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27일 시청
영화 속에서는 배에서 태어나 배에서 자라난 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인생이 그와 함께 배 위에서 몇년을 보내면서 그를 지켜본 유일한 친구 맥스에 의해 그려진다. 배에서 단 한번도 내려본 적이 없어서 배와 배에서 바라다본 바다만이 세상의 전부인 나인틴 헌드레드(피아니스트의 이름)는 오로지 배를 거쳐가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통해서만 바깥 세상을 경험한다. 배경은 1900년대 초, 많은 이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미국으로 향하던 때. 제각기 새로운 인생에 대한 꿈과 희망을 안고 바다를 건너는 배 안에서 나인틴 헌드레드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피아노 즉흥 연주곡을 들려줌으로써 행복과 감동을 선물한다. 적어도 어느 순간까지는. 늘 같은 공간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유한한 건반에서 무한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시려왔다. 저 좁은 세상에서 평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과연 순수한 건지 아니면 단순히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넓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인 건지. 배 안에서만 살아가는 주인공의 인생을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느끼는 내 자신이 옳은 건지 그른 건지 판단도 안되고, 내가 과연 아무리 영화 속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의 가치를 잴만한 자격이 있는 건지 화가 나기도 하고. 이미 고철이 다되어버린 폐선 직전의 배에서 가까스로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찾아낸 맥스를 앞에 두고 자기가 왜 배에서 내릴 수 없는지 설명하는 나인틴 헌드레드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가서, 정말 오랜만에 펑펑 울면서 경청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복잡한 세상이 그에게는 무한대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이고 그런 피아노는 그가 연주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많은 것에 상처를 받고 하루하루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무한한 세상. 한 때 배에서 내릴 각오를 하고 멋진 코트를 걸친 채 다리를 반쯤 걸어내려갔는데, 다시 발걸음을 돌려 배로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거대한 도시의 끝도 없이 이어져있는 길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유한에서 무한한 행복을 창조해 때마다 배를 거쳐가는 이천 명의 승객들에게 선사하는 것이 인생의 기쁨이었던 그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무한히 어지러운 세상은 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고. 그건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야, 라는 말에서 어떤 회유로도 꺾을 수 없는 신념이 묻어났다. 배에서 내리기보다는 차라리 인생에서 내리는 것이 낫겠다고 하는데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을 내가 가엾게 여겼던 나인틴 헌드레드의 반만큼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건지.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지 반만큼이라도 알고 있는 건지. 아무런 확신 없이 신념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철학과 신념이 있나.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어디까지 갈 각오가 되어있는가. 나인틴 헌드레드와 맥스가 처음 만났을 때 흔들리는 배안에서 춤추듯이 미끄러지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라든가(가장 판타지 다웠던) 재즈의 창시자라는 젤리 롤이 찾아와 대결하는 부분에서 손의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르게 연주하는 모습, 배 안에서 음반을 녹음하다가 창밖으로 한 여자의 모습을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지는 그 표정과 아름다운 음악, 결코 격앙되지 않는 차분하고 따뜻한 목소리 등등 여러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몰입하지 못하면 상당히 그저그런 지루한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 특별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진실한 마음으로 경철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큰 힘이다 싶다. 오늘 내가 2시간 3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빠져들 수 있다면, 정말 많은 것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새삼 독자나 관객을 깊이 감동시키는 이야기를 그려낸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생각하게 됐다. 만약 내가 쓴 소설을 누군가 읽거나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만큼의 감동을 받는다면? 아마 고맙고 뿌듯한 일일 거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과하다 싶은 표현이긴 하지만 내가 그려낸 이야기로 세상 어디엔가 있을 내가 모르는 어떤 이에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건 어쩌면 숭고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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