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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리더십 부재가 불러온 비극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10. 6. 25. 12:51

 
문학 속 리더 이야기 /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비극1. 오셀로
직관을 버린 지도자의 비극

오셀로의 리더로서의 자질을 논하기 전에 먼저 ‘직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직관에 어떤 태도를 취할까? 경영학의 배경에는 이성과 객관성이 짙게 깔려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테일러(Frederick Taylor)의 과학적 관리론이 제시되면서 경영에서의 ‘직감’은 거의 이단시돼 왔다.
대개의 경영자들은 숫자에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는 반면, 직관은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직관의 무시는 자기 확신의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셀로’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온 장군으로 자긍심이 강하고 자기절제 또한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셀로는 자신이 승진대열에서 제외시킨 부하, 이아고에 의해 배반당한다. ‘이아고에게 배반당했다’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오셀로 자신에게 배반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오셀로는 자신의 직관을 믿지 않고 이아고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움직이게 허용해버린다. 극은 이때부터 비극으로 흘러간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캐시오와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아고의 말을 끊임없이 떠올리면서 자신의 직관적인 신념에 회의를 품고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자기의심’에 빠진 오셀로는 사실에 대한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고 만다.

오셀로가 비극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은 사실에 대한 직감을 포기하고 타인의 눈을 통해 사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개 단순한 사람은 힘겨운 책임이 주어지면 자신의 직감에 대한 확신이 엷어진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은 그 일에 부적격자라는 판단을 내리고 엄청난 고통을 받기 시작한다. 자신의 능력을 의심한다는 것은 때로 마음의 융통성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오셀로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오셀로는 사람들이 대체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고 말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어떤 지도자들은 자신의 업적이 커질수록 자신은 남을 속이고 있으며 끝내는 실패를 맞이할 것이라고 믿는다”
폴린 클랜스가 쓴 《자기의심 현상》이란 책에 나오는 말이다. 마치 오셀로가 그랬던 것처럼, 리더들도 자기에 대한 확신 부족이라는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이다. 클랜스는 이를 구체적인 조사를 통해 반증한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성공한 인물의 70%가 자신의 무능력을 절감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오셀로의 문제는 직관력을 포기한 데 있다. 성공적인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지도자를 구별하는 결정적 변수가 ‘직관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직관력의 가치를 높게 샀다. “실제로 가치 있는 능력은 직관력이다” 상대성이론을 발견함으로써 그는 순간 떠오르는 통찰력인 직감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테네코와 뉴저지벨과 같은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에서는 경영진의 직관력을 길러주는 훈련과정이 있을 정도이다.
오셀로의 경우도 처음에는 직감과 자기신뢰가 있는 인물이었다. 이아고가 음모를 꾸미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기서 잠깐, 오셀로를 배반한 이아고의 변명을 들어보자.
이아고는 승진한 경쟁상대(캐시오)에 비해 실전경험도 더 쌓고 연륜도 깊었으며 그간 여러 차례 승진 물망에 오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셀로는 경험은 짧지만 이론이 탁월하고 장래성이 더 밝은 캐시오를 부관으로 임명한다. 오늘날 기업의 인사철이 되면 흔히 나오는 잡음 중의 하나이다.
이아고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억울한 일이 없었다. 처음부터 이아고의 목적은 분명했다. 오셀로를 괴롭히고 오셀로의 부관 자리를 캐시오로부터 되찾겠다는 것. 그러나 그의 목적은 자신이 만든 덫에 삼켜지고 이아고도 파멸의 길로 가게 된다.

《고전에서 배우는 리더십》에 따르면, 경영인들은 이아고와 같이 ‘조직을 파괴하는 인간형’을 경계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갈등의 소지가 있는 인사를 단행할 때는 예방책을 미리 써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리더이다. 리더는 부하를 잘 살피며 그가 어떤 성격의 부하인지를 완벽하게 읽어내야 한다. 사람을 볼 줄 아는 것, 그것이 리더의 혜안이다.



