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양식/감동이야기2

교사일기- 교무수첩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10. 8. 24. 11:24
교무수첩| 학교생활 수기

                김지영(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교사)

십여 년 전에 담임을 맡았던 최 군으로부터 주례를 서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졸업한 이후 간간이 전화를 하더니 결혼날짜를 잡아 놓았는데 내가 꼭 주례를 서야 한다는 것이다. 주례를 서달라니 당황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객들 가운데는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을 터인데 나 같은 사람이 주례를 서는 것은 그분들께 실례가 되는 일이라고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는 며칠 후 배우자 될 사람과 함께 인사를 하러 집으로 찾아왔다.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신출내기 교사였다. 시골에 위치한 실업계고등학교에 부임하던 해 아이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이 결석을 했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대 여섯 명씩 자리가 비었다. 학교 가까운 곳에 하숙집을 구해 놓았으면서도 저녁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퇴근하기 바쁘게 아이들을 찾으러 다녀야 했기 때문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날 이었다. 그 날도 서너 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오질 않았다. 수소문하니 부천에 있는 어느 야산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퇴근하자마자 부천행 버스를 탔다. 차에서 내려 랜턴을 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 중턱쯤 이르렀을 때 숲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수군대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녀석들이었다. 녀석들은 내가 온 것을 눈치 챘는지 황급히 텐트를 걷고서 도망치려 했다. 나는 간신히 그들을 붙들었다. 집을 나올 때 가져온 돈이 다 떨어져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지냈다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가정에 불만이 많은 녀석들이었다. 자정이 다 되어 그것도 깊은 산중에서 나는 아이들을 달래며 다음 날 꼭 등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는 차비를 하라며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 주었다. 

이렇게 달래서 간신히 등교시키면 다음날 또 다른 녀석들이 말썽을 부렸다. 학교 다니기 싫다고 하는 아이를 하숙집으로 데려와 같이 자기도 했다. 그렇게 졸업을 시킨 아이들이 어느덧 결혼할 나이가 되어 나에게 주례를 부탁하는 것이다. 

결혼식 당일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이발소를 다녀오며 부산을 떨었다. 그리고는 결혼식장으로 갔는데 사람들이 보이질 않았다. 예식이 시작되려면 아직도 멀었으니 사람들이 눈에 띌 리가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하고 식장 주변에서 서성거리다가 십여 분전에 식장으로 다시 갔다. 식장에는 하객들로 가득 찼다. 신랑 신부 부모들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멋쩍었다. 요즘 들어 흰머리가 생긴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상에 올라서서 하객들을 바라보니 시큰둥한 얼굴빛이 역력했다. 비쩍 마르고 볼품도 없는 젊은 사람이 주례를 서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신랑 신부 동료들의 세련된 옷차림과 누추한 내 모습은 너무나 대조를 이루었다. 신랑의 고교시절 담임이었다는 사회자의 소개에 이어 나는 목청을 가다듬고 주례사를 시작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그럴듯하게 시작은 했으나 하객들은 웅성거릴 뿐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미리 준비한 수첩을 꺼내 들었다. "여기 제 앞에는 낡은 수첩 하나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무수첩입니다." 나는 매년 담임을 맡을 때마다 아이들에 관한 사항을 자세하게 기록해둔 교무수첩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달라지더니 식장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주례사를 말하다 느닷없이 수첩을 들어 보이니 호기심이 생겼던 모양이다. "이 수첩에는 신랑의 고교시절에 관한 모든 기록이 자세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객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지자 자신감이 생겼다.
"이 수첩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신랑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나는 신랑 최 군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믿습니다." 주례사를 말하는 동안 하객들은 선생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착실한 학생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교단에 서면서부터 빠짐없이 보관해 온 교무수첩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예식이 끝난 후 피로연 장소로 제자들이 몰려왔다. 선생님 말씀이 감동적이었다며 이제는 어엿한 가장이 된 녀석들이 자기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나에게 소개했다. 나는 교무수첩을 다시 꺼내들고 너희들이 얼마나 내 속을 썩였는지 아느냐고 하며 십여 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자 피로연 장소는 온통 웃음바다로 변하고 말썽을 부렸던 녀석들은 자기 아내 앞에서 어쩔 줄 모르며 안절부절못했다. 신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가자고 잡아끄는 그들의 손을 간신히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십여 년 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산 속을 헤매고 하숙집까지 데리고 다니며 겨우 졸업을 시킨 녀석들이 이제는 아버지가 되고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이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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