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시장도 가고 살림하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알아야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지혜를 배우게 되고, 물이 귀한 아프리카에서 빗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알게 됬다.
남편이 퇴근하며 자전거 뒤에 야채와 과일 등 먹을거리를 싣고 오면 나는 얼른 받아 음식을 만들었다.
더운 날씨에 중고 냉장고는 수시로 전기가 나가니 믿을 수가 없어 내일까지 남겨둘 수가 없었다. 웬만하면 그때그때 음식을 만들어야하니 언제나 몸은 분주했다. 먹는 식재료도 거의 정해져 있었는데 그나마 감자, 양파, 당근, 콩, 잡곡과 닭고기, 질긴 소고기와 토마토나 열대과일은 맘껏 먹을 수 있었다. 그래도 현지재료로 온갖 창의력을 동원해 한국여자의 저력을 발휘해서 이것저것 만들어 먹었다. 단순한 밥상이 차려졌고 그렇게 먹던 음식이 참 맛이 있었다.
남편이 시장에서 빨래 줄을 사다가 길게 매어 주었다.
주물 주물 손빨래 후 대충 물기를 짠 빨랫감을 척 걸쳐 놓으면 한 시간도 안 되어 그 강렬한 햇볕에 바짝 마르곤 했다.
햇볕에 바짝 마른 빨래를 걷을 땐 참 기분이 좋았는데 어렸을 때 엄마가 호청을 널면 그사이로 들어가 놀던 생각도 났다.
살림살이라고 무엇 하나 변변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몇 가지 안 되는 그릇이라도 제 몫을 톡톡히 하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가져온 믹서를 떨어뜨려 깨뜨린 적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한시도 없으면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주방기구였다.
남편은 깨진 조각을 이리저리 접착제로 붙여보기도 했지만 붙지를 않았다. 결국 버리려고 저 만치 던져 놓았다. 몇 일을 지나 아쉬운 듯 남편은 다른 재질로 때워 보기를 수 차례 끝에 고쳐냈다.
다시 사용할 수 있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랐다. 한국이라면 버렸을 것을 때워서라도 사용을 해야 했다. '궁하면 통한다'하지 않던가.
현지인의 전통적인 부엌은 돌 세개 위에 냄비나 작은 솥을 걸어놓은 것이 전부이다. 정말 단순한 부엌이다. 아기를 등에 업고 불을 때가며 음식을 만든다.
주식으로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우갈리’라는 것인데 우리나라 백설기와 같은 것으로 옥수수가루로 찐 것이다. 손으로 조물조물 뭉쳐가며 먹는데 먹어보면 아무 맛이 없다. 그리고 감자를 튀긴 ‘칩시’, 그리고 ‘왈리’라고 쌀밥인데 밥알이 술술 흩어진다.
우리네 반찬처럼 함께 나오는 메뉴로는 냐마(주로 쇠고기), 쿠쿠(닭고기), 사마키(생선) 이렇게 세 다.
이들은 중 주식 하나에 메뉴하나씩을 골라 함께 먹는데, 이것이 탄자니아 현지음식의 일반적인 간단한 메뉴이다. 결혼식이나 손님대접해야 하는 특별한 행사때는 필라우(볶은 법)를 만들어 먹는다. 수저도 필요 없이 밥에 소스를 부어 손으로 조물락 조물락 뭉쳐서 먹는다.
이런 식생활 문화가 있어 현지식당을 가면 식사전에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물통과 비누가 준비되어있고, 조금 좋은 레스토랑에 가면 종업원이 대야와 물비누와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져와 손을 씻도록 기다려준다, 처음에는 물을 먼저 먹으라고 가져다주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사람들이 이 물로 손을 씻는다. 그리고는 손으로 먹는 것이다. 나도 몇 번은 해보았지만 웬지 이상해 숟가락을 달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한참을 살아도 그곳 아프리카의 음식에도 맛을 들이지 못했다.
절대 빈곤에서 오는 단순함과 모든 것이 풍부하여 군더더기를 떨쳐버리고 단순함을 원하는 우리의 삶과는 기본적으로 다름에 미안한 생각까지도 들었다. 무엇이고 흔해서 귀한 것을 모르는 우리네 생활, 너무 없어서 모든 것이 귀한 그들의 생활. 그들은 얻고자하고 우리는 버리고자한다. 즉 그들은 먹고 살기위해 일하며, 우리는 살빼기 위해 운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