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가로되 저를 그 집으로 물러가게 하고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삼하 12:10)
다윗은 어려서부터 양떼를 온 몸으로 보호하는 훌륭한 목동이었으며, 아직 용모가 젊고 붉은 미소년 시절에 거인 골리앗을 단번에 쓰러뜨린 용감무쌍한 용사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의 나팔이 울렸던 장군이었으며, 주위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감히 넘보지 못하는 강성대국을 일으킨 위대한 왕이었다. 물론 그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교묘하게 살인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나단 선지를 통해 그 죄를 통회자복하고 다시금 회복될 수 있었다. 모든 상황에서 승리를 이었던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이 “다윗이 감람산 길로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 15:30)와같이 그토록 처참해진 이유는 바로 자녀교육을 소홀이 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왜 자녀교육에 실패했는지를 통해 우리 자신과 교회에게 필요한 교훈을 얻고자 한다.
다윗 왕가의 골육상잔의 비극은 다윗의 아들 암놈이 이복형제인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범함으로 발단되었다. 압살롬은 두해 동안 철저히 준비하여 암놈을 살해하고는 그술로 도망하여 삼 년을 숨어 지낸다. 요압의 개입으로 다윗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하지만, “왕이 가로되 저를 그 집으로 물러가게 하고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삼하 12:10)와같이 아들을 꾸짖기는커녕 만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압살롬이 이태 동안을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삼하 14:28)처럼 부자가 같은 도성 안에 살면서도 요압이 다시 개입할 때까지 두해동안 계속되었다. 압살롬이 요압에게 “이제는 네가 나로 왕의 얼굴을 보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가하니라”(삼하 14:32b)라며 강력하게 항의하자,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 말을 고하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저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삼하 14:33)처럼 다섯 해만에 아들을 만나지만 그저 입을 맞춰주는 것이 끝이었다.
다윗이 자녀교육에 실패한 첫째 원인은 자녀교육에 대해서 도피적인 태도이었다. 다윗은 두려움 없이 적군에게 돌진하는 용감한 장군이었으며 국가의 위기를 돌파하는 위대한 통치자였지만,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책무에 대해서는 늘 피해 다녔다. 마치 요사이 아버지들이 자녀교육은 엄마들의 책임인양 자녀교육에 대해 등한시하는 태도와도 같다. 교회도 아직 신앙의 훈련시기에 있는 청년들을 주일학교 교사로 주로 세우고는 신앙의 연륜 자들은 나 몰라라 한다거나, 주일학교에 대한 인적 물적 투자에 대해서는 너무도 인색한 것 역시 다윗이 자녀교육에 대해 도피적 태도를 보인 것과 다름없다.
둘째 원인은 다윗이 자녀교육에 대해서 피동적인 태도이었다. 다윗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자녀교육에 대해서는 그렇게 소극적이고 피동적일 수가 없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형제를 죽였으며 부자간의 갈등관계가 수년간 지속되어도 외부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한 자기 스스로는 자녀교육의 문제에 직면하질 않는다. 마치 대부분의 부모들이 신앙교육은 주일학교에, 지식교육은 학교나 학원에 내맡기고는 자신들은 돈만 대는 후견인 역할만 하는 것과 같다. 교회도 구색을 맞추듯이 교회학교를 마지못해 운영하고 실제적으로는 아이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도 다윗이 자녀교육에 대해 피동적 태도를 보인 것과 비슷하다.
셋째 원인은 다윗이 시의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교훈을 주지 않는 것에 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즉각적으로 적절한 명령을 내리고, 현명한 결단으로 나라를 굳건하게 세워나갔다. 그런 다윗이 압살롬이 형제를 살인했는데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인 후에도 오년이나 뜸만 들었으며, 시기를 다 놓친 후에 고작 압살롬에게 입 맞추는 것이 다였다. 이로 인해 압살롬의 한 맺힌 상처가 원한으로 변하여 아버지와 국가를 계획적으로 반역하게 된다. 마치 요즈음 부모들이 어린 시기가 좋은 성품을 심기에 가장 적절함에도 성적이라는 올무에 빠져서 기본적인 신앙교육이나 예절교육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어떤 교회들은 부모들의 요구에 적극 부응하여 주일학교를 빨리 마치고 학원에 갈 시간을 주기위해 주일학교의 축소를 거듭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교훈을 받지 못한 압살롬이 자신도 비참하게 멸망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를 가장 처참한 상황으로 몰아갔으며 국가도 망가뜨렸는데도 말이다.
다윗이 자녀교육에 대해 도피적이고 피동적인 태도를 가졌으며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교훈을 자녀에게 주지 않으므로 인해 아들도 죽고, 자신도 가장 처절한 상황에 처하고, 국가까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많은 부모들과 교회가 다윗이 자녀교육에 실패한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이 시대에 다윗의 실패가 우리들과 교회에게 주는 경고는 실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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