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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사진&그림 모둠

[스크랩] 세종대왕어진은 누가 그렸나?

 

 

                       영릉 세종대왕어진은 누가 그렸나?

 

                                                                        글 우암 선형길

 

   스승이신 혜촌 선생께서 세종대왕기념사업회의 요청으로 세종대왕 어진을 완성하신지도 벌써 이십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당시 세종기념사업회의 수장이셨던 분을 논현동(학동) 자택, 한쪽에 앉혀 놓고 벽에 걸어두신 대왕의 어진을 브리핑 하시듯, 긴 자로 조목조목 가르키시며 못내 못마땅하시며 혀를 차시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사실 그 분만이 아니라 나 역시도 아는 척 연신 고개만 끄덕일 뿐, 공감은 고사하고 도통 알아듣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저 아까운 금은 어떻하구요?" 하는 볼멘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당시 35돈의 순금 가루로 곤룡포의 가슴과 어깨 문양을 그리셨는데, 첫 번째 그리시다만 것은 구도상의 문제였는지 채색은 아직 하시기 전이었다. 두 번째 것은 가슴과 어깨의 금 채색이 약간 진행된 상태라 내심 그 금가루가 아까웠던 것이다. 세계기축통화인 달러화가 금환본위제로 바뀌었을 만큼, 세계의 황금 가격이 여타의 보석류에 비해 안정적이라 해도 20년 전이니 그 가치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그럼에도 선생께선 버려진 금가루에 대해선 눈 하나 까닥하지 않으셨다. 당시 영릉의 세종기념관에 전시, 보관 될 것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 후 한 달쯤 지나서 서른 다섯 돈의 순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가로 인수해 갔다. 20년이 지난 터라 그 색상이 많이 바랬지만, 세필로 대왕의 턱수염을 그리실 때는 두 눈이 충혈 되어 퍽이나 고생하셨다. 하루에도 너 댓 번씩 충혈 된 동공에 안약을 떨어뜨리신 그 모습을 내 어찌 잊겠는가?

   넷 상에 적잖게 떠도는 영릉의 세종대왕어진은 분명 혜촌 선생께서 그리셨다. 비록 이당 문하에서 동문수학하신 운보 선생을 스승께선 퍽이나 존중하셨지만 두분의 화풍은 퍽이나 다르셨으니 넷 상에 떠도는 부정확한 사실들을 바로 잡음이 제자 된 나의 도리라 생각한다. 그 빛이 많이 바랬다 해도 운보화백이 그리신 거라면 그 구도며 대왕의 얼굴 윤곽이 어찌 내 기억과 그리도 같을 수가 있겠는가? 언제 영릉에 들러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겠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대왕의 모습과 젖혀진 양쪽의 옷자락까지 어진의 구도는 분명 내 스승이신 혜촌 선생의 솜씨인 것이다. 운보 화백의 건강 악화로 구도가 확정된 그림을 혜촌선생께서 완성하신 거라고 억지를 부린다면 두 분의 친밀한 관계로 유추해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어진이 완성된 후에도 운보 선생은 퍽이나 오랜동안 생존해 계셨고 작품 제작도 하신 것으로 안다. 더구나 서로 준중하시고 예를 다하신 두 어른들 사이에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거니와 이후에도 있어선 아니되겠다. 넷 상에 떠도는 그림 사진 중에는 그 작가가 뒤바뀌어 있는 것이 적지 않은 것 같다.

 

 

                                         2008. 1. 14

  

출처 : 사랑방 쉼터
글쓴이 : 낙엽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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