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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5분 훈화자료집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12. 9. 28. 11:54

5분 훈화자료

 

내일은 공짜

 

 어느 이발소에 내일은 공짜로 이발해 드립니다'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보는 사람마다 공짜 이발을 하려고 벼르고 있다가 다음날 가서 이발을 했다. 이발을 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나오려니까,

  네, 손님. 사천원만 내시면 됩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손님이

  아니 이발을 공짜로 해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요?

  어디에 공짜라고 되어 있습니까?

 둘은 밖에 나가 간판을 보았다.

  여기 공짜라고 되어있지 않습니까?

  어디 공짜라고 되어 있습니까? 내일이면 공짜로 해드린다고 했죠.

  나는 어제 이 간판을 봤단 말이에요.

  그러나 이 간판은 여전히 내일을 가리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 언제 오면 공짜입니까?

  내일이오. 오늘은 항상 돈을 받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내일이니 기대할 수 없군요.

  내일은 당신의 날도, 나의 날도 아닙니다. 단지 오늘만이, 지금 이 순간만이 나의 것이요, 당신의 것일 뿐이죠.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이 순간에 충실해야 되죠.

 

 

두 야바위꾼

 

 영국인인 잭슨과 루이스는 2차 대전이 끝나자 서로 동업하기로 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 둘은 사람들을 속였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백동촛대를 은이라고 속였고 구리시계를 황금시계로 사람들에게 팔았다. 처음엔 짭짤한 수익을 올렸으나 그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시장에는 잭슨과 루이스가 사기꾼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보게, 이제 아무도 우리를 믿지 않게 되었네, 어쩌지?"

 잭슨이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자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오늘부터 정직하게 장사를 해보자구, 손님들이 우리를 완벽하게 믿을 때까지만 말일세. 한 10년쯤이면 될까. 그래서 우리를 사람들이 완전히 믿을 때쯤 크게 한탕 해보자구."

 그 길로 잭슨과 루이스는 헤어져서 각자 정직하게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 1년쯤 지난 어느 날 잭슨이 루이스를 찾아왔다.

 "이보게, 어떤가? 아직도 사람들이 날 믿으려 하지 않아. 난 망하기 직전이라구."

 "잭슨,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나 어쩌겠나. 우리가 멋지게 한탕 하기 위해 약속한 날까지 정직하게 장사를 해보자구."

 루이스의 격려를 들은 잭슨은 굳은 결심으로 돌아가 정직한 장사를 했다. 그리고 약속한 10년째 되는 날, 그들은 다시 만났다.

 "루이스, 이제 사람들은 완벽하게 날 믿게 되었어."

 "그거 잘 됐군. 나 역시 장사가 아주 잘된다네."

 그리고 그들은 한동안 서로 머뭇거리다가 겨우 잭슨이 말을 꺼냈다.

 "오늘은 우리가 한탕 크게 하자고 약속한 날이지. 그런데, 실은 나 앞으로도 계속 정직하게 일하려네. 남을 속이지 않으니 장사가 속임수를 쓸 때보다 더 잘 돼. 그걸 자네에게 말하려고 나왔다네."

 그러자 루이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친구, 나도 오늘 그걸 자네에게 말하려고 나온 걸세. 하하하."

 

 

 사랑하지만 마음이 아플 거야

 

 큰아이가 잘못을 저지른 동생에게 이렇게 타이르고 있었다.

  넌 착한 일을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빠가 널 사랑하지 않으실 거야.

 이 말을 들은 아빠는 두 아이를 불러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야,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단다.

  하지만 우리가 나쁜 짓을 한다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실 것 아니겠어요?

 아이는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야. 좋은 일을 하거나 나쁜 일을 하거나 이 아빠는 너희들을 항상 사랑한단다. 그렇지만 그 사랑에는 차이가 있겠지. 네가 착한 일을 한다면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사랑할 것이고, 만일 나쁜 일을 한다면 사랑하지만 마음이 아플 거야.

 아빠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제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옛날에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들 내외가 있었다. 늙은 어머니가 앓아 누워 병구완을 하느라 살림이 다 거덜나고 마지막 남은 황소 한 마리를 팔기로 하였다.

 아들은 황소 판 돈을 가지고 산을 넘다 그만 강도를 만났다. 어머니 약값으로 쓰려고 판 황소 값이니 제발 그냥 보내달라고 애원을 하였지만, 강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칼을 쳐들었다.

 이 때 마침 장꾼을 보호하고 강도를 잡으러 다니는 포졸들이 다가왔다.

  여봐라, 이 깊은 산골에서 무얼 하고 있느냐?

 황소 값을 빼앗기게 된 사람이 포졸에게 강도를 고발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는 강도에게 칼을 치우라고 포졸 몰래 소곤거린 후에 그 강도를 감쌌다.

  예, 우리는 장에 갔다가 집에 가는 친구들인데, 내가 전에 돈을 빌어온 것이 있어 이 친구는 지금 주라고 하고, 나는 어머니 건강 되찾으신 후에 주겠다고 지금 승강이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자 포졸은 곧 지나갔고, 강도는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어머니 약값을 위해 그토록 아끼는 황소를 판 돈을 빼앗으려는 놈을 이렇게 살려주시다니, 한마디면 죽일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살려주시다니…….

 강도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사람에게 한번 실수란 있는 것이 아니겠소? 마음을 돌렸다니 이제 뭐가 걱정이오? 자, 어서 눈물을 거두십시오.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손을 부여잡고 강도는 울면서 다짐했다.

  그 동안 모든 사람을 미워하고 멋대로 살았던 저는 세상 사람들이 다 저를 미워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단 한번도 사람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지도 잘 모르는 저를 이렇게 살려주시다니, 이제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열심히 살겠습니다.

 

 

 먼저 고놈을 사 먹었어야 하는 건데

 

 나그네 한 사람이 온종일 길을 걷다보니 몹시 배가 고팠다. 그래서 호떡 장수에게서 호떡을 한 개 사먹었다. 그런데 먹고보니 간에 기별도 간 것 같지 않아 한 개 더 사먹었지만 역시 먹은 둥 만 둥 하였다. 그래서 또 한 개를 더 사먹었지만 여전히 시장이 가시지 않았다.

 이렇게 한 개 또 한 개, 그리하여 모두 여섯 개를 먹었지만 아직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또 한 개를 사먹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 호떡은 반 쪽만 먹어도 벌써 배가 불렀다.

 나그네는 몹시 후회가 되어 제 귀쌈을 후려갈기면서 자책하는 것이었다.

  젠장! 이렇게 아낄 줄 모르고 어떻게 살아나간담! 먼저 사먹은 호떡 여섯 개 값은 헛되이 날려버렸어! 반 개만 먹어도 배부를 줄 알았더라면 먼저 고놈을 사먹었어야 했을 걸…….

