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거사의 여행기/다른 여행기

터어키 여행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09. 10. 1. 13:12

 

터키의 아름다운 풍광과 유적

김 형배 E-mail:hyoung865@naver.com

터키는 온갖 매력으로 가득 찬 곳이다.

시간이 빚어낸 신비로운 자연과 고대 유적을 만날 수 있다.

희한한 곳이 참 많다.

눈길 닿는 곳마다 탄성이 절로 난다.

여행이나 산행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 내 아내는 나보다도 더 앞장서서 좋아하다 보니 우리 부부는 남들보다 여행이나 산행을 더 많이 해왔던 것 같다. 외국관광도 여러 곳을 다녀 봤지만 국내여행은 안 가본 곳이 거의 없다시피 계절구별 없이 수시로 즐긴다.

이번에는 친구 따라 터키여행을 함께 할 기회를 얻었다. 자연 경관을 더 즐기는 우리 부부는 유적 등 문화유산만을 보기 위한 여행은 -특히, 터키는 가볼만 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좀 그렇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예상과는 달리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의 관광 등 두 가지 관심을 모두 만족시켜 주었다. 나는 외국여행을 하면서 가끔씩 그곳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우리 한국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산야와 조상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에 자부심을 느낄 때가 많았다. 외국여행만을 유달리 즐기는 어떤 이는 외국의 역사유물이라든가 신비스럽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너무 지나치게 찬양(?)하는 친구가 있다. 물론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든가 중국의 만리장성과 병마용,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보면서 불가사의의 신비감을 동감하지 않는 바가 아니다. 그것대로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면 우리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에 따른 아름다운 강산과 조상들이 남겨준 그 숱한 역사적 흥망성쇠에 따른 많은 자료와 유물의 가치는 어떠한가! 나는 내 조국과 조상들의 자랑스러운 슬기를 존경하며 큰 자부심을 느낀다. 이제부터 ‘8박9일의 터키여행’에서 의외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낀 것 중 극히 일부만을 두서없이 소개하려 한다.

▣ 지중해의 꽃, 터키(Turkey) : 지중해의 꽃이라고도 하는 터키의 정식 국명은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이다. 수도는 앙카라이며, 국토면적은 77만 4,815㎢로서 한반도의 3.5배 정도이며, 인구는 71,517,100명(2008년))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1,018달러(2008년), 평균수명은 73.14세(2008년)이며, 1인당 외채는 9,400TL(터키리라,약6,000불)로 많은 편이군요.

터키의 민족은 투르크족이라 한다. 투르크(Turk)란 말은 ‘강력한’, ‘힘센’이란 뜻이다. 국화는 야생 튤립이다. 종교는 이슬람이며 인구의 98%가 무슬림(이슬람교도)이다.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평화’와 ‘복종’을 의미한다. 인구의 90% 이상이 터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7% 가량이 쿠르드어, 약 1%가 아랍어를 사용한다.

터키는 밀을 주식으로 하는 농업국으로 농지면적은 412,230㎢로서 한반도 면적의 거의 두 배나 되며, 기후도 알맞고 농업기술 수준이 높은 나라다. 현재는 유럽연합(EU)의 준회원국으로 EU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터키는 한국전쟁 참전국으로서 우리나라를 혈맹 우방국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의 전후 경제발전을 높이 평가하면서 우리나라와의 경제협력 증진을 희망하고 있다. 양국은 국민정서, 언어, 관습 등 여러 면에서 비슷하여 유대감이 있으며, 터키 사람들이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 만큼 우리에게 우호적이다. 특히,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두 나라 국민들 간의 유대감이 더욱 확산되었다.

* 여정의 주요 코스 *

서울출발➛인천공항➝(모스크바 경유)➟이스탄불(톱카프 궁전)➳앙카라(한국공원

:6.25참전용사 기념비)➾카파도키아(소금호수, 괴뢰메 골짜기, 파샤바, 데린쿠유)➛파묵칼레(석회봉과 노천온천, 히에라폴리스)➝에페소(대극장, 셀시우스 도서관, 하드리아누스 신전)➟트로이(목마로 유명한

유적지 관광)➳(다르다넬스 해협 정기선 탑승)➾이스탄불(성소피아 성당, 히포드럼, 슈탄아흐메트 사원)

