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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물생심 (見物生心)- 자전거

 

 글쓰기 모임 '일꼬 쓰며'의 12월 글 주제는 "2021년 나는 ***를 했다"를 준비한 글입니다.

 

1004 대교 라이딩

새벽 공기가 차다. 아직 얼음이 채 녹지 않은 작은 개울가에도 봄소식이 오고 있었다. 집 근처 마중 공원을 산책 하는데 아저씨 한 분이 자전거를 타다가 작은 개울에 빠졌다. 앞에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피하려다가 일어난 사고였다. 물에 젖은 아저씨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니 내 선글라스하며 손으로 이마를 더듬는데 잔뜩 긴장된 표정이다. 딸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하며 안타까워 해 그와 함께 찬물에 손을 적셔가며 누워있는 풀들을 제치며 살폈다. 선글라스는 주변 풀과 같은 색이었는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손이 어름짱처럼 차가워 졌을 때 비로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나의 작은 노력에 매우 고마워했다. 그의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는데, 한 손으로도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걸 보니 꽤나 비쌀 것 같았다. 얼마짜리냐고 물으니 팔백만원 주었다고 한다. “얼마라고요?” 난 입이 딱 벌어졌다. 더 비싼 것들도 있다며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의 자전거를 보니 내 오래된 낡은 자전거가 생각이 났다. 순간 갑자기 나 마저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이참에 나도 제대로 된 자전거를 사서 꿈꾸어 왔던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 후 새로운 도전으로 이것저것 시도를 해 보았는데 그중 하나가 자전거 타기다. 지난 해 봄 탄천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우연히 자전거를 타는 지인을 만났다. 그는 주말이면 전철에 자전거를 싣고 교외로 나간다고 했다. 그의 자전거는 새 것으로 꽤나 좋아 보였다. 바퀴도 내 것보다 크고도 가벼웠다. 좋은 자전거를 보니 다시금 좋은 것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큰맘을 먹고 자전거 대형매장을 찾았다. 둘러보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속도를 낼 수 있는 사이클이라 불리는 로드형, 바퀴가 두툼한 산악용, 그 중간 하이브리드도 있다. 자전거종류와 의류도 다양하고 값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것이 내게 맞을까?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따뜻한 봄날이다. 주말에는 지하철에 자전거를 실을 수가 있다는 정보에 따라 용기를 내어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도전을 해 보았다. 수원에서만 웅크리고 있던 우물 안 개구리에서 지경을 넓힐 겸 전철에 자전거를 싣고 소래포구가 가까운 오이도로 갔다. 탁 트인 해변을 달려보니 실의에 빠져 허전하고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제부도 시화방조제를 힘차게 달리는데 젊은이들이 쌩쌩 바람을 일으키며 나를 추월해 나갔다. 편치 않은 심정으로 자전거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고 있는데 번쩍이는 자전거가 들어왔다. 멋진 MTB기어도 많고 브레이크도 유압식으로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견물생심 (見物生心)이라지 않았는가. 주인에게 얼마짜리냐고 물으니 오백만원 짜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호회에 가입하려면 이 정도는 타야 따라갈 수가 있다고 했다.  속으로 '나도 그 정도면 살 수 있다'.  욕심이 났지만 자전거에 대해 잘 모르니 답답했다. 문득 김해에 사는 자전거 매장을 하는 조카 생각이 났다. 자전거 구입에 대해 의논하니 초보이면 새 것을 구입하지 말고 중고를 타다가 어느 정도 실력이 붙으면 새 자전거를 사라고 조언해주어 천천히 좋은 물건 나오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한 동안 소식이 없더니 달포 쭘 지나고서야 좋은 물건이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이렇게해서 새로운 엠티비 자전거 라 피에르는 나의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내 친구 라 피에르

 

자전거도 새로 구입했고 헬멧과 고글, 자전거용 의류도 새것으로 구입하여 입으니 나이를 알아보기 힘들다. 마치 사이클 선수가 된 기분에 나이도 한 십년이상 젊어진 기분이었다.

 

지인이 라이딩하자고 연락이 왔다. 남들은 이 뜨거운 날 자전거를 타냐고 하겠지만, 이열치열이란 말처럼 더위는 더위로 이겨보기로 했다. 오늘의 라이딩코스는 양수리에서 시작해 남한강이다.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팔당대교를 지나 터널을 통과할 때는 덥다고 하는 중복인데도 서늘하고 시원했다. 새롭고 멋진 첫 장거리 라이딩이었다.

