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코너/훈화자료1

우리는 진정 사랑하고 있는가?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10. 9. 29. 14:26

우리는 진정 사랑하고 있는가?

 정 문 권  
<배재대 교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가 다가오지만 다들 감흥이 없는 것 같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가족 친지들과 재회의 시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보단 교통체증을 먼저 걱정하고 번잡한 형식이나 절차에 대한 부담을 푸념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런 것을 보면, 요즘 우리네 마음이 가을 나무처럼 푸석해진 것 같다.

메마른 마음을 다독거리며 신문 기사를 뒤적여도 촉촉하거나 따뜻한 소식은 잘 눈에 띄질 않는다. 태풍으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가 주부들 추석 준비를 힘겹게 하고 있다거나, 총리 임명에 따른 하마평,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8명 중 1명이 소송에 연루돼 ‘소송공화국’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내용, 지난 해 우리나라에서 10쌍이 결혼할 때, 4쌍이 이혼했다는 등 마음을 무겁게 하는 기사들이 신문의 지면을 물들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 우리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돈과 연관된 것들이다. 특히 소송과 이혼의 경우에는 처음엔 돈과 무관해 보이는 윤리나 도덕을 앞세워 시작됐다가 결국엔 돈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막장으로 치닫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다 보니, 인간관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순수해야 할 사랑마저도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세태가 돼 버렸다. 그리고 이에 따른 전략과 전술이 난무하는 요즘이다. 그래서 사랑이란 것도 돈으로 환전되어 흥정하다가 흥정이 깨지면, 어느 한순간에 부석부석 허망하게 부서져 내리기도 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이런 세태를 미리 알고서 사랑엔 기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었을까? 우리 시대는 에리히 프롬을 겉 넘어 사랑이 가벼운 지식들과 사교의 기술들로 엮어진 그물이거나 함정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져 가고 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느끼게 되는 매력은 더 이상 어느 누군가의 독특한 향기나 아름다움이 아니다. 이제 매력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획일적으로 전파된 S·V·X라인 혹은 유혹의 기술이 되어버렸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사랑은 한순간 누군가를 현혹하는 기술이 아니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유지해가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사랑은 마치 아이가 사루비아 꽃을 따서 단물만을 빨아먹고 재빨리 다른 꽃을 입에 물듯 바꿈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베어 물었던 선홍색 꽃의 아름다움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대량 매체를 통해 성적 코드와 유혹의 기술들이 널리 유통되면서 거짓과 기만으로 달콤한 첫 번째 단물만을 맛보려 안달이다. 사물로 떨어진 사랑, 이런저런 기만과 이기적 작당으로 만들어진 대량의 사랑들은 값싸고 조악하다. 조건이나 처지가 또는 취향이나 성향이 달라지면 가볍게 변하는 요즘의 사랑을 돈으로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시절의 사랑과 비교하자면, 그 가치를 따질 수가 없는 것이다. 물리적 조건들로 보상받으려 하는 세태가 사랑을 더 가치 없게 만들어 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사랑을 확인할 이성적 증거와 물질적 담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랑은 예측되고 뭔가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기를 요구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랑은 사랑이 신과 운명의 손에서 인간의 옹졸하고 변덕스러운 손으로 넘어오는 것임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 사랑 때문에 신이나 운명에 맞설 필요가 없다. 영웅도 신화도 없고 눈물도 시도 말라버린다. 사랑은 은밀하고 소소하게 이루어지는 흥정,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는 유사 경제 활동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사랑 때문에 뜨거울 수도 아파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랑은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그런 것’이라는 시의 구절들이 세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사물이 메말라가기 시작하는 가을, 그 메마름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사람과의 사이에서 느껴지는 사랑이었는데, 이제 그 자리를 택배물건과 상품권이 대신하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 명료하다. 누가 얼마만큼 나를 사랑하는지를 계량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가을 한 낮, 나는 정말 누군가를 사랑했는지 자꾸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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