➳이스탄불 공항 출발➣(모스크바 공항 경유)➢인천공항 도착➙歸家

▣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곳, 이스탄불(Istanbul) : 터키에서 첫 발을 디딘 곳은 이스탄블이다. 이스탄블은 터키 최대의 도시로 인구는 약 1300만 명이다. 옛이름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며,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Byzantium)이라 하였다.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에 위치한 지중해의 보석 이스탄불은 1923년까지 1600년 동안 수도였다. 이스탄블에는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오스만 제국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사적이 분포해 있다.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이 도시는 아흐메트 사원(블루모스크), 슐레이만 사원 등의 2대 이슬람사원을 비롯하여 아야 소피아, 톱카프 궁전(현재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등의 유적이 많은 데, 첫 관광지로 우선 톱카프 궁전을 관람하였다.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황제(술탄)들이 거주하였던 궁으로, 영화로웠던 오스만 제국의 역사를 보여주듯이 이곳의 내부 장식들과 유물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궁 전체가 지금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궁의 마당에는 하렘이 따로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술탄의 여인들이 거주했던 별채로써 내부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터키 최고(最故)라는 대사원을 들어가려는 데 신발을 벗으라 한다. 성스러운 사원을 들어가는데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모자는 써도 좋고 썬크라스를 껴도 좋은 데 반바지나 짧은 치마를 입은 사람은 그곳에서 잠시 건네주는 긴 옷을 입어야 입장이 허락된다.

우리는 관광 여정 후반 귀국 길에 이스탄블의 주요 코스를 관광하기로 하고, 우리가 타고 있는 전용버스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로 향하였다.

▣ 터키의 수도, 앙카라(Ankara)를 향하여 : 새로 건설한 쭉 뻗은 고속도로를 우리가 탄 버스가 달리고 있다. 대형 덤푸 트럭들이 간간이 눈에 띄고 가끔은 승용차도 바쁘게 달리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의 연속이다. 평원의 아름다움과 도로변 화색이 짙은 야생화가 지루함을 달래고 있으나 워낙 장거리 운행이라 좀은 지루하고 피로하다. 앙카라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먼저 그곳 ‘한국공원’에 있는 ‘6.25 참전용사의 기념비’를 찾아 참배를 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당시 터키는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1만 4,936명의 대규모 병력을 유엔군으로 보냈다. 721명이 전사, 175명이 행방불명, 2,147명이 부상을 당했다.

언어도 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어족(Ural-Altaic languages)’에 속하는 터키는 우리 형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이다. 소(小) 아시아 아나톨리아 고원의 북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앙카라는 1923년의 새 공화국 성립과 더불어 새로운 수도로 발족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세워진 신전과 욕탕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앙카라는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어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좁고 정비되지 않은 통로와 바자르(시장)를 중심으로 가옥이 밀집해 있으며, 시내에는 많은 사원과 히타이트박물관(고고학박물관)과 민속학박물관이 있고, 부근에는 선사시대와 고대, 또는 비잔틴시대 등의 유적도 풍부하다. 특히, 민속학 박물관은 터키 민족의 생활상, 공예품, 생활용품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앙카라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공업으로는 시멘트, 금속 등의 공장 외에 트럭공장이 있다.

우리 일행은 아침식사 후 재래시장 등 시내 명소를 간단히 관광하고, ‘자연이 빚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로 이동하였다. 목이 마르다. 물을 또 사먹어야겠다. 물건을 헤프게 쓸 때 ‘물 쓰듯 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이곳 터키야말로 물이 귀하신 존재라 할까. 어딜 가나 물은 돈으로 사먹어야 될 뿐 아니라 소변을 볼 때도 돈을 내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타고 가는 전용버스 냉장고에 먹을 음료수병을 가득 싣고 돈을 내면서 꺼내어 목을 축여야 했다. 하기야 우리 국내에서도 관광이나 길을 나서면 물을 사먹어야 하기는 마찬가지 인가요! 그런데 현지인이 건네준 음료수를 마신 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금품이나 소지품을 도난당한 사례가 있다니 친절을 베풀며 접근하는 현지인을 조심해야 하겠다.

버스로 이동 중에도 눈앞에 전개되는 아름다운 풍광을 빠짐없이 ‘디카’에 담고 싶어서 나는 전면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서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소금으로 둘러싸인 소금호수, 멀리는 노아의 방주가 묻혀 있다는 터키에서 제일 높은 만년설산 ‘아라랏 산(5,156m)’이 눈에 들어오고, 한없는 평원의 지평선은 수평선으로 바뀌고, 나지막한 산자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붉은 지붕의 집들이 따사로운 햇볕에 반사되어 더 아름답게 보였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네 시간이나 되는 장거리인데도 볼거리가 많으니 지루하지가 않다.