 

 

 남쪽 땅에 가서 강물을 끌어온들

 

 장자는 집이 아주 가난했다. 언젠가 집에 곡식이 떨어져 먹을 것이 없자, 감하후라는 사람을 찾아가 부탁했다.

  먹을 것이 없으니, 곡식을 조금만 빌려주십시오.

 감하후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내가 머지않아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둬들일 텐데, 그 때 선생께 3백냥쯤 빌려드리지요. 그만하면 되겠습니까?

 이 말에 장자는 불끈 성이 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어제 이리로 오는데, 마른 땅 위에서 붕어 한 마리가 팔딱이며 나를 부르더군요. 내가 붕어에게 물었습니다. 붕어야, 무슨 일로 그러느냐?' 그랬더니 붕어가 대답하기를, 나는 본디 동해 바다에 사는데 잘못하여 이곳으로 나왔습니다. 물이 없어 곧 죽을 것 같으니, 당신이 물을 조금만 준다면 나를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대답했습니다. 좋다. 내가 지금 남쪽 땅으로 가는 길인데, 그 곳에 가서 강물을 떠다가 돌아오는 길에 너에게 주겠다. 그럼 되겠느냐?' 그랬더니 붕어는 벌컥 화를 내며 나는 지금 당장 한 그릇의 물이 필요하오. 당신이 남쪽 땅에 가서 강물을 끌어온들, 내가 이미 죽은 뒤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하더군요.

 이 말을 듣고 감하후는 그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볼품없는 이 작은 씨앗이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농부는 마루에 너절하게 널려 있는 씨앗을 보았다. 그것도 아주 작은 것이었다.

  이게 뭐지? 누가 이걸 마루에다 흘렸어? 마루가 이렇게 지저분해서야……. 에이, 쓸어버려야지.

 그리고는 비를 가져와서 그 씨앗을 마당으로 쓸어버렸다. 씨앗은 바람에 날려 밭에 떨어졌다.

 농부의 마당에는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들이 저마다 예쁜 얼굴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 그 옆에는 호박과 수세미도 있고, 마당 한 편에는 조그만 감나무도 한 그루 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도 작은 씨앗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다들 이 씨앗보다 훨씬 크고 예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지금은 작지만, 난 앞으로 큰 나무가 될 수 있을 거야.

 땅에 떨어진 작은 씨앗은 이렇게 다짐하며 흙 속에서 오래 참고 있었다.

 한 해가 지났다. 농부네 마당은 작년과 같았다. 호박도 감나무도 꽃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피어 있었다. 딱 한 가지가 바뀐 것이 있다면 마당 한 구석에 작은 싹이 돋아난 것이었다. 그게 뭘까?

 몇 년이 지났다. 그 작은 싹은 몸통도 굵고 가지도 무성하고 키도 무척 컸다.

  이게 뭘까? 오라, 그 작은 씨앗이 마당에서 싹이 트고 나무가 되었구나.'

 그래서 농부는 무더운 여름날 이 나무 그늘에 의자를 만들어서 쉬기도 하고, 책도 읽었다. 또 낮잠도 즐겼다.

 아이들이 매일같이 놀러와서 그네도 타고 책도 읽고 술래잡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가지 위에는 큰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보금자리를 꾸밀 수 있었다.

 이 큰 나무가 그 볼품없이 작은 씨앗이었다고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

 

 

 못 생긴 것들이 있어서 아름다운 세상

 

 나는 미운 돌멩이랍니다. 돌멩이들 가운데도 모양이 예쁘고 색깔이 고운 돌멩이가 있다지만, 나는 아무런 특징도 없고, 색깔도 없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흔해빠진 돌멩이랍니다.

 돌멩이로 태어나 모양이 예쁜들 무엇하겠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지금 자리잡고 있는 이 개울에서만 해도, 벌써 여러 돌멩이들이 놀러나온 사람들의 눈에 띄어 그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거나 배낭에 실려 먼 곳으로 갔습니다.

  야, 이 돌멩이 좀 봐. 아기사슴같이 생겼어!

 착하게 생긴 계집아이가 이렇게 소리지르며 내 옆에 있던 돌멩이를 집어드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가슴은 저리도록 아팠습니다.

 왜 사람들은 예쁘고 고운 돌멩이만 좋아할까요? 생각하면 야속하기조차 합니다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못 생긴 자신을 서러워하면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에 남모르게 눈물짓는 것뿐입니다. 돌멩이가 어떻게 우느냐고요? 궁금하신 분은 이른 새벽,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에 안개 낀 개울가로 나와 보십시오.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여 외롭고 슬픈 돌멩이들마다 이슬방울처럼 맺혀있는 차가운 눈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예쁜 돌멩이만 좋아할까요?

 어느 날 나는 작은 물새의 깃털을 입에 물고 내 위를 스쳐 가는 하늬바람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돌멩이로 자기 방을 아름답게 꾸미지.

 하늬바람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내 곁을 맴돌면서 대답해주었습니다.

  아, 그런 사람의 방안에서 한 자리 차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무룩해진 나에게 하늬바람이 물었습니다.

  너도 사람들이 데리고 가줬으면 좋겠지?

 하늬바람이 내 마음속을 너무나도 빤히 들여다보았으므로 나는 더욱더 슬퍼졌습니다. 그러나 하늬바람은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나와 다른 못생긴 돌멩이들 둘레를 돌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말아라. 이 못생긴 돌멩이들아. 사람들이 가지고 간 돌멩이는 겨우 한 칸 방을 꾸미고 있지만 너희는 이 지구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지 않느냐? 하하하…… 하느님이 지으신 이 세상은 너희같이 못생긴 것들이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란다!

 

 

 

 남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먼 옛날 깊은 산 속 통나무 집에 노인 한 분이 살고 있었다. 하얀 수염이 무릎까지 내려온 이 노인은 세상의 온갖 지혜를 다 지닌 분이었다. 그래서 노인이 어쩌다 마을에 내려오면 온 마을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으려고 몰려왔다.

 어느 날 노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행복의 비밀을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비밀을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한 사람에게만 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의논한 끝에 아름다움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을에서 가장 예쁜 소녀를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노인은 그 소녀를 돌려보냈다.

 사람들은 다시 의논한 끝에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을 보내기로 했다.

 풍부한 재산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노인은 입을 열지 않았다.

 노인은 슬펐다. 고작 그런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했으니까. 그런데 마침 작은 새를 가슴에 안고 울고 서있는 소년을 만났다. 노인이 다가가서 물으니 다친 새가 불쌍해서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노인은 기뻤다. 이제야 행복의 비밀을 말해 줄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얘야, 지금 네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이란다. 남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을 맛볼 수 없거든.

 

 

 

 노력만 하면 안될 것도 없지요

 

 옛날 어떤 나그네가 부지런히 길을 가고 있길래, 한 노인이 물어보았다.

