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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가봉보다 못살던 한국… 1970년 필리핀-2005년 대만 앞질러

라면 이야기를 옮기던 중 우리나라가 얼마나 못살았는가를 알고 싶었다. 내가 중학교 들어가던 1962년은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되 퇴비증산을 위해 노력했었고, 산림녹화의 일환으로 송충이 잡이가 한창이었었다. 학교 점심시간에는 도시락 못싸오는 친구들은 펌프로 길어올리는 수돗가에 서성이며 곱은 배를 움켜쥐고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개천에서 용나려면 공부하는 길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정년퇴직을 앞둔 공무원들에게 인생 이모작을 위한 강의 하던 중 우리나라 국민소득 GNP를 알려주었더니 믿지 못하는 듯했다. 오죽했으면 영자 신문들은 '대한민국이 다시 일어나는 일은 쓰레기 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했을까!

 
동아일보 입력 2012-09-19 03:00수정 2012-09-19 08:55
 
■ 1인소득 경쟁국 추월史
 
6·25전쟁 직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했던 한국은 이후 경쟁 국가들을 차례로 제치며 경제발전의 신화를 써왔다.

한국은 1960년대만 해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현재 아시아의 평범한 개발도상국들은 물론이고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보다도 국민소득이 한참 뒤처져 있었다. 이랬던 한국이 이젠 경제발전의 영원한 ‘벤치마킹 대상’이자 극복 대상이었던 일본마저 넘보게 된 것이다.

세계은행(WB) 통계에 따르면 50년 전인 1962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10달러(약 12만 원)로 올해(약 2만3000달러 추정)의 ‘20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최빈국에 속하는 아프리카의 가나(190달러)나 가봉(350달러)보다도 소득수준이 뒤떨어졌다. 하지만 그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고 기초적인 산업의 토대가 형성되면서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한국경제의 첫 번째 롤 모델은 필리핀이었다. 지금은 1인당 GNI가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필리핀은 당시만 해도 평균소득이 한국의 두 배나 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6년 필리핀을 방문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당시 대통령에게 “한국도 필리핀만큼 잘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이 필리핀을 앞지른 것은 그로부터 불과 4년 뒤인 1970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