▣ 시간이 빚어낸 경이로운카파도키아(Cappadocia) : 카파도키아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275km쯤 떨어져 있다.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동서문명의 융합을 도모했던 교역로로 크게 융성했으며, 로마시대 박해를 피해 숨어든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했던 기암에 굴을 뚫어 만든 암굴교회가 남아 있다. 그 내부에는 화려한 성화가 그려져 있다.

괴레메 계곡은 300만 년 전의 화산 분화로 퇴적된 응회암층(凝灰岩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땅 속에서 솟아나오는 지하수나 빗물 등에 의해 형성된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늘어서 있는 계곡이다. 이런 환상적인 기암군(奇巖群)은 전 세계에서 오직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원뿔 형, 버섯머리 형, 송곳 형, 원통 형, 모자 쓴 형 등 환상적인 형상의 다양한 ‘요정의 굴뚝’,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간 도시와 집들, 이 모든 것이 이 세상 것이 아닌 천상의 분위기 속에 놓여 있다. ‘인간의 상상력이나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된 아름다움을 휠씬 능가하는 광대하고 비범한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 성당이나 수도원이 360여 개에 이른다. 카이마리크 지구 등지에는 동굴 속에 미로 같은 지하도시가 건설되었고, 주택과 학교, 식량저장고, 우물, 환기용 굴뚝 등과 함께 묘지까지 조성되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낸 지하도시 ‘데린쿠유’를 관람했다. 이 지하도시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깊이는 80m로 약 20층 규모인데 지하 50m 정도만 개방된다. 이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약 3만 명이 6개월 동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 박해기간동안 이런 지하도시에 약 300만 명이 몸을 숨겼다고 한다.

비둘기 집으로 가득찬 ‘우치히사르’ 계곡의 바위산에는 헌신과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들이 아름답게 날아다닌다. 바람과 눈비가 만든 자연의 모습은 놀랍다는 표현을 넘어 그저 기이할 뿐이다. 꽃꽂이 바늘받침 같은 뾰족한 바위 옆구리엔 창문이 붙어있다. 낙타바위를 보기위해 달리던 버스가 길가에서 잠깐 멈쳤다. 우리 일행은 우르르 밖으로 나와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 댔다. 카파도키아 열기구 투어는 터키여행에서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다. 아나톨리아 고원 중앙에 버섯모양의 기암 등 대자연의 풍광이 감탄을 자아낸다.

동굴교회 내부의 벽과 천장에는 성화가 그려져 있으나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카파도키아에는 많은 비잔틴 프레스코화가 그려졌으나 대부분 파괴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9세기 후반에서 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괴레메 야외 미술관은 엘마르 키리세(사과 성당)와 그리스도의 일생을 그린 토칼 키리세, 우아한 화풍의 카랑루크 키리세(어둠의 성당), 계곡의 풍경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메리에나마 키리세(성모 마리아 성당) 등 대표적인 성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가방을 메고 귀가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종교 탄압을 피해 이곳 카파도키아, 은둔의 땅에 숨어들었던 까마득한 조상들의 후예일지도 모른다.

이동 중에 우리는 도자기 공장에 들려서 도자기 만드는 체험을 하였다.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호기심에 손을 번쩍 든 내 아내가 지명되어 앞치마를 걸치고 ‘물래’ 앞에 앉아 도자기를 만드는데 서툰(?) 웃기는 작업으로 우리 일행 모두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어 잠시 피로를 풀 수 있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다양한 ‘케밥’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어 맛있고 즐거운 만찬이 기대된다. 프랑스, 중국 요리와 함께 세계3대 요리로 꼽히는 터키의 전통음식으로는 ‘케밥’이 유명하다. 케밥은 터키어로 ‘구이’를 뜻하는 말로 구워서 만든 요리는 모두 케밥이라고 한다. 가지와 토마토 등의 야채를 넣고 고기도 넣어 볶은 ‘세브제에베이’, 피자와 비슷한 ‘카사류’, 고기를 꼬챙이에 끼어구운 ‘되네르 케밥’,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이 즐겨 먹었다는 ‘이스켄델’ 등 다양하지만, 내가 터키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숯불향도 좋고 부드러운 양고기 ‘쉬시케밥’이었다. 야채를 곁 드린 닭꼬치와 비슷한 ‘타북쉬쉬’는 밥과 먹기에 좋았다. 이태원에도 맛있는 케밥집이 있다는데 한번 가 볼까 한다.