  여보시오. 당신은 지금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 거요?

 그 나그네는 한양에 간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가는 길은 한양과 반대의 길인지라, 노인이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한양은 북쪽으로 가야지, 남쪽으로 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나그네가 말했다.

  염려 말아요. 나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니 노력만 하면 안 될 것도 없지요.

 

 

다만 이 작은 집이라도

 

 옛날 그리스에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지혜롭고 훌륭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어서, 젊은 사람들이 그의 지혜를 배우려고 몰려들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따라다니며 귀찮게 해도 그런 일을 싫어한다거나 쫓아내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알고 있는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살려는 그 집을 너무나 작게 짓고 있었다. 이웃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작은 집을 짓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당신 같은 훌륭한 지식을 가진 분이 이런 작은 상자 같은 집을 지으시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질문은 받은 소크라테스는 아주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별 다른 이유는 없소. 다만 이 작은 집이라도 마음이 진실한 친구들로 가득 채울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소.

 

 

 부인들의 지혜

 

 12세기 독일 황제의 자리에 오른 콘라트 3세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그가 황제가 된 뒤에 제후 중의 하나인 바바리아가 심한 반대를 표하고 나선 것이다. 콘라트는 바바리아의 복종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게르프 성으로 쳐들어갔다.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고립되어 있던 게르프 성에서 백기가 올라왔다. 바바리아는 항복한다는 뜻을 비추었지만 콘라트는 나중을 위하여 순순히 항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대신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성 안의 모든 남자는 이제 우리의 포로다. 그러나 여자들은 손에 들 수 있을 만큼의 짐을 들고 성을 나가도 좋다.'

 얼마 뒤 굳게 닫혔던 성문이 스르르 열렸다. 그러자 여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콘라트는 여자들의 걸음이 더딘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타고 성문 근처로 다가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콘라트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성문 밖으로 뛰어나오는 여자들의 등엔 모두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업혀 있었다. 즉 가지고 나올 짐 대신에 남편을 업은 것이다. 많은 여자들이 커다란 남자를 업고 뒤뚱거리며 뛰는 모습은 우습기까지 했다. 그러나 농부의 아내뿐만 아니라 제후인 바바리아 부인까지 남편 바바리아를 업고 나오는 모습이 눈에 띠자 콘라트는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콘라트는 부인들의 지혜로운 사랑에 크게 감명을 받아 성안의 모든 남자를 풀어주었다.

 

 

소중한 편지 작은 가르침에서

 

 일기를 쓰다가 보면 하루에 경험한 일 중에서 짤막하면서도 지금까지 이 세상에서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좋은 한 구절을 쓸 수가 있다. 마치 번개처럼 번쩍이며 스쳐가는 지혜를 말이다. 이런 지혜는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는데, 일기를 쓴다면 이런 지혜를 저장해둘 수도 있고, 지혜들이 쌓이면 먼 뒷날에 나열해도 위대한 문학작품이 되지 않을까? 주부가 매일 가계부를 적는 것도 일기를 적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달력에 간단한 메모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기록하기는 귀찮을 것이나 이것을 해내는 것이 삶의 제일 가는 지혜일 것이다. 그러나 우둔한 자는 이 지혜를 지나쳐 버린다. 마치 돈을 헛되이 써버리듯이 말이다.

 

여자의 뼈

 

 한 성인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갈 때였다. 하루는 사람들의 뼈가 산더미처럼 쌓인 곳을 지나게 되었다. 갑작스런 재난이 닥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곳이었던가보다. 살아 있을 때 부귀 영화를 누리던 사람, 고생하던 사람, 예쁜 사람, 미운 사람 등 갖가지 사람의 뼈가 모인 셈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삶이란 참 무상한 거로구나. 죽으면 모두 같은 뼈다귀만이 남는데…….

 그 때 성인은 제자들에게 물었다.

  너희 중 누가 여기서 여자의 뼈를 가려낼 수 있겠느냐?

 모두 얼굴만 마주 보았다. 성인은 뼈 하나를 쳐들고 말했다.

  자, 여기 이 뼈는 여자의 것이다.

  선생님, 어찌 그것을 아십니까?

  여자의 삶을 생각해 보아라. 어려서는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늘 못한 대접을 받는다. 결혼하여 아기를 가지면, 온몸의 양분을 아기에게 주게 된다. 아기를 낳을 땐 몸 속의 많은 피들을 아기를 위해 흘린다. 젖을 먹이며 또한 자기 몸의 일부를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여자의 살과 피뿐 아니라 뼈 속에 든 양분도 남아 있지 못한다. 쓰디 쓴 여자의 삶은 그 뼈를 이토록 가볍고 또 검게 만들지 않느냐?

 제자들은 스승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어머니의 고난에 찬 삶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장기 기증

 

KBS 2TV에서 방영하는 「남자는 외로워」, 「한쪽 눈을 감아요」 등에 출연 중인 탤런트 석광렬 씨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입원 중, 7일만인 8월 1일 뇌사상태가 되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고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석 씨의 장기는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7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넣어주었다.

 석 씨는 7월 25일 새벽,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차가 전복되어 사경을 헤매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소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던 석 씨의 뜻에 따라 석 씨 가족들이 동의, 석 씨의 심장과 간을 곧바로 생명이 위태로운 최모(21·여) 씨, 김모(47·여) 씨에게 이식되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장기 이식 결심을 하기까지는 뼈를 깎는 아픔이 있었다. 가족들은 의사로부터 석 씨가 살아날 가능성이 1%도 안된다는 통고를 받았지만 외아들의 소생에 대한 미련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7일간을 고통과 눈물 속에서 보내었던 것이다.

 석 씨의 장기 기증에는 아버지의 결심이 컸다. 장기 이식 동의서에 서명을 한 것이다.

 아버지 석가화(57) 씨,

 "광렬이는 평소에 장기 기증의 뜻을 자주 밝혔습니다. 죽어서도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따르겠다고 했고. 비록 육신의 자식은 잃었지만 새로 7명의 생명을 살렸으니 .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 그러나 광렬이의 못 다 편 꿈을 그들이 이뤄줄 것으로 믿습니다."

 

 

 

그 보물

 

 스승이 마을 어귀에 이르러 정자나무 아래서 하룻밤을 새려는데, 마을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보석! 보석! 그 보석을 제게 주십시오!

  그 보석이라뇨?

  간밤에 신이 꿈에 나타나, 해거름이 되면 동구 밖엘 가보라시더군요. 사람이 한 분 보일 것이고, 그 분이 값진 보석을 하나 줄 터인데, 그 보석으로 영원히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스승은 보따리를 뒤지더니 보석을 하나 꺼냈다.

  아마 이것 말씀이셨겠지요. 며칠 전에 숲 속 오솔길에서 주웠는데, 갖고 싶다면 가져도 좋소.

