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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양식/감동이야기1

백영훈 박사 이야기1

 

백영훈 박사, 독일연방공화국 대십자훈장 수훈
 
 
http://kid.re.kr/management/dataread.asp
의 management에 실린 글입니다.


"1964년 11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빈자격으로 서독을 방문할 때 통역관으로 대통령을 수행하여 독일을 방문해 루프게 독일 대통령과의 회담을 수행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독일에서 차관을 얻어 국가가 발전하는데 일조한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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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06-25


  백영훈 박사는 한독경제 협력 40주년을 맞아 양국간 이해증진과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최대 공로자로 선정되어 지난 3월 5일 독일 대통령이 수여하는 독일 연방공화국 대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
  휴버트 모어 독일 대사는 축사를 통해 "저명한 인물은 번지르한 말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능력과 업적에 의해 만들어 진다." 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지난 40년간 간호사 및 광산근로자 독일파견, 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경협차관, 국가 경제발전 계획입안 등 한·독 양국의 관계발전을 위해 애써오신 백영훈 박사님의 탁월한 업적과 기여한 공로에 대해 본인이 독일 연방공화국 대통령 이름으로 독일 대십자훈장 서훈식을 거행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백영훈 박사는 독일정부 대십자훈장 수상소감에 대해 독일인들이 40년전 일도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건 한국에 대한 지대한 관심의 표명이라 생각한다며 이번 수훈을 계기로 경제활동의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독일인의 질서경제를 한국에 재조명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독일대사관저에서 거행된 수상식장에는 서영훈 대한적십자자 총재,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 김민화 평통자문회의 부의장, 박전상 KBS사장 등 150여명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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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과의 첫 번째 인연
 
  백영훈 박사가 독일과 첫 번째 인연을 맺은건 5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32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후 54년 우리나라 첫 국비유학생으로 독일(당시 서독)땅을 밟았다. 서독 �른 대학과 뉴렌베르크 대학에서 경제학을 수학하고, 1958년 당시 28세의 약관 나이에 서독 에르랑겐 대학원에서 한국 최초의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국하여 중앙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4년동안의 독일 유학시절 학문뿐만 아니라 서독이 폐허의 잿더미 속에서 경제대국으로 일어서는 생생한 현장을 경험하였고, 그들의 성실함과 부지런함, 굽힐줄 모르는 용기와 책임감, 나혼자가 아닌 우리로 이어지는 강한 공동체 및 연대의식이 한데 엮어져 복지사회로 비약할 수 있는 사회의 안정과 성장된 국민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고 배웠다.
  1960년대초 우리나라의 경제실정을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는 반만년을 지탱해온 끈기와 저력의 역사 그리고 교육받은 지적자원 외에는 자연자원이 거의 없는 좁은 국토, 밀도 높은 인구, 청산되지 않은 구시대의 잔재, 한국전쟁으로 인한 폐허, GNP 80달러의 빈곤국가로서 주변국가에서 우리를 도와줄수 있는 나라는 없었던 것이다.
 
 
  5·16 군사혁명 정부와의 인연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당시, 5·16 군사혁명 정권은 국가 경제개발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경제재건을 위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하여 미국·일본 등에 경제원조를 요청하였으나 혁명정부에 대한 미국의 외면과 정상화되지 못했던 일본과의 관계로 경제원조는 기대할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때 5·16 군사혁명정부는 우리와 똑같이 2차대전으로 분단된 서독정부로부터 경제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독일을 잘 이해하고 독일어를 할수 있는 전문가로 중앙대학교 교수 백영훈 박사를 지목한 혁명정권은 백 박사가 병역미필자로 논산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소집되어 있음을 알고 국방부수속을 밟은 뒤 상공부장관 특별보좌관으로 발탁하여 서독경제 협력단을 구성하고 차관교섭을 위해 서독에 파견하게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번째로 독일과의 인연을 갖게된다.
 
