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나라/바람앞에 등불

詩와 인생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17. 2. 8. 09:43


Prologues


다음에 소개되는 詩人 김석일씨는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을 쓰는

정감이 있는 사람으로 [늙은 아들]이라는 시집을 내어 놓았다.




시나브로 실없이


                           김석일


석양이 붉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하며

광교산 사타구니를 오랫동안 차지한 

자궁 닮은 늙은 저수지 갓길을 걷는다

얼룩진 쇠락의 모습도 가끔은 드러내며

늙고 지친 늙은이 냄새도 풍기는 이 길

하얗게 바랜 기억 언저리에, 허기진 멀미와

게걸스럽게 먹던 가재구이로 추억되는 곳

익숙했던 가난이 삐죽 실없이 떠오르고.....


분주한 저녁바람이 뒹구는 그 길을

요란한 한 무리 등산복 여인들이, 깔깔

짙은 라일락 향을 풍기며 지나가고

산행의 조갈을 한 잔 막걸리로 달랜, 나는 

난데없이 곧추서는 하초르 의식하며

앞선 여인들의 풍만한 엉덩이에 눈기를 꽂고

실없는 상상에 스스로 민망해 웃는다


검버섯인양 진한 녹조로 얼룩진 물을 오가며

유유, 혹은 자적하게 석양을 희롱하는 오리들

차가운 물속의 발은 또 얼마나 분주할까

지나쳐도 좋으련만 짚어보는 괜한 습성에 


이제 어쩔 수 없이 뼛속까지 늙어가는

주름진 삶의 윤기 없는 마음결이 무겁다

시나브로 시나브로 실없이 태양은  또 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