의 앞뒤에 라이트를 켰다. 증도대교도 큰 다리였다. 다리를 지나 조금 더 달리니 또 다리가 나온다. '지도대교'다. 우리가 진행하는 우측 가장자리에 인도가 있으나 공사 중이어서 막아놓았다. 벌써 어둑어둑해 졌다. 할 수 없어 반대쪽의 인도로 건넜다. 다리를 다 건넜는데 인도가 없어지면서 바로 차도가 나온다. 어찌할까? 다리좌측 아랫쪽으로 식당과 모텔의 간판이 보였다.
반대쪽 오른쪽으로 도로를 건너 더 나아갈 것인가 여기서 내려가야 하나?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길은 없어지고 팀장도 길을 모르니 모텔로 들어가는 입구를 알 수가 없다.
팀장은 거기서 저녁을 먹고 숙박하면 되겠다고 말하는데 내려가는 길이 없다. 마침 길옆으로 내려가는 철계단이 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풀덩쿨로 뒤덮여있다. 팀장님이 먼저 자전거를 들고 그 계단으로 내려갔는데 맨 밑에서는 길이 없어졌다. 없는 길을 내며 자전거를 들고 풀숲을 헤쳐 간신히 도랑을 넘었다. 내려가서 보니 옷에 여러 종류의 많은 씨앗들이 옷에 붙어 떼어내느라 힘들었다. 섬에는 도깨비 풀이 도로 양옆에 많이 자생하고 있다.
100여 미터를 달려가니 좌측으로 송도 수산시장이 있고 우측에는 식당 몇 개가 보인다.
지도 대교에서 본 모텔은 불이 켜있지 않았다. 다른 곳을 찾으니 언덕 위에 조명이 선명한 ‘일번지모텔’이 보였다. 경사가 심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주인에게 방이 있는가를 물어보니 큰 방 하나가 있다고 한다. 온돌방이라고 한다. 뭐 선택할 상황이 아니다. 오늘은 주말인데다 이곳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장기간 임대하고 있기 때문에 방을 얻기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온돌방을 얻어 가방을 방에 두고 내려와 식당으로 갔다. 이곳 지명이 지도(Jido)이다. 참 특이하다. 처음에는 map이라고 생각했는데......
음식점에 들어가 메뉴를 보니 대부분 회 종류였다.
미식가인 문교수님이 이곳에 '서대탕'을 먹으러 온 적이 있었는데 철이 맞지 않아 못 먹었다며 그걸 추천해 서대탕을 주문했다. 난 처음 듣는 음식이다. 먹어보니 고기가 비린 맛이 없고 국물은 맑은 느낌이 들어 맛이 좋았다. 냄비가 작아 먹을 게 별로 없겠다 싶었는데 고기가 많이 들어 셋이서 충분히 먹었다. 후덕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다음에 또 오라고 한다. 문교수님 덕택에 태어나 처음 맛본 음식이었다.
식당에서 나와 어시장 옆으로 부두로 걸어갔다.
지도대교와 항구의 불빛이 현란하다. 밤풍경이 좋아 사진도 촬영하고 데크를 따라 잠시 걷다가 숙소로 들어왔다. 오늘 하루도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 교수님은 피곤하다고 눕고, 나는 팀장님과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다가 자리에 누웠다. 행복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