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탕이 조약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자, 식민에 의한 토지 매매와 관련하여 마오리족과 영국 간에 분쟁이 생겼고, 1840년 식민지 총독 윌리엄 홉슨과 마오리족은 마오리족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뉴질랜드의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하는 《와이탕이 조약》ㄱㅇ을 체결하였다. 뉴질랜드에 도래한 백인들은 마오리 사람들을 속여 물건을 약탈하고 죽였다. 뉴질랜드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무질서한 곳이었다. 그 이후부터 뉴질랜드회사, 오타고협회, 캔터베리협회 등을 통하여 각지에서 이민자가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이곳에 이주를 재촉한 사람이 에드워드 와케필드이다.
1837년에 그는 영국에 뉴질랜드협회를 세우고 식민운동을 시작했다. 다음 해 뉴질랜드 토지회사를 설립하고는 뉴질랜드의 토지를 마음대로 팔았다. 이 토지를 매입한 사람들이 제1차 조직 이주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원주민과 유럽인과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교역이 시작되었고 그러면서 점차 마오리들의 입장에선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영국의 식민지가 되기를 원했다.
첫째로 대영제국의 막강한 해상 장악력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 해군은 프랑스 나폴레옹군을 해전에서 무찔러 해상에서 막강한 기세를 떨치고 있을 때였다.
두 번째로 뉴질랜드는 당시 중앙정부가 존재하지 않았고 통합된 지도자가 없어 유럽 이주민들과의 교류도 각 부족별로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협력과 커뮤니케이션에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셋째로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두 민족이 부딪히다 보니 충돌이 잦아졌고 유럽 이주민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이들을 다스릴 법률이나 규범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역이 이루어지면서 마오리 소유의 땅이 비조직적으로 무차별 팔려 나갔으며, 일부 마오리 추장들은 뉴질랜드가 프랑스에 의해 정복되지 않을까 심한 우려를 표명하여 영국의 보호를 요청하던 차였다. 실지로 1831년 13명의 북쪽 추장들은 영국의 윌리엄 4세에게 프랑스의 침공으로부터 지켜달라는 공식 청원을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마오리나 파케하 모두 법과 질서, 그리고 어떤 형태든 영국의 보호를 요구하고 있었다.이러한 상황중에 1840년 영국해군 장교 홉슨이 총독으로 뉴질랜드를 찾아온다. 그는 당시 영국인의 대리인으로서 와이탕이에 장기간 살고 있던 버스비의 집으로 가서 뉴질랜드를 영국의 식민지로 삼기 위한 협의를 한다. 그리고 2월 6일 아일랜즈 만의 와이탕이에 있는 제임스 버스비의 집에 각지의 마오리 추장 46명을 모아 뉴질랜드를 사실상 영국의 식민지로 하는 《와이탕이 조약》에 서명한 것이다. 그 후 7개월 동안 영국 관리들은 전국을 돌며 500명 이상의 추장 사인을 받아냈으며, 39명의 와이카토 추장들을 제외하곤 모두 사인을 했다.
와이탕이 조약은 3개조로 되어 있는 간단한 것이다.
- 뉴질랜드의 주권을 영국에 이양한다.
- 마오리인의 토지소유를 계속 인정한다. 그러나 이후 토지 매각은 영국 정부에게만 한다.
- 마오리 사람들은 앞으로 영국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는다.
이 조약이 체결되고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하게 되었다.
와이탕이 조약은 뉴질랜드를 2민족국가로 규정짓는 성격의 것이었다. [1]그리고 뉴질랜드는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로부터 분리되어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홉슨은 1842년 9월에 사망했고, 새로운 총독으로 로버트 피츠로이가 와서 마오리족의 관습을 인정하는 법률적인 조치를 취하게 된다.
푸른 잔디위에 그림같이 서있는 저 건물이 거의 20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이 건물 뒷쪽으로는 흰색의 건물이 있는데, 지금은 카페로 사용하고 있었다.
카페가 갖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
카페 내부의 모습
카페 정면의 모습
100년을 되었을까? 낡은 나무 의자마저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그들.....!
1850년대의 복장이라고 한다. 이 옷을 입고 있는 점원의 모습
정원에 세워진 오래된 구인광고 마저 눈길을 끌었다.
밖으로 돌출된 수도관과 지붕으로 부터 받은 빗물도 연결관을 통해 이렇게 모았다.
벽을 쌓은 돌들 다룬모습이 정교하다. 석수의 능력이 돋보인다. ......
흰색건물인 카페에 들러 시킨 음식- simpie
채광을 위한 천창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 아마도 당시에는 없었을 것이다. 지붕은 나무로 된 너와였다.
카드에나 나올 듯한 아름다운 풍경
길건너에 보이는 빠알간 지붕이 눈길에 잡혀 줌으로 당겨 찍었다. 한폭의 그림이다. 자연과 조화로운 색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자! 그림같은 빠알간 지붕을 배경으로 나도 쎌카로 한컷!
추억은 아름다운 것!
180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마루바닥으로 지금은 공개를 하지 않고있다.
나무 줄기에 ......
내가 출연했던 연극 '노부부의 썬글라스'가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