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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코너/곡반중학교

선생님은 울고 계셨다 2010. 10. 25 곡반중직원회의

가을이 점점 익어갑니다. 지난 금요일 소풍 아무 사고없이  진행되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토요일 휴업일임에도 불구하고 각자 맡은바 소임을 다해 초등학교 대상 경시대회 잘 마무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또 sports club 등 잘 진행해준 체육과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 울고 계셨다> 2010. 10. 25 곡반중직원회의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곤 한다. 그 때 내 나이 열두 살, 가난한 집안 살림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살았던 임자도에는 그 때까지 학교란 게 없어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한지라, 항상 반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게 버릇이 되어 있었다.

여느 시골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때는 참 욕을 많이 했다. 좋아도 욕, 싫어도 욕, 욕이 아니면 대화가 안 될 정도였다. 욕도 그냥 욕이 아니라 지금 생각하면 온갖 상스러운 소리가 총동원된 그런 욕이었다.

이런 우리들 모습에 선생님은 때로는 꾸중을 하셨고 때로는 벌을 주셨다. 또 어떤 때는 눈을 감으라고 한 뒤 여러 선현의 가르침을 주기도 하셨지만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조례 때, 선생님은 조그만 종이를 가져와서 우리에게 10장씩 나누어주셨다. 그 종이에는 선생님의 도장이 꾹꾹 찍혀 있었다. '욕표'였다. 만약 친구가 욕을 하면 즉시 빼앗아서 보관하라는 것이다. 그래 토요일에 검사를 해서 다 빼앗긴 사람은 홀랑 벗겨 운동장을 돌게 하고 남에게 욕표를 한 장도 빼앗기지 않은 사람은 공책 한 권을 상으로 주신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의 귀가 번쩍 트였다. 그 어려운 시절 공책 한 권은 기막힌 상품이 아닐 수 없었다. 비료 푸대를 잘라서 공책으로 쓰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나 입을 봉하리라 몇 번을 다짐해도 튀어나오는 욕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드디어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선생님은 책상 위에 욕표를 다 내놓으라고 하시더니 1분단부터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욕표가 한 장도 없는 사람은 전체에서 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무서운 표정으로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아니 교무실이라니, 그 때 교무실에 가는 것은 지옥 가는 것보다 더 무서운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뒤따라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무실 바닥에 무릎을 꿇리고서 선생님은 물었다. "홀랑 벗고 운동장을 돌 테냐, 아니면 열 대를 맞을 테냐?" 아니 창피하게 어찌 이 나이 돼가지고 운동장을 돈단 말인가? 당연히 매를 맞겠다고 했다.

선생님은 긴 매를 가져와서 내 엉덩이를 까 내리더니 한 대, 한 대 때리시는 것이었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세 대째, 드디어 나는 고꾸라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런데 선생님은 울고 계셨다.

"태기야,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선생님은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나를 보고 계셨다.

나는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충격에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다시 뒤돌아 서서 매를 맞기 시작했다.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태기야,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가을이 저 만치 가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 지도에 얼마나 힘 드십니까. 그래도 우리만의 일이기에 좀 더 참고 인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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