비극2. 맥베스
야망에 집착한 지도자의 종말

야망은 성공을 향한 강력한 자극제이다. ‘개인의 욕심’에 의한 동기와 ‘리더십’의 상관관계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노력을 끌어내는 원동력이 야망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맥베스의 비극을 불러온 것이 바로 ‘야망’이다.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는.
조직원이 야망을 서로 공유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비극을 우리는 맥베스를 통해 목격할 수 있다. 즉, 승진이나 상벌체계가 비밀스러우면 지도자는 물론 조직에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는 야망과 간교한 음모가 빚어낸 비극이다. 셰익스피어 연구학자 G. 윌슨 나이트가 지적했듯이 이 극에서 야망은 ‘어두컴컴하기보다는 시커먼 것’, 악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었다.
야망은 리더십의 핵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직은 무엇보다 이 야망을 품은 사람들에 의해 좌우된다. 그러나 야망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브레이크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맥베스는 선을 넘은 야망이 불러온 비극이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이 있다. 바로 ‘상황분석력’이다. 맥베스는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거듭 잘못 분석한다. 그는 마녀의 예언을 한번 의심했으나 성급하게 그것을 실행에 옮겨버리고 만다. 직감은 그에게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으나 맥베스는 듣지 않았다.
그는 생각은 부족했고 행동은 조급했으며 자신의 목표에만 집착했다. 이 집착은 충분한 분석은 거부하고 성급한 행동만을 부르며 가혹한 운명을 재촉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맥베스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맥베스의 리더십 유형을 연구한 《분석과 행동, 그리고 지도자의 역할》이라는 논문에서는 ‘좋은 리더십이란 분석과 행동의 균형이 맞을 때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맥베스의 경우는 분석은 없고 행동만 지나치게 강조한 데서 비극이 초래되었다. 분석만 있고 행동은 없었던 햄릿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지도자론에서 야망은 긍정적인 개념으로 통한다. 리더에게 동기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의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야망의 공유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비극3. 리어왕
어리석은 권력승계와 실패한 카리스마

화려한 경력에 상당한 권한을 행사해 온 경영자가 그 권한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은퇴 시기가 가까워오면 특히 그런데, 대부분의 경영자들이 그 동안 축적하고 지휘해온 경영권을 내어주는 데 저항감을 가지기 때문이다.
리어왕의 비극은 바로 ‘경영권을 내어주는데’서 시작한다. 늙은 왕 리어와 그의 세 딸을 둘러싼 이야기는 배은(背恩)을 주제로 하며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비극을 보여준다. 많은 성공한 경영자와 마찬가지로 리어왕도 국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그의 왕국은 오랫동안 안정을 구가해왔지만 왕이 은퇴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릴 때부터 비극은 싹트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시대의 리더는 권력의 정점에서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준비를 한다.
후계구도에 있어 리어왕이 당초 그가 계획한 대로만 조치를 취했더라도 실패는 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어왕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 잘못은 노욕(老慾)에다 어리석음이라는 인간의 본성에서 찾을 수 있다.
리어왕은 겉으로 권력이양을 말하면서도 내심은 은퇴를 망설였다. 후계 계획마저도 적절하게 세우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는 물론 왕국까지 무너지는 결정을 내린 셈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경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리더는 항상 은퇴에 대비해 능력을 갖춘 후계자를 찾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주저하지 말고 곧바로 권력의 고삐를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리어왕과 같이 참담한 결과를 그리고 싶지 않다면, 리더의 덕목을 갖춘 인재를 꾸준히 발굴하고 훈련시켜야 한다. 리더는 만들어진다. 타고나는 리더는 없다는 말이다.



 

 


 

 

 

비극4. 햄릿
결단력 부족이 부른 죽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늘날 우유부단함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있는 햄릿의 성격은 이 한 마디에 함축되어 있다. 부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문을 품은 햄릿은 복수를 결심하고 계획적으로 사실을 확인해나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증거불충분이라는 이유로 쉽게 복수를 결행하지는 못한다. 그 원인에 대해 그는 다시 이렇게 독백한다. “결과를 너무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생기는 겁쟁이의 주저함이여”
햄릿은 결단을 내리기 전 생각을 거듭하며 행동의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입증하고자 노력한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색하고 고뇌하다가 결국 자신의 이상주의 때문에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지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기도 한데, 햄릿은 이러한 성격으로 결정적인 복수의 순간을 끝없이 늦춰간다.
이런 측면에서 햄릿의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비극과는 성격을 달리 한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 주인공들은 모두가 ‘성격적 결함’으로 비극을 초래했는데, 햄릿의 경우는 성격적 결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성적 판단을 통해 최선을 지향하고자 하는 갈등에 빠져 비극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어떤 관점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행동력이 부족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햄릿의 이런 특징은 앞서 이야기 한 돈키호테의 셀프 리더십과 비교하며 생각하면 더 흥미로울 것이다.<월간 리더피아 2010.6월호>

출처 : 사랑이 넘치는 교육
글쓴이 : 푸른 하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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