두 번째 장거리 코스는 여주 신륵사에서 출발해 양평을 다녀오는 왕복 코스이다. 독일의 라인 강가를 연상 시킬 만큼 주변 경관은 기대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자전거를 타면서 보는 풍경은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과 비교할 수 없이 달랐다. 자전거를 타고 힘차게 달리면 자연이 내 품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나는 섬 여행을 좋아한다. 기회만 있으면 늘 가고 싶은 곳이 남쪽 섬들이다. 서해 최북단의 섬 백령도에도 가보았고, 작년에는 서해안 시도해수욕장을 비롯해 덕적도 등을 걸었다. 올해는 풍도와 승봉도를 다녀왔다. 섬 여행을 하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천개의 섬이 있고, 염전이 많다는 신안군이다.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 있는 5개의 섬 200여 킬로미터를 23일 일정으로 소화해 내는 자전거 여행이다.

자동차에 자전거를 싣고 전남 무안군 현경면 까지 차로 이동 후 세 번째 장거리 라이딩은 시작되었다. 두어 시간을 달렸는데 벌써 어둠이 내려앉는다. 앞쪽으로 보이는 섬의 모습이 평화롭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웠다.

7.2 km나 되는 천사의 다리는 옹복 2차선에 양쪽으로 이륜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와 보행로도 있었다. 신안의 명물 천사대교를 신나게 달렸다. 다리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울렁거리는 스릴을 느꼈다. 최고시속이 30킬로미터에 육박했다.  짭짤한 바다 냄새가 나는 바람을 안고 신나게 달리는 맛은 정말 최고였다.

어두워지니 높게 솟은 교각에 빨강, 노랑, 파랑색 불빛이 교대로 바뀌어 아름다웠다. 얼마를 달렸을까, 번쩍번쩍 하는 경고등을 단 경찰차가 앞으로 지나간다. 무슨 사고가 났나?

다리를 얼마 남기지 않았는데 경찰차가 앞서서 달리는팀리더 앞에 서더니 정지 신호를 했다. 실랑이를 하는데, 경찰이 천사대교는 자동차만 다니는 전용도로라고 한다. 처음에는 보행자와 이륜차를 통행을 시켰는데 사고가 발생해 지금은 보행자와 이륜차 통행금지라고 한다. 다리 입구에 통행금지 표지판도 없어 잘 몰랐다고 사정을 해도 안 된다. 통행금지라고 하며 다시 압해도로 돌아가라고 했다.  벌금도 물어야 하는데!  어찌하오리까. 결국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비어있는 보행자 통로로 압해도 다리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왔다내 평생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자전거 타보기도 처음이었다.

 

다음날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는 따로 화물차에 실어 보내고, 우린 택시를 대절해 아름다운 천사대교를 건넜다. 이렇게 해서 다섯 개의 섬을 달리는 진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특히 인상적인 풍경은 신안의 자랑 퍼플교(보랏빛 다리) 이다. 지금은 유명해 져 많은 여행객들을 부르고 있었다. 어촌의 지붕이나 담장과 꽃들마저 모두 보라색 이었다. 두리선착장에서 반월교로 건너는 데크길도, 반월도에서 박지도로 잇는 데크길도 보랏빛이다. 온통 세상이 보랏빛이다내 가슴도 온통 보랏빛으로 물드는 듯 했다. 고교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증도로 나왔다. 증도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한 펜션도 있다.

 

자전거를 타며 내 나라 땅을 여행해보니 우리의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새삼 알게 되었다. 임자도에 있는 넓디 넓은 대광해수욕장과 대단위로 펼쳐지는 신안염전의 풍경도 또한 일미였다. 짠 내가 가득한 바닷바람과 평온한 섬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얻은 자유로움은 답답했던 숨통을 열어 주었다. 북한강 남한강을 넘나드는 재미도 꿀맛이었고 자전거를 새로 구입하고 필요한 용품과 의류 구입하는 것도 내게는 새로운 재미거리였다. 자전거를 통해 세상살이에 대한 이해와 자신감과 성취감도 얻었다. 자전거타기로 나의 삶이 바뀌었다. 나이가 들면 혼자 노는 법을 배워야 한다했는데 함께해도 좋고 혼자도 좋은 자전거가 내 옆에 있으니 무엇이 부러우랴

올 한해 새롭게 얻은 선물은 단연 자전거 타며 새롭게 세상을 보며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을 꼽겠다.

오늘은 그 춥다는 동짓날이다. 아내는 팥죽을 쑬 모양이다. 팥 삶는 냄새가 구수하다.

그 더위도 아랑곳 않고 달렸는데 이깟 추위쯤이야 대수인가. 맛있는 팥죽 한 그릇 뚝닥 먹고나서 내 나이듦을 되돌려놓고 마음을 젊게 할 자전거를 타야겠다.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한 자전거의 페달을 젊은이들처럼 힘껏 밟아봐야겠다.

2021.12.

전남 신안 압해도 천사대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