▣ 목화송이처럼 새하얀 석회봉과 노천온천, 파묵칼레(Pamukkale) : 파묵칼레는 터키어로는 '목화 성'이라는 뜻이다. 수천 년 동안 지하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온천수가 산의 경사면을 따라 꼭대기부터 흘러내린 석회암층으로 덮여 온통 하얗게 빛난다. 경사면은 자연 그대로의 굴곡을 따라 층층이 쌓인 다랑논처럼 보인다. 파묵칼레 언덕 꼭대기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어들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서 까칠한 석회암 위로 흐르는 온천물의 느낌을 즐길 수 있다. 이곳 온천물은 예부터 그 질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로마의 황제와 귀족은 물론 클레오파트라까지도 이곳에서 온천욕을 즐겼다고 한다. 수질에 얽힌 전설도 전해진다. 옛날 아주 못생긴 처녀가 결혼상대를 찾지 못하자 비관하며 죽으려고 언덕 아래로 몸을 던졌다. 온천물이 고인 층에 떨어진 그 처녀에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상처 하나 없이 깨어난 처녀는 몰라볼 만큼 예뻐졌고, 이 곳 영주의 아들에게 청혼을 받아 백년가약을 맺고 행복하게 살았다는-글쎄, 믿거나 말거나-얘기가 전해온다. 로마시대에도 유명했던 이 파묵칼레의 온천과 석회붕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언덕 경사면의 석회층을 보호하기 위해 입욕을 금지하고 있다.

파묵칼레의 언덕 정상 평지에는 고대 로마시대 유적으로 에메네스 2세가 세운 히에라폴리스란 도시 유적이 남아 있다.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름답게 장식된 원형극장의 무대는 로마제국 시절의 영화를 보여준다. 이 도시의 수호신이기도 한 아폴로 신전도 볼 수 있다.

우리들은 파묵칼레에서 거의 3시간을 달려서 로마의 고대도시 ‘에페소’에 도착하여 교과서나 매스컴에서나 봤던 로마의 유적들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다소 피곤하긴 해도 호기심으로 가까이서 만져 보며 기념사진도 찍으니 감회가 새롭다.

▣ 터키의 대표적인 고대 도시, 에페소 : 로마의 유적지로 가득찬 고대 도시 에페소는 기원전 11세기 말에 건설된 이오니아 12개 도시 국가 중 하나다. 헬레니즘시대와 로마시대에 최대 항구도시로 번영을 누렸던 곳이다. 지금은 무너진 건축물과 조각상만이 남아 당시의 부유했던 도시 모습을 짐작케 한다.

성모마리아가 마지막 생애를 보냈다는 집을 지나 뙤약볕 아래 그대로 노출돼 있는 유적지로 내려가면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헬레니즘 시대에 건축된 2만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원형의 대극장, 대리석이 깔린 마블스트리트, 에페소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셀시우스 도서관, 여신 테티스와 메두사의 부조가 새겨진 하드리아누스 신전 등 로마시대 유적이 수두룩하다.

유적이 있는 곳의 조각품은 성한 것이 별로 없다. 어느 곳이 건 여행하다보면 머리가 잘린 동상, 목이 없는 조각품 코가 잘려 나간 조각품, 팔이 없는 조각품들이 역사의 아픔을 전해준다. 수천 년의 세월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지만 정교한 조각상과 웅대한 신전 기둥은 여전히 그 빛을 잃지 않고 강렬한 햇빛 아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아이발릭’으로 향했다.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때 묻지 않은 아름다운 풍광, 맑은 공기와 쾌적한 바람 등 자연이 아름다운 곳은 지구상에 여러 곳에 있지만 이곳 터키의 자연 그대로의 끝없는 대평원과 풍광이 다른 여행지에 비교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펼쳐진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우리 관광객들은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버스가 쭉 뻗은 평원의 고속도로를 한참을 달리니 그렇게도 청명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다가 온다. 건기에 오는 비는 그야말로 단비란다. 시원해서 좋다. 허나 비는 거짓말처럼 곧 그치고 또 다른 장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길 양쪽에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밀밭들과 하얀 꽃이 만발한 양귀비농장 그리고 점을 찍어 놓은 듯 서있는 묵은 올리브 나무와 빨갛게 익은 체리나무들, 도로변에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짙은 꽃 색깔의 다양한 야생화, 가끔씩 보이는 양떼와 소떼들이 정겨워 보인다. 5시간의 장거리 이동이 생각보다 그리 지루하지가 않다. 하루 종일 관광을 하고 난후 노을 지는 풍경을 보며 먹는 식사는 정말 맛있고 기분이 좋았다. 이제 내일의 일정을 기대하며 단꿈을 꿀 시간이다.