 선뜻 건네주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은 보석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람 머리만큼이나 큰 금강석이 아닌가! 금강석 가운데서도 아마 세상에서 제일 큰 것 같았다.

 금강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 날 밤 내내 이불 속에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한잠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새벽 첫닭 우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달려가 스승을 깨웠다.

  스승님, 이 금강석을 그처럼 서슴없이 내어줄 수 있게 하는 그 보물을 주십시오.

 

 

 

 우정의 문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지.

 내 친구 중에 산골로 들어가 박혀사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해 겨울이던가, 밤새 눈이 소복이 쌓이던 날 새벽이었어. 뜰 앞에 눈이 하얗게 내려 있는 걸 보니 괜히 그 친구가 간절하게 생각나더군. 그래서 식구들 모르게 혼자 집을 빠져 나와 새벽 눈길을 밟으며 그 친구를 찾아갔어.

 집을 빠져 나와 새벽녘 눈길을 걷고 있는 자신이 아무래도 아직 제 정신이 아닌 꿈 속의 일처럼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무슨 보이지 않는 힘에라도 이끌려 가고 있었다고 할까. 하여튼 아직도 새벽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하얀 눈길이 그렇게 고와 보일 수가 없더군. 숲 속은 더욱 선경이었어.

 난 마침내 친구의 집 문 앞에 이르러 벗을 불렀지. 하지만 친구는 새벽잠에 묻혔는지 대꾸가 없더군. 몇 차례나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쳐봐도 전혀 인기척이 없었어. 그래서 난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리려던 참이었어.

 그런데 그 때 내 등 뒤에서 어떤 느낌이 왔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벗이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지 뭐야. 그래, 이 사람, 왜 부르는 소리에 응답이 없고 거기 그러고서 있느냐니까, 그 친구 대답이 이러질 않겠나? 새벽 눈길을 밟고 산골까지 찾아 온 소리를 들으니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대. 내 어찌 이 앞 뜰에 쌓인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낼 수 있으랴, 벗에게 이 발자국이 나지 않은 하얀 눈 위로 내 집에 곱게 걸어 들게 하리라…….

 그래, 그 친구는 앞 마당에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내지 않기 위하여 뒷문을 열고 뒤꼍을 돌아서 문간 앞까지 나를 맞으러 나왔던 거야. 그리고 난 그 친구의 고마운 권유에 따라 발자국이 나지 않은 그 고운 눈 위를 걸어서 집으로 들어갔지.

 

 

 낮과 밤

 

 어느 대학교 물리학 시간에 물리학 교수 한 분이 학생들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였다.

  낮이 끝나고 밤이 시작되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누구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은 일어나 말해 보시오.

 물리학 교수의 이 질문에 학생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줄이며 키득키득 웃었다. 해가 뜨면 낮이고 달이 뜨면 밤이라는 사실쯤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것인데 새삼스레 대학 물리학 시간에 이런 질문은 하는 이유는, 날씨가 너무 더워 지루한 강의 시간을 좀 참신하게 하기 위해서, 물리학 교수가 재치 문답 같은 것을 요구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리학 교수의 이런 어리석은 질문에 가장 어리석은 대답을 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한 학생이 일어나 이렇게 답변했다.

  네, 낮과 밤의 구별은 멀리 떨어진 동물이 개인지 고양이인지 구별할 수 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교실 안 학생들은 모두들 허리를 잡고 웃었다.

 어떤 학생은, 멀리서 걸어오는 교수가 대머리 물리학 교순지, 아니면 대머리 화학 교순지 분간할 수 있을 때라고 큰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교실 안은 한순간 폭소로 뒤덮였다.

 이제까지 가만히 학생들의 답변만 듣고 있던 물리학 교수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나의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할 학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말하겠습니다.

  여러분, 각자 상대방의 얼굴을 보십시오.

 학생들은 어리둥절해서 교수의 지시대로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앞 사람의 얼굴이 낯선 얼굴이 아니라 친밀한 나의 형제, 자매라고 생각할 때가 바로 낮입니다. 여러분들이 결코 옆 사람의 얼굴이 형제, 자매로 볼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시간은 항상 밤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시간은 낮인가요 밤인가요?

 물리학 교수의 답변을 듣고 있던 학생들은 저마다 약간 놀란 듯한 표정으로 옆 사람의 얼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첫마음에서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를 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첫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마음으로 눈물 글썽이며 교회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 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 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유명 타자들의 평균 타율표

 

 괴로움에 싸인 어떤 사람이 그의 스승을 찾아갔다. 그는 두 손을 꼭 쥐고 말했다.

  선생님, 저는 패배자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반밖에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아, 그래요?

  선생님, 뭔가 지혜로운 방법을 좀 말씀해주십시오.

 한참 생각하고 나서 스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그래. 내가 방법을 하나 일러주지. 가서 1970년도 뉴욕 타임즈 연감의 930쪽을 보게나. 그러면 아마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걸세.

  그렇습니까.

 사나이는 인사를 하고 물러 나와 시킨 대로 했다.

 그런데 그 930쪽에서 그가 알아낸 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역대 유명 타자들의 일생 동안의 평균 타율표. 그들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강타자인 타이콥은 평생 타율이 겨우 0.367이었고, 베이비 루드는 그만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 사나이는 스승한테 가서 매우 의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타이콥은 3할6푼7리라는 그것 말씀입니까?

  맞네. 타이콥은 3할6푼7리. 그는 세 번을 쳐야 겨우 한 번씩 안타를 친 걸세. 그는 5할도 못 때렸어. 그런데 자네는 무엇을 더 바라는가?

  알겠습니다.

 제가 하는 일의 겨우 반밖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패배자라고 생각했던 그 사나이는 대답했다.

 

 

사랑의 유언

 

 매우 값진 예술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굉장한 부자가 있었다. 그에게는 평범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청년기를 지나자 죽고 말았다. 부자는 무척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슬픔에 빠져서 앓다가 몇 주 후에 심장 마비로 죽게 되었다.

 부자의 유언은 모든 재산을 경매로 팔라는 것이었는데, 이상한 것은 유화로 된 아들의 초상화를 첫번째로 경매에 붙이라는 단서를 걸어 놓은 것이었다.

 널리 소문난 수집품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언에 따라 소년의 초상화가 제일 먼저 경매에 올려졌다. 죽은 소년의 초상화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소년을 항상 사랑했던 늙은 흑인 하인이 75센트에 그 그림을 샀다. 다른 경매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 그림은 그 흑인에게 단번에 팔렸다.

 바로 이 때 극적인 순간이 찾아 왔다. 경매는 중단되고, 그림을 살 만큼 그 소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주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공개되었던 것이다.

