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미국의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은 흑인으로서 역사상 위대한 전설적인 알토 성악가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대가인 토스카니니로부터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 국왕을 위해 백악관에서 개인 음악회를 열었던 적도 있었다.
또 그녀는 워싱턴에 있는 링컨 동상 밑에서 미합중국의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8만여 명의 군중 앞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이렇듯 성악가로서 최고의 지위를 누렸던 마리안에게 한 오페라 전문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리곤 예정된 질문을 시작했다.
“당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입니까?” 물론 기자는 그녀의 대답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마리안의 공연 때마다 빠짐없이 취재를 했던 기자는 그녀가 공연을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던 순간을 죄다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리 그녀의 말을 짐작한 기자는 이미 다음 질문을 적은 쪽지를 꺼내 들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대답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리안 앤더슨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제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늙으신 어머니께 이젠 더 이상 인종적인 차별 대우를 받지 않게 되었다고 말씀 드릴 때였습니다.”
가난한 흑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녀는 13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정규 음악 교육을 받고 싶어서 학교를 찾았으나 흑인을 뽑지 않는다는 말에 낙담했다.
어머니의 따뜻한 격려로 다시 새로운 희망을 품고 공부했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의 소개로 이태리 음악가 보게티에게 음악을 배웠으며 뉴욕 필하모닉 주최 콩쿠르에서 우승 한 후 23세에 뉴욕 필과 협연하고 1930년에 유럽 순회공연을 하였다.
1955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 입단 한 후 1999년 20세기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분야별 100명의 여성 발표자 중에 예술분야에서 최고로 뽑혔다고 한다.
그는 인권 운동가로도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그녀가 맨 처음 독창회를 가졌을 때에 각 신문사와 평론가들의 혹평은 그녀가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도 아니라고 비웃었다고 한다.
그녀는 통곡하면서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녀의 어머니는 말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사람에게 칭찬받기를 원하느냐 너에게 그런 평가를 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느냐?
그 몇 사람들 외엔 많은 사람이 너의 노래를 듣기를 좋아한다.
모두에게 지지를 받으려는 것은 큰 교만이라고 일러 주면서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은 고통을 이긴 사람들이다.
그는 아이젠 하우어 대통령의 특사로 한국에도 와서 이화대학 강당에서 노래 부른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마리안 앤더슨의 노래를 영상으로 들었으며 그때의 감동은 영원히 잊혀 지질 않는다.
흑인 영가들을 많이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줘.
Swing Low, Sweet Chariot.
너무 감동이 커서 지금까지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Deep river My home is over jor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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