▣ 거대한 서사시, 트로이 전쟁(The Trojan War) : 오늘은 아침 식사를 평소보다 일찍 먹고 출발하였다. 오늘은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유적지를 관광하는 날이다. 우리 교민 출신인 관광 가이드가 매우 유식하고 친절하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수백 년이 지난 후 구전되어 오던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lliad)와 오딧세이(Odyssey)’의 줄거리인 전쟁의 진행과정을 열심히 들으면서, 무려 세 시간이나 달리어 이곳 폐허의 도시인 트로이(Troy)에 도착하였다.

누구나 잘 알듯이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그리스와 트로이와의 전쟁이다. ‘트로이 전쟁’ 뿐 아니라 ‘트로이’라는 도시 자체도 실재하지 않았던 도시로 여겨졌지만,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1822-1890)이 1870년부터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함으로써 트로이는 신화 속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닌 실재했던 도시라는 것이 밝혀졌고, 과거 여러 문명이 거쳐 갔던 중요한 도시로, 여러 층의 다양한 도시들의 폐허가 발굴되어 199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와 트로이 간에 10년이 넘도록 벌어진 전쟁으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을 트로이로 끌고 가자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들은 힘을 합쳐 트로이로 쳐들어간다. 하지만 양측의 전력은 서로 비슷하여 전쟁은 10년이 넘게 지속된다. 결국 지혜로운 오디세우스(Odysseus)의 트로이 목마(The Trojan Horse) 작전 -그리스 군이 트로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목마 속에 병사들을 숨겨가지고 가서 트로이를 정복- 으로 전쟁은 그리스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우리가 일상어로 쓰는 ‘상처받기 쉬운 약점’을 가리키는 아킬레우스건(Achilleus tendon)이란 용어도 트로이 전쟁 최고의 영웅인 아킬레우스에서 비롯된다. 아킬레우스(Achilleus)는 미르미돈족의 왕인 펠레우스(Peleus)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Thetis)의 아들로, 테티스는 아킬레우스가 어렸을 때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고자 스틱스 강에 그의 몸을 담갔으나 손으로 붙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강물이 묻질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었다는 얘기다. 또 요즈음 많이 쓰는 ‘멘토(Mentor)’라는 용어도 이 신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즉 오딧세이가 출격하느라 그 아들을 친구에게 부탁했는데 그 친구가 아들의 친구같이 또는 조언자, 아버지 역할을 하며 잘 돌봐주었다. 그의 이름이 바로 멘토(Mentor)였다. 그 이후 멘토는 ‘조언자 역할을 하는 사람’, 즉 ‘한 사람의 인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멘토의 활동을 '멘토링(Mentoring)'이라고 하는데, 특히 복잡한 현 사회에서 리더십이 중시되면서 멘토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고 있다.

사실, 트로이 유적지는 허허벌판 언덕일 뿐이다. 주변에 볼 만한 자연경관 같은 게 따로 있는 곳이 아니다. 허물어진 성벽, 집터 자리, 조각들의 잔해만이 옛일을 전해주고 있다. 관광객들의 기념사진 촬영용으로 만들어놓은 커다란 목마(木馬)와 잔디밭에 항아리 몇 개가 뒹굴고 있다. 현지에는 유물관도 없는데 세계 각처에서 몰려온 관광객이 벅쩍거린다! 전쟁 영웅의 생생한 무용담을 확인하고 싶어서 일까!

우리는 정기선으로 해상관광을 즐기며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특이한 건물을 보면서, 세계1차 대전의 격전지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와, 오찬으로는 터키가 자랑하는 ‘케밥’을 맛있게 먹은 후 이번 관광의 후반 여정이자 하이라이트인 이스탄블로 달려와 동양과 서양의 문물을 교환하였던 곳으로 미로처럼 얽힌 토산물 지하시장 ‘그랜드바자르’를 관광하였다. 나는 보석류, 특산물, 풍물 등 특이하게 보이는 모습은 빠짐없이 ‘디카’에 담았다.