 

 

 

눈물의 합격 통지서

 

 1993년 5월경, 고3 수험생인 재용이가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어머니 황선애 씨는 그저 흔한 '고 3 병' 쯤으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두통증세가 심해 뒤늦게 병원을 찾았을 때 재용이에게는 '임파선암 4기'라는 믿기 어려운 진찰결과가 내려졌다. 오로지 대학에 가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만 해 온 재용이는 너무나 큰 충격과 절망에 책상과 의자를 부수며 몸부림쳤다. 그에게 더이상 희망이란 없는 듯했다.

 그러나 재용이는 다시 일어섰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마음을 달리 먹은 것이다. 계속되는 항암치료로 재용이의 머리카락은 하나 둘 빠졌고 몸도 바싹 야위어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병석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학교를 그만 쉬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재용이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12월, 재용이는 졸업에 필요한 출석일수에 열흘이 모자라게 되어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로 나갔다.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가까스로 출석일수를 채운 날 어머니와 재용이는 부둥켜 안은 채 한참동안 울었다. 재용이는 이제 당당히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입원실이었지만 당당히 학력고사도 치르게 되었다.

 다음해 1월, 재용이는 병상에서 한남대 경영학과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하루라도 대학생이고픈 바람이 이루어진 그 날, 어머니와 재용이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마지막 생이 다할 때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삶을 살겠다는 희망과 의지의 아름다운 눈물이었다.

 

 

 

 백악관의 빛

 

 새벽 두 시, 백악관의 밤은 점점 깊어갔다. 루즈벨트 부인의 비서인 탐슨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복도를 서성였다. 루즈벨트 부인이 그 때까지도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탐슨은 시계가 두 시를 넘어서자 루즈벨트 부인의 방문을 두드렸다.

 "부인, 밤이 늦었습니다. 무엇을 그토록 열심히 하십니까?"

 "아, 네, 이제 마지막 한 장 남았습니다."

 루즈벨트 부인은 책상에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녀는 그 때까지 갖가지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하고 있었다.

 "왜 일일이 답장을 하십니까? 인쇄물로 하시면 될 터인데……."

 "뭐라구요? 그런 종이 조각을 받으면 사람들은 분명히 실망할 것입니다."

 당시 미국사회는 극심한 경제 혼란기로 하루하루 먹을 빵이 없어 굶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가난, 굶주림,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대통령의 부인에게 호소했다. 루즈벨트 부인은 그 편지를 받고 힘닿는 대로 자선단체나 병원 등을 소개해주었고 위로의 답장을 손수 써서 보내주었다.

 "부인, 그렇지만 이들 중 많은 사람이 거짓으로 편지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탐슨이 이렇게 얘기하자 루즈벨트 부인이 말했다.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절박한 심정에서 하는 데까지 해보다가 결국 마지막으로 편지를 제게 보냈을 거예요. 그들을 외면한다면 저는 평생 양심에 가책을 느낄 겁니다."

 루즈벨트 부인이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며 지냈던 힘은 스스로에 대한 양심에 있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내를 맡은 까닭

 

 미국 뉴욕시에 있는 제법 큰 백화점에서 점원을 모집하였다.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1차, 2차 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된 청년들이 사장실에 모였다. 사장은 청년들을 둘러보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부서를 적어 내라고 했다. 모두들 한결같이 편하고 좋은 부서를 원했다.

 그러나 유독 한 청년만은 엘리베이터 안내 업무를 맡겨 달라는 내용을 적어 냈다. 사장은 그 청년을 불러 왜 하필 힘든 일을 맡으려 하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서 그 일을 꼭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1년 후 청년은 매우 성실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이것을 기특하게 생각한 사장이 어느 날 청년을 불렀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네. 다른 자리를 줄 터이니 한번 열심히 일해보게."

 "아닙니다. 3년간만 그 일을 계속하게 해주십시오."

 청년은 사장의 배려 속에 다시 엘리베이터 안내 업무를 맡게 되었다.

 3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청년이 사장을 찾아왔다. 당당한 모습의 청년은 사장에게 두꺼운 서류뭉치를 내놓았다.

 "이 서류에는 이 백화점에 오는 고객들의 신상에 관한 자세한 통계가 들어 있습니다. 백화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여러 가지 유형과 어떤 사람들이 어느 매장으로 가는지, 어떤 성질의 물건을 구입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3년 동안 고객들 안내를 맡으면서 나름대로 조사한 것이니 한번 봐주십시오."

 사장은 그 서류를 훑어보더니 감격한 듯 말했다.

 "자네야말로 우리 회사에서 꼭 필요한 사람일세!"

 

 

 필라델피아의 가로등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미국의 필라델피아라는 도시에는 약 7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도시는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어둠의 도시, 공포의 도시로 변했다. 필라델피아의 거리에는 가로등이 없었기 때문에 날이 어두워지면 도둑, 강도, 불량배들이 거리로 나와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다. 사람들은 무서움에 떨며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른 저녁을 먹은 뒤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잠을 잤다. 밤에 거리로 나선다는 것은 필라델피아 시민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활을 하다보니 필라델피아는 늘 어둠이 일찍 찾아왔고 그러면 그럴수록 도둑과 강도의 행패는 날로 심해졌다.

 사람들이 하나 둘 필라델피아를 떠나는 가운데 어느 날 존 클리프톤이라는 사람이 이사를 왔다. 존은 새로 이사온 도시가 전에 있던 마을과는 다르게 매우 어둡고 무서운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이 마을에 범죄자들이 들끓는 것은 도시가 어둡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리가 조금이라도 밝아진다면 밝은 곳 아래선 죄를 짓지 못할텐데……."

 이렇게 생각한 존은 밤에도 거실의 불을 켜놓았고 대문 입구에는 등을 매달아 놓았다. 캄캄한 필라델피아에서 유일한 빛은 존의 집뿐이었다. 그 뒤 이상하게도 존의 집 근처에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

 존의 집 불빛이 새벽까지 거리를 환하게 비추자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등불을 켜놓기 시작했다. 며칠새 존이 살고 있는 지역의 부근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등불의 수는 수백 개로 점점 늘어갔다. 그만큼 필라델피아의 밤거리는 밝아졌다. 강도와 범죄자들은 그 등불 아래서 하나 둘 사라졌고 거리엔 밝게 웃는 시민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정영길 씨의 비밀

 

 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정영길 씨 별명은 '수전노', '구두쇠'였다. 그는 회비를 내야하는 직원들의 회식자리엔 늘 핑계를 대 빠졌고 아침 저녁은 라면과 국수로 때웠다. 정영길 씨는 그렇게 아껴 월급의 일부만을 저축하고 있었는데 나머지 돈은 어디에 쓰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가까운 산으로 야유회를 떠나기로 한 날이었는데 뜻밖에도 정영길 씨가 따라나섰다. 동료들은 갑자기 변한 그의 태도에 죽을 때가 다 됐나보다라고 농담을 할 정도로 놀랐다. 그러나 그 농담은 진짜가 되고 말았다. 정영길 씨가 산행 중 발을 헛디뎌 계곡에 떨어져 죽고 만 것이다.

