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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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movie 이틀 분량의 런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때마다 TV 안방극장의 단골 레파토리가 되는 영화, 더 이상 이만한 캐스팅과 제작진은 불가능하다는 전설만 떠돈 채 그 누구도 리메이크하기를 꺼리는 영화, 그렇듯 만들어진지 60여년이 된 이 영화가 여지껏 바람처럼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을 맴도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이 뿜어내는 영원불멸의 매력과 남북전쟁의 소용돌이를 딛고 올라서는 한 여인의 강철같은 의지, 그리고 광활한 타라의 풍경 속에 피어나는 불꽃같은 사랑의 대서사시야말로 한 세기에 나올까말까 한 명작이기 때문이다. 1939년에 데이비드 셀즈닉이 제작한<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19세기말 남북전쟁으로 짓밟힌 미국 남부 조지아주를 무대로, 격렬하게 살아간 여인 스칼렛 오하라(Scarlet O'Hara)의 이야기를 그린 마가렛 미첼 여사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상영 4시간의 불후의 명작이다. 이는 할리우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대작명화로 평가된다. 스칼렛역을 위한 수많은 오디션, MGM사에서 빌려온 레트역의 클라크 게이블, 감독의 교체 등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이 영화는 오래 걸린 제작기간을 충분히 보상할 만큼 훌륭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은 10여 년만에 완성했다고 하며, 600만 달러가 투입된 제작비는 당시로서 전대 미문의 엄청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작품(데이빗 셀즈닉), 여우주연 (비비안 리-스칼렛 오하라의 이미지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여우조연(해티 맥다니얼), 감독(빅터 플레밍), 각색(시드니 하워드), 촬영, 실내장치, 편집, ! 특별상 등 11개 부문을 휩쓰는 등 평단의 화려한 각광을 받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상실감과 허무감을 그리고 있지만 궁극적인 주제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 불굴의 투혼」 이라고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지금도 많이 팔리고 있고 영화 역시 부단히 재 상영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미국인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저자 사후에 속편인 「스칼렛」이 쓰여지고 영화화된 것도 바로 원작의 그러한 인기에 힘입은 것이다. 제목과는 달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소설도 영화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도 오래 살아 남는 불멸의 작품이 될 것이다. Making Film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오즈의 마법사> <잔 다르크>의 빅터 플레밍 감독의 연출과 타고난 안목을 자랑하는 헐리웃의 큰손, 데이빗 셀즈닉의 제작에 의해 탄생했으며 마가렛 미첼 여사의 퓰리처 상 수상작을 영화화한 것이었다. 클라크 게이블의 그 능청스런 미소와 당시 신인이었던 비비안 리의 눈부신 매력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도 걷잡을 수 없는 설레임을 제공했다. 게다가 애쉴리 역의 레슬리 하워드, 멜라니 역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호연은 물론 흑인이 수상하기는 영화제 사상 최초라는 이유로 호들갑을 떨었을 만큼 스칼렛의 하녀 역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해티 맥다니얼의 여우조연상 수상덕분에 더더욱 화제를 배가시켰던 작품이다.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방영되었던 <스칼렛>에서 한때 발 킬머의 아내였던 조안 웰리와 제임스 본드 출신의 티모시 달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신화에 의욕적으로 도전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영화의 무대는 남군 최후의 거점이었던 애틀랜타와 오하라 가문의 타라 농장을 오간다. 미첼 여사는 오직 이 한편만을 쓰고는 자신의 모든 것을 여기에 다 쏟아넣었기 때문에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 후로는 일체 붓을 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36년에 출간되어 베스트 셀러가 된 이 책의 영화화권을 당시로서는 거금인 5만달러에 사들인(후에 다시 5만달러를 추가로 지불)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은 남자 주인공 레트 버틀러 역으로는 원작자인 마가렛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촬영 중 미첼 여사의 추천에 의해 클라크 게이블을 일찌감치 결정해놓고,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역의 배우를 찾지 못한 채 일단 촬영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촬영장에 들른 영국출신의 무명 여배우 비비안 리를 스칼렛로 결정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두 주연의 역사적인 명연과 함께 전 배역진의 참신한 조화와 획기적인 칼라촬영, 헐리우드 최고의 각본가 7명과 셀즈닉 자신까지 참여한 완벽한 시나리오, 맥스 스타이너의 기념비적인 음악, 390만달러 라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거액의 제작비 등이 한데 모여서 애틀랜타 역의 남군 부상병들 장면, 애틀랜타 대화재속의 극적인 탈출장면, 레트와 스칼렛의 폭발적인 러브 씬, 멜라니 역의 하빌랜드가 보여준 은근한 강인함 등 수많은 인상적인 명장면들을 탄생시켰다. 처음에는 죠지 큐커(George Cukor)를 감독으로 촬영을 시작했으나, 의견 차이로 인해서 3주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서 <오즈의 마법사>를 막 끝낸 빅터 플레밍(Victor Fleming)에게 메가폰이 넘어갔다. 플레밍은 마지막 1주일을 남기고 과로로 쓰러지는 바람에 나머지는 샘 우드(Sam Wood) 감독이 찍었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타라의 테마(Tara's Theme)"를 비롯해서 영화사에 불멸의 명곡을 남긴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이 음악상을 놓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영화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 후반에 이미 실제 촬영과 특수 덧촬영 기법을 동원했고, 무수한 등장인물, 셋트, 동원된 엑스트라, 음악, 촬영, 의상, 고증, 음향 등 세밀한 부분을 꼼꼼히 챙겨 전체적인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 그 제작능력 또한 놀라운 것이다. Original Sound Track 영화 음악 역시 영화 음악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획기적인 시도로 충만했다. 작곡가 막스 스타이너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되게 만들었던, 명실공히 영화 음악의 금자탑.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화음악 작곡가인 막스 스타이너는 13살에 비엔나의 음악 황실 아카데미를 졸업했을 만큼 수재였다. 더불어 그는 8년간의 코스를 단 1년 만에 완성한 음악의 신동이었다. 구스타프 말러 밑에서 수학했던 그는, 14살 때 이미 오페라를 작곡했고 16살 때부터 전문적인 지휘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1914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상임 지휘자로 일했고 1929년엔 본격적으로 헐리웃으로 건너가 영상과 절묘하게 결합되는 음악의 개발에 주력했다.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 200편이 넘는 영화에 음악적 숨결을 불어넣었으며, 무려 15차례나 아카데미 음악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35년 |
카페 이름 : 차돌의 가족쉼터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ysw1071
카페 소개 : 이제 막 세월의 흐름을 가슴으로 느끼는 차돌의 놀이터이며 차돌 가족의 대화방입니다. 취미를 함께하는 친구와 선후배님들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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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Deborah
글쓴이 : 김보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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