▣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신비로운 도시, 이스탄불 : 이스탄불은 참 조화로운 도시다. 고층 빌딩과 현대적인 건물 사이로 여전히 빛을 발하는 옛 건물들은 여행객 마음을 사로잡는다. 수백만 인구가 바쁘게 일상을 보내는 도심 속에서 수천 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옛 흔적은 반갑기만 하다. 터키의 지리적인 위치 또한 매력적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경계 짓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끼고 자리한 덕분에 동서양 문화를 고루 받아들이게 됐다. 실크로드와 지중해 상권을 이어주는 구실을 하며 중세 유럽의 상업을 부활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동로마와 비잔틴 그리고 오스만까지 찬란했던 제국의 수도로 이어져온 이스탄불에는 여러 유적이 산재해 있을 뿐 아니라 당시 문화가 잘 보존돼 있다. 이스탄불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성소피아 성당,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히포드롬 광장 -톱카프 광장은 이미 초반에 관광- 을 도보로 둘러보았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성소피아(Sancta Sophia:성스러운 지혜)성당은 원래 정교회의 사원이었지만 오스만 제국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뒤로는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성소피아 성당은 비잔틴제국 성당 양식과 오스만제국의 이슬람 모스크 양식이 혼합된 신비로운 건축물로 남아 있어 여행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내부에는 ‘마리아의 손 모양’이라는 기둥이 있는데 기둥의 움폭 파인 곳에 손가락을 넣어 물로 적셔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흔적이 함께 남아 있는 성소피아 성당은 조화로운 도시 이스탄불과 가장 많이 닮은 곳이다.

이스탄불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 역시 성소피아 성당과 더불어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벽과 기둥이 푸른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 까닭에 `블루 모스크`라는 별칭이 붙었다. 둥근 돔과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이다. 현재 이슬람 성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터키인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햇빛이 비치는 한낮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를 빠져나오면 정면에 히포드롬 광장이 보인다. 비잔틴제국 시대 때 시민운동 중심지이자 전차경주 등 각종 행사가 열린 곳이다. 원형경기장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곳 공원과 사원을 열심히 관람하고 있는데 아릿따운 여인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 나는 동행한 아내에게 눈빛으로 양해를 구하면서 잠시 모델역을 했는데 기념으로 그 여자의 모습을 내 ‘디카’에 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이곳에 덮개가 있는 시장으로 4,000여개의 상점이 모여 있는 카팔르차르시는 이스탄불 최대의 시장이다.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이 ‘그랜드바자르’는 보석에서부터 가방류, 의류, 민속적인 특산물 등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다. 나는 여기서도 쇼핑을 하며 터키 여행 중 수없이 많이 찍은 풍광과 추억물을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전송했다. 지금은 내 사진 찍는 기술이 프로급이라고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다.

터키는 토인비의 말과도 같이 '인류문명의 거대한 야외박물관'으로 그 찬란한 문화와 자연의 특징이 함축돼 있다. 예상대로 이번 터키에서의 여정은 오랜 역사로의 여행이고 찬란했던 문명과의 엄숙한 만남의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 등 9개나 되는 세계문화유산의 탐방만으로도 많은 추억꺼리를 얻은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특히, 이번 터키 여행에서 나는 물을 더욱 아껴 써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물의 귀중함을 더욱 심각하게 실감했다.

장시간의 비행, 장거리 버스 관광, 허리도 아프고 피로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빚어낸 신비로운 자연과 고대 유적을 만날 때 마다, 희한한 것들이 눈에 들어올 때 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탄성이 절로 나는 아름다운 풍광과 유적들! 특히, 한없이 펼쳐지는 드넓은 광야의 밀밭, 올리브와 체리나무들 그리고 짙은 색깔의 야생화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터키는 온갖 매력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필자약력 : 김형배 교장은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同대학원에서 석사학위(교육행정학) 취득.

성신여고, 서울고교, 덕수상고, 서초전자고 등에서 봉직하다가, 2007년 중등교장으로 정년 퇴직함.

저서로는 ‘가훈백선(家訓百選)’ 등이 있다. hyoung86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