 동료들은 그의 유품 중에 서울의 손정수라는 사람 앞으로 매달 10만원씩 보낸 정영길 씨 명의의 무통장입금증을 발견했다.

 "영길 씨는 고아인데……. 누구에게 빚을 진 건가?"

 의아하게 생각한 동료들이 손정수라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손정수 씨는 대학교 4학년인 학생이었다. 그는 통곡하며 말했다.

 "영길이와 나는 형제입니다. 우린 고아원에서 만나 지금까지 형제로 지내왔습니다. 우리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지요. 우리가 헤어진 건 영길이가 장성광업소에 일자리를 구하면서부터입니다. 그 때 나는 대학에 합격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주 만나 서로의 설움을 달랬습니다. 한번은 내가 노동품을 팔아 학비 대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영길이는 나를 꾸짖고는 자신이 매달 생활비를 대주겠다고 하더군요. 그 때부터 영길이는 저에게 매달 십만원씩 보내왔습니다."

 1990년 7월 31일 태백의 어느 절에서 정영길 씨는 한 줌의 재로 이승을 떠났다. 손정수 씨는 울부짖었다.

 "영길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너를 이 산자락에 뿌리는 것이로구나."

 

 

 나는 닭이야!

 

 어떤 사람이 독수리 알을 주워 자기 집 뒤뜰에 있는 닭장 안에 가져다 놓았다.

 독수리 알은 병아리와 부화되어 함께 자랐다. 어린 독수리는 어미 닭을 쫓아다니며 스스로를 닭이라고 생각했다. 독수리는 병아리들이 하는 대로 땅바닥을 발로 긁고 벌레를 부리로 콕콕 찍어 잡아먹었다.

 독수리의 날개는 푸드덕 서너번 날갯짓을 할 뿐 날지 못했다. 독수리는 점점 닭이 되어갔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 덧 늙어버린 독수리는 어느 날 문득 하늘을 쳐다보다가 한 마리 새를 발견했다. 그 새는 금빛 날개를 여유 있게 펄럭이며 세찬 바람 속을 유유히 날아갔다.

 독수리는 그 당당한 새의 모습에 부러움과 경외심을 느끼며 옆에서 모이를 쪼고 있던 닭에게 저 새가 무슨 새냐고 물었다.

 "저 분은 새들의 왕이신 독수리님이야."

 "야 나도 저렇게 날아봤으면……."

 그러자 닭이 비웃으며 말했다.

 "엉뚱한 생각 말아! 너와 난 그분과는 다른 신분이야."

 늙은 독수리는 쓸데 없이 크기만 한 날개를 접으며 생각했다.

 "맞아, 나는 닭일 뿐이야."

 끝까지 닭이라고 생각한 독수리는 평생 모이만 쪼다가 죽었다.

 

 

 20만 명의 합창단

 

 카네기 제철소에서 일하는 해리에겐 꿈이 있었다. 노래부르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던 이 청년의 바람은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소리를 모아 마음을 같이하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늘 마음속에 꿈을 간직하고 있던 해리는 어느 날 굳은 결심을 하고 뉴욕의 센트럴 파크 야외 음악당을 하루만 빌려 줄 것을 신청했다.

 야외 음악당의 사용허가가 나온 첫 일요일, 해리는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입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가롭게 산책을 하며 공원을 거닐던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따뜻한 목소리를 듣고 무대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해리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책자를 나눠주며 말했다.

 "여기 이 책 안에는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실려 있습니다. 자, 우리 모두 노래를 부릅시다."

 그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먼저 노래를 부르자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불렀다. 노래 소리는 공원을 빠져나가 큰 길가로 퍼져 나갔다. 버스나 택시를 타고 지나던 사람은 모두 고개를 창 밖으로 내밀고는 '무슨 일인가' 하고 궁금해했다.

 그 날 모인 사람은 3천여 명이나 되었다. 막이 내릴 무렵 해리는 다음 주에도 이 자리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3천명 거의 모두가 손을 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노래 모임은 주말마다 계속되었고 적어도 20만 명 이상이 매주 이곳을 찾아와 노래를 불렀다. 이것이 바로 '센트럴 파크의 노래와 빛의 제전'의 시작이었다.

 얼마 후 센트럴 파크의 노랫소리는 전국민이 알게 되었고 일요일만 되면 비록 그곳에 직접 가지 않아도 마음속 깊이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었다. 꿈이 이루어진 날 해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노래로써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라는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꿈이 있는 한 모든 것이 가능함을 알아야 합니다."

 

 

광부 프랭크

 

 영국의 실크스톤 광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광부 프랭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무리의 광부들을 이끌고 막장으로 향했다. 프랭크는 성격이 온화하고 다정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쟈드손 광부는 프랭크의 평판이 좋은 것을 늘 시기하고 툭하면 프랭크를 깎아 내리려고 했다. 더구나 쟈드손은 술을 좋아하고 싸움을 자주 벌이는 등 몹시 거칠어 동료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었던 터였다.

 그 날은 막장 끝에 있는 기관실 천정에 대들보를 대는 작업이 주된 일이었다. 철제로 된 무거운 대들보를 여러 명이 달려들어 천정에 잇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와르르 천정의 흙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대들보를 받치고 있던 광부들은 대들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작업을 지휘하던 프랭크도 의식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프랭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부하들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프랭크는 소리치며 바닥을 더듬어 부하들을 찾아다녔다.

 "도와주세요, 반장님…… 여기예요!"

 프랭크가 얼른 소리나는 곳으로 가보니 쟈드손이 쓰러져 있었다. 쟈드손은 거의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프랭크는 쟈드손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그를 부축했다. 프랭크가 쟈드손의 어깨를 걸고 막 걸음을 내딛을 때였다.

"도와주세요."

 같이 일하던 아들 레오나드가 프랭크의 발밑에서 쓰러진 채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프랭크는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아, 조금만 기다려라. 곧 돌아오겠다."

 프랭크는 아들의 고통스런 목소리를 들으며 쟈드손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이윽고 많은 사람들이 달려와 광부들을 구조했으나 프랭크의 아들 레오나드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도산 선생이 체포된 까닭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찍 잠을 깼다.

 오늘은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같이하는 동지의 어린 딸의 생일이었다. 소녀의 생일에 참석하여 꼭 축하를 해주겠노라고 도산 선생은 소녀와 며칠 전 약속을 했다. 오늘은 일찌감치 서둘러 소녀의 집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한 도산 선생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그 때 동지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방문을 열어젖혔다.

 "다행입니다. 마침 계셨군요. 선생, 빨리 이 곳을 피하시오. 밖은 선생을 체포하겠다고 혈안이 된 일본 경찰, 헌병이 쫙 깔렸소. 여기도 위험하니 잠시 머물렀다가 이곳을 뜨셔야 합니다."