 
  한·독 경제협력 40년
 
  백영훈 박사는 정태혁 상공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서독경제협력단의 일원으로 구성됐고, 상공부 장관 특별보좌관으로 차관협상을 위해 독일을 드나들며 1억5천만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들여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로써 우리정부는 1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사업을 착수할 수 있게 된다.
  서독정부로부터 상업차관이 결정되자 서독기업인들이 자기 제품 수출과 한국시장 진출을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합작사업의 기업파트너를 찾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한·독 경제협력의 발판이 열리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경제원조까지도 중단했던 미국은 서독과의 경제협력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미국기업인들은 한국시장 진출을 서둘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기업들도 서독, 미국에서 온 세계적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서 새로운 발전을 기약하는 역사적 계기를 맞게 된다.
  백 박사는 1964년 11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빈자격으로 서독을 방문할 때 통역관으로 대통령을 수행하여 독일을 방문해 루프게 독일 대통령과의 회담을 수행하게 된다. 당시 서독 수상이었던 에르하르트는 독일경제부흥의 기간사업들을 소개하면서 한국이 고속도로 건설과 자동차산업, 정유공장, 제철사업을 해보라고 적극 권유하였으며, 이것이 인연이 되어 경부고속도로의 건설과 울산 공업단지를 위시해 구미·창원 등 대단위 공업단지를 건설하는데 대통령 자문역으로 참여하게 된다.
  백 박사는 그후에도 정부를 대표하여 여러번 독일에 파견되었고 광부와 간호사들의 서독취업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을 현지외교관·교민들과 협의하여 처리하는 등 독일과의 경제·민간교류에 평생을 바쳐오고 있다. 외환 위기때는 독일상공회의소를 찾아가 한국 투자를 호소하여 독일기업들이 15억 달러를 한국에 투자하게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한강에 흐르는 라인강의 기적
 
  한국과 독일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양국모두 분단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고 부존자원도 풍부하지 못하지만, 타고난 근면성과 우수한 두뇌 그리고 경제도약에 대한 국민의 강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척박한 주변환경을 극복하여 왔다.
  1956년 한·독 협회가 출범한 이후 양국간 민간교류 협력은 각 부문에서 활성화되고 협력이 증진되어 현재 한국에 280여 독일기업이, 독일에 1백여 한국기업이 진출해 있고, 양국간 교역량은 1백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백영훈 박사는 1964년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뤼브케 서독대통령의 안내로 우리 광원들이 일하고 있는 루르지방 탄광지대를 방문한 때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우리들 기억에도 생생한 서독 광원, 간호사파견은 오늘의 한국경제를 있게 한 원동력이며 주춧돌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낯설고 물설은 이역만리 남의 나라 타국땅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광원 여러분!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여러분 얼마나 고국 고향 산천과 가족이 보고 싶습니까.... "
  박정희 대통령의 목메인 연설속에 뤼브케 서독대통령도, 광원도, 수행원도 한순간 숙연해지고 말았다. "고향을 떠나면 죽는 줄로만 알고 지내던 당시의 우리 국민정서에서 최초로 외국근로자가 된 간호사 및 광산 근로자 감정에서 그야 말로 식장은 눈물 그대로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백 박사는 한편 어려웠던 시절에 조국을 떠나 청춘을 바쳐 조국의 "혼"을 일구어낸 독일광산 근로자와 간호사들 중에서 생활이 어려워 40여 년간 고국을 한번도 다녀가지 못한 광부와 간호원들 위해 대한적십자사와 아시아나항공의 적극적인 협조와 후원을 얻어 지난해 70여명 초청하였고 지난 3월 21일에는 120명을 초청하여 고국을 다녀갈 수 있도록 하였다. 백 박사는 "지난날 우리경제발전의 초석을 일구어낸 이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근면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한국인의 참 모습이며 조국근대화의 기수라고 말한다.
  이번에 독일연방공화국 대십자훈장을 받게 된 것도 이분들의 덕분이다" 하면서 이들의 모국초청 방문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백영훈 박사와 그가 이끄는 한국산업개발연구원은 요즘도 독일의 환경기술도입, 2010년 세계해양엑스포 유치에 대한 독일의 지원, 대불공업단지개발을 위한 독일기업유치 및 외자유치 등 한독경제협력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동북아시아시대를 맞아 한·중·일을 중심으로하는 "신 경제 협력 연맹"을 창설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평생 학자의 길을 걸어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요즘 우리가 사상적기반을 소홀히하고 너무 물질중심으로만 살고 있다" 며 "선진국에 대한 모방보다 고유문화가 베어있는 국적있는 경제 모델을 재구축해야 한다" 고 역설하면서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독일인의 질서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http://www.systemclub.co.kr/netizen_2005.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