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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양식/마음의양식

[스크랩] 1 1, 5 5의 오답 <수필>

  1+1, 5+5의 오답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한 서너 달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국어 시험을 보았다면서 붉은 색연필로 80점이라 적힌 시험지를 내 놓았다. 자신의 점수가 좋은 점수인지 나쁜 점수인지 개념조차 없어서인지 아무런 표정이 없다.

  이 녀석은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책을 많이 읽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과목에 비해 유난히 국어에 흥미를 느끼고, 글도 나이에 비해 잘 쓰는 편이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한데다 나이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한 살 어려 학교에 잘 적응하기만 바랬지, 공부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국어에서 80점이라는 점수는 좀 의외였다. 요즘 좀 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은 올백(전 과목 100점)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태어나서 처음 본 시험인데 아이 앞에서 점수 운운(云云) 할 수는 더욱 없었다.

  도대체 어떤 문제를 왜 틀렸을까? 차례 차례 시험지를 훑어 내려갔다. 1, 2번 문제 맞았고, 3번 틀리고, 4번 맞았고……

 그렇게 훑어 내려가다가 7, 8번 문제에 내 시선이 멈추고 말았다.


  “ * 다음 말의 짜임새를 보기와 같이 쓰시오.”  

  <보기> 나무 : ( ㄴ ) + ( ㅏ ),  ( ㅁ ) + ( ㅜ ) 

    문제 7) 마루 : ( ㅁ ) + ( ㅏ ),  ( ㄹ ) + ( ㅜ ).

    문제 8) 다리 : ( 1 ) + ( 1 ),  ( 5 ) + ( 5 ).

   

  굵은 색연필이 대각선으로 진하게 그어져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7번이 맞으면 당연히 8번도 맞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건 그렇다하고 8번의 답을 왜 1+1, 5+5 라고 했을까? 도대체 이 답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런 답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를 불렀다. 한 참 들여다보던 아내도 고개만 갸웃거린다.

  녀석을 불렀다. 8)번 문제의 답을 왜 이렇게 썼고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녀석은 대답 대신 머리를 긁적이며 빙그레 웃는다. 한 참 만에 시험 볼 때의 상황을 설명한다. 대충 이런 것이었다. 시험지의 왼쪽 마지막 7)번 문제까지 다 풀고 오른쪽 처음에 있는 8)번 문제를 풀려하는데 아이들이 떠들어서 선생님이 조용하라고 주의를 주었단다.

  그리고 8)번 문제를 풀었단다. 잠시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질문의 요지를 잊은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정답을 생각했단다. 쑥스러운지 한참 혼자 웃다가 설명한다.

  “다리는 왼발 하나, 오른발 하나니까 1+1, 한쪽 발에는 발가락이 다섯 개니까 5+5”

  우리 둘은 잠시 멍하니 서로 쳐다보다가 한바탕 웃었다. 집이 떠날 듯한 웃음소리에 자기 방에서 공부하던 누나도 뛰어나왔다. 이 기막힌 사연을 듣고 박장대소(拍掌大笑)하며 한마디 한다.

  “야! 너 그런 머리가지고 왜 열심히 공부 안 하니?”

  비록 물음 자체를 잘 보지 않아 틀리기는 하였지만 아주 대단한 생각을 했다고 나와 아내는 칭찬을 해 주었다. 녀석은 말도 안 되는 답을 하여 틀렸는데도 선생님은 물론 아빠, 엄마도 칭찬하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리고 칭찬의 말에 담긴 의미도 나름대로 대충은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면서 누나에게 한 마디 한다.

  “모두 다 칭찬하는데 누나는 왜 그래?”

  그 날 저녁 나는 녀석이 잠든 후 며칠 확인하지 않았던 일기장을 펼쳐 보았다. 바로 이틀 전 일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 …… 오늘 너무 많이 뛰어 다니며 놀아서인지 무척 피곤하다. 잔잔한 호수처럼 잠들고 싶다.”


  2학년을 마무리할 때쯤의 어느 날이었다. 어제 학교에서 교내 글짓기 대회를 했는데 학교 대표로 뽑혀 며칠 후 강릉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글짓기 대회에 참가한단다.

  “그래, 참 대단하구나. 제목이 나오면 생각나는 대로 바로 쓰지 말고 무엇을 쓸까 잘 생각해보고 편안한 마음으로 써야 된다. 아마 너는 잘 할거야.”

  명색이 국어 교사인 아빠, 엄마지만 다른 지도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말 조금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녀석은 금상을 받아 왔다.

  어느 토요일 저녁, 정말 오랜만에 전 가족이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1학년 때 바로 그 국어 시험지, 그 일기장, 그리고 금상을 받은 그 상장을 찍어 둔 비디오를 틀었다. 깔깔거리며 한참 재미있게 다 보고 난 후 아내가 한마디 했다.

 “민교는 저럴 때 참 책을 많이 읽었어. 그러니 저렇게 큰 상도 받았지.”

 녀석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슬며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요즘 학생들은 책 읽기를 정말 싫어한다. 아니 그냥 내버려 두면 거의 읽지 않는다. 학교에는 엄청나게 책이 많지만 스스로 찾아 읽는 학생은 거의 없다. 책 읽기 뿐만 아니라 깊이 생각하기도 싫어한다. 대중 매체에 매달려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온 정신과 눈이 쏠려 있다. 시끄러운 음악일수록 더 열광하고, 시간만 나면 컴퓨터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빠르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고 유행을 쫓아다니기에 정신이 없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바뀌어야 한다. 바꾸어 주어야 한다. 작은 것이라도 끝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의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 창의적 사고력이 현대를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의 원천이요, 재산이다. 억지로라도 책을 읽어야 한다. 강제로라도 책을 읽혀야 한다. 책 읽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책 내용에서 얻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 인터넷에 정리된 것을 오려 붙이기 하여 작품을 읽은 것처럼 독후감을 내는 엄청난 일이 진정 엄청난 일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

 

  책 속에는 ‘다리’의 짜임이 ‘ ㄷ+ㅏ, ㄹ+ㅣ’이라는 정답만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1+1, 5+5’의 오답이 담겨 있다. 그 오답을 발견하는 기쁨과 오답을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아니, 그보다 더 다양한 답까지 우리는 찾아야 한다. ‘1+0, 5+0’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발가락 끝에는 발톱도 열 개 있음을 발견해야 하고, 다리에 나 있는 무수히 많은 털도 밤새 셀 수 있는 우직한 끈기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1998. 9>


<월간 ‘한맥문학’ 181호(2005.10호), ‘정선교육 통권68호 2005’ 수록>

출처 : 제113기 2009.제4차 중등교장자격연수단
글쓴이 : 정연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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