 도산 선생은 급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옷 입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늘은 이곳에 머물러야 하오. 내 오늘은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소."

 "안됩니다. 지금은 나가시면 안됩니다."

 크고 작은 것으로 약속을 저울질하지 않았던 도산 선생은 동지들의 완강한 부탁을 뿌리치고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일본 경찰들의 삼엄한 경비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도산 선생은 골목 어귀에서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무사히 소녀의 집에 도착한 도산 선생은 소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녀의 집을 나온 도산 선생은 일본 헌병의 호각소리에 쫓겼다. 사력을 다해 뛰어가던 도산 선생 앞을 일본 경찰이 막아섰다.

 그 후 도산 선생은 상해에서 한국으로 압송되었고 감옥에서 큰 고통을 겪었다.

 

 

 고사리 저금통

 

 1990년 4월 프랑스 샤클레 연구소 수석연구부장이었던 노만규 박사가 귀국했다. 그는 서울대 교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고국 땅을 밟은 것이었다. 그를 세계적인 과학자로 이끈 것은 어느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의 저금통이었다.

 1950년대, 전쟁 끝의 가난과 절망을 뒤로하고 노만규 박사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마음속엔 가난한 나라를 일으키려는 굳은 결심이 서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덕에 청년 노만규는 하버드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다. 비록 장학생이긴 했으나 입학금 23만원이 있어야 입학이 가능했던 것이다. 단돈 만원도 가지고 있지 않던 노만규는 어디서 돈을 꿀 만한 곳도 없었고, 고국에 있는 가난한 아버지에게는 더더욱 부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는 입학금 때문에 학교를 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의 딱한 사정이 1959년 11월 16일자 민주일보에 실리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두 가난했던 시절이라 많은 사람들은 끌끌 혀만 찰 뿐이었다.

 어느 날 노만규에게 고국으로부터 얼마의 돈이 전해져 왔다. 그 돈은 국민학교 1학년 꼬마가 보내온 것으로 군것질을 참아가며 모은 저금통을 몽땅 턴 것이었다. 노만규는 솟구쳐오는 뜨거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국민학교 일학년 꼬마가 보내준 그 성금은 노만규에게 오로지 공부와 연구를 계속할 것을 바라는 것이었다. 그 뒤 그는 꼬마의 소망을 가슴에 심고 열심히 공부에만 전념했다.

 30년이 흐른 지난 90년,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어 고국을 다시 찾은 노만규 박사는 그해 11월 어느 신문사의 주선으로 꼬마 은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꼬마는 어느새 머리가 벗겨진 중년이 되어 있었다.

 "큰 일 한 것도 아닌 데 이러지 마십시오."

 중년남자는 노만규 박사가 눈물을 흘리자 머쓱해 하며 겸손해 했다.

 

 

 어떤 쪽지

 

 어느 호텔에 한 접객주임이 새로 채용되었다. 그는 새 일터에서 열심히 일해보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청소원들을 불러 호텔 곳곳을 깨끗이 청소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호텔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귀빈실 고급소파에 어떤 노인이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노인은 인상도 과히 좋지 않은데다가 옷은 낡고 매우 초라해 보였다. 접객주임은 그 노인이 호텔의 고급스런 분위기를 망친다고 생각했다. 다른 손님들 눈에라도 띈다면 큰일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노인이 담배까지 피우며 금방 일어설 것 같지 않자 그는 슬며시 노인에게 다가가 무언가 쓴 쪽지를 건네주었다.

 잠시 후 노인은 저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쪽지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즉시 이곳을 떠나주시오."

 그리고 며칠 뒤 호텔 접객주임은 이상한 메모를 전달받았는데 그것을 받아 쥔 접객주임은 매우 놀랐다. 그 메모는 이런 것이었다.

 "남의 귀에 소문나지 않게 즉시 호텔을 떠나주시오."

 알고보니 그 주임이 내쫓은 허름한 노인이 바로 이 호텔의 경영주였다.

 경영주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그 호텔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똑같은 방법으로 해고통지서를 보낸 것이다. 주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호텔을 떠났다.

 

뒤바뀐 죽음

 

 미국 남부지방의 어느 작은 마을, 잔잔한 호수와 나즈막한 언덕이 있는 이 마을에는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는 작은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써 있다.

 "나를 대신하여 죽은 나의 친구 윌리 리어를 추모하여 이 비석을 세워 바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의 일이다. '덤불게릴라'라고 불리는 첩보원들이 북군에게 포로로 잡혀왔다. 이들은 군사재판을 거쳐 곧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북군병사인 윌리 리어는 순찰 도중 우연히 게릴라 단원 중에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윌리는 친구가 사형되기 전 몰래 수용소를 찾았다.

 "자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자네 같은 사람이 왜 간첩으로 활동했나?"

 윌리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친구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친구도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그 날 밤 윌리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저 친구에게는 늙으신 부모와 부인 그리고 어린 자식들이 있는데 이렇게 죽는다면……. 차라리 내가 저 친구를 위해 대신 죽을 수만 있다면, 나는 부모도 자식도 없으니 여러 사람이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될 터인데…….'

 윌리는 새벽이 막 밝아올 무렵 다시 수용소를 찾았다. 그리고 친구를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옷을 벗게 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친구에게 윌리는 자신의 군복을 입혔다.

 "여기서 빠져나가게.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네. 이 길을 따라 태연하게 정문으로 나가면 될 걸세. 빨리!"

 친구는 윌리에게 꼭 살아서 도망칠 것을 다짐시킨 후 그 곳을 벗어났다. 그러나 윌리는 도망칠 기회가 없었다. 만약 자기가 도망쳐 모든 사실이 발각되면 친구는 다시 고향에서 이 곳으로 잡혀 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윌리는 끝까지 그 친구 행세를 하며 사형장을 걸어 들어갔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과 만나 행복하게 웃는 친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어린 아이인 형과 동생이 싸웠다. 그걸 보고 어머니께서 형을 호되게 야단치셨다. 토라진 형이 뒷동산에 올라가 나팔손을 만들어 앞산을 바라보고 외쳤다.

 "나는 너를 미워한다!"

 그러자 앞산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를 미워한다아!"

 어린 아이는 놀란 나머지 황급히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산 너머에서 누군가 '나는 너를 미워한다'고 나에게 소리지르는 아이가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어머니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아들에게 일렀다.

 "얘야, 다시 뒷동산에 올라가서 이번에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외쳐봐라."

 동산에 올라간 어린 아이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자 산너머에서도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아!"

 

 

 

 사랑은 사랑으로

 

 1951년 미군 비행기 조종사 블루베이커 소령은 부산에서 전쟁통에 일을 잃고 헤매는 장명수라는 소년을 아들로 삼았다. 소년은 '존'이라 불려졌다.

 어느 날 소령은 출격명령을 받았다.

 "얘야, 걱정 말거라."

 블루베이커 소령은 날씨를 걱정하는 열두 살 난 명수의 작은 어깨를 꼭 껴안았다. 제트기가 떠나고 한 시간쯤 지나서 출동 비행기가 한두 대씩 기지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소령의 비행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명수는 우연히 소령의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했음을 엿들었다. 그리고 명수는 곧 출격될 구조 헬리콥터에 몰래 숨어들었다.

 비행기는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소령은 비행기 날개부분에 기절한 채 떠 있었다. 구조 헬리콥터가 그 곳에 도착해서 구조작업을 벌였다. 먼저 하사관 한 명이 밧줄을 타고 내려가 소령의 몸에 밧줄을 매려고 했다. 그런데 파도가 워낙 세고 바닷물이 얼음장 같이 차가워 구조 작업을 하던 하사관도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하사관이 무전연락을 해오지 않자 헬리콥터가 밑으로 낮게 하강했다. 그러나 헬리콥터에는 조종사뿐이어서 구조를 할 사람이 없었다.

 그 때 한쪽 구석에서 명수가 엉금엉금 기어 나오더니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명수는 바닷물 속에서 소령과 하사관의 몸을 밧줄로 묶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이제 끌어올리세요!"

 헬리콥터는 줄을 당기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명수는 거센 파도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심한 충격으로 이틀만에 깨어난 블루베이커 소령은 명수의 죽음을 알고는 통곡했다.

 "한 한국 소년이 나를 살리다니……. 내가 그에게 준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사랑뿐이었는데 그는 목숨을 내놓았다."

 

 

 열려있는 문

 

 스코틀랜드의 외딴 산골에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어떤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어머니를 홀로 남겨둔 채 집을 나오고 말았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교회에 갔다가 영국의 유명한 전도사 위버의 부모 사랑에 관한 설교를 듣게 되었다. 설교에 감동한 그녀는 어머니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고향으로 향했다. 그녀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어머니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비까지 내려 그녀의 몸은 흠뻑 젖어 있었다. 어머니의 집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살며시 두드렸다. 안에서 인기척이 없자 그녀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 이사를 왔는지도…….'

 그녀는 문을 슬쩍 밀어 보았다. 뜻밖에도 문은 열려 있었다.

 '한밤중에도 문을 열어 놓고 있다니…….'

 그녀는 어머니의 침실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그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머니, 저예요."

 "이런, 드디어 돌아왔구나!"

 어머니는 울면서 그녀를 껴안았다. 어머니는 그녀를 위해 젖은 옷을 말려 주었고 따뜻한 음식을 마련했다.

 "어머니 죄송해요. 용서해주세요. 그런데 왜 밤에 문을 열어놓고 주무시나요. 이런 외딴 집에서…."

 "난 네가 집을 나간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문을 잠그지 않았단다. 만약 네가 밤중에라도 돌아오면 어떡하니. 그래서 한밤중에 멀리서 볼 수 있도록 불도 켜놓았고, 문도 열어 놓았던 것이란다."

 그녀는 흐느끼며 어머니의 갈라진 손을 더욱 꼬옥 붙잡았다.

 

 

 물통 하나

 

 큰 전투를 치르고 난 뒤였다. 한 병사가 총탄에 맞아 피를 많이 흘리고 애타게 물을 찾았다. 그것을 본 분대장이 자기 물통을 그 병사에게 주었다.

 급하게 물통을 받아든 병사는 막 물을 마시려고 하는 순간, 소대원 모두가 자기가 든 물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모두들 목이 말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본 병사는 물을 꿀꺽꿀꺽 마신 후에 물통을 소대장에게 넘겼다. 소대장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물통을 받아 꿀꺽꿀꺽 물을 마시고 물통을 상사에게 넘겼다. 상사도 물을 꿀꺽꿀꺽 마신 후 위계질서에 따라 다른 병사에게 물통을 넘겼다. 그렇게 하여 소대원이 차례차례 물을 마신 후 맨 마지막으로 신병에게 물통이 넘겨졌다.

 물통을 받아든 신병은 깜짝 놀랐다.

 수많은 소대원이 모두 물을 마셨는데도 물은 조금도 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다음 사람을 생각하고 물을 마시는 시늉만 했던 것이다.

 신병도 상급자들처럼 물을 꿀꺽꿀꺽 마신 뒤에 처음 물통을 받았던 부상당한 병사에게로 다가가 물을 마시게 했다.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소대원들은 모두 목마름을 잊어버렸다.

 

 

 진짜 죄인

 

 로마시대에는 죄지은 사람을 세상과 격리시키기 위해 바다 위에 떠있는 배에 가두었다. 일명 죄수선이라 불리는 이 감옥은 갇히게 되면 육지로 돌아올 확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무서운 곳이었다. 그래서 죄수들은 틈만 나면 도망칠 기회를 엿보았다.

 하루는 총독이었던 오스너가 죄수선을 순시했다. 오스너 총독은 죄수들 한 명 한 명에게 무슨 죄로 끌려왔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한결같이 자신들은 죄가 없는데 억지로 끌려왔다는 투로 얘기했다. 죄수들은 총독에게 자신들은 무죄이므로 풀어 달라고 성화였다.

 "이 배에는 모두 죄가 없는 사람들만 모였군."

 총독이 이렇게 말하자 죄수들은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런 아직까지 죄를 뉘우치지 못하다니…….'

 총독이 몹시 언짢아 돌아설 때였다. 총독의 눈에 숨죽이며 우는 죄수 한 명이 보였다.

 "자네는 왜 우는가?"

 "예, 저는 여기 있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전 진짜 죄를 지었죠. 저는 배가 고파 우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물건을 훔쳤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죄수의 말을 들은 총독이 보란 듯이 소리쳤다.

 "허허, 거 참 못된 놈이로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착한 사람인데 죄지은 자가 여기 있다니 괘씸하다. 여봐라! 이런 놈을 착한 사람들과 같이 둘 수 없으니 당장 이 배에서 내리도록 하라."

 총독은 죄인의 어깨를 아무도 모르게 살짝 두드렸다. 그리고 진짜 죄인은 무사히 그 배에서 내렸다.

처칠의 차

 

 처칠 수상이 하루는 국회에 나가서 연설하게 되었는데, 손님을 맞이하다가 그만 시간이 늦었다. 그래서 신호를 무시해서라도 예정된 시간 안에 국회에 도착하라고 운전 기사에게 지시하였다.

 신호를 무시하고 국회로 가던 도중에, 교통 경찰관이 달려 와서 차를 세웠다. 운전 기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경찰관에게 이야기하였다.

 "수상 각하의 차요. 지금 국회에 가는 길인데, 시간이 늦어서 급히 가는 중이오."

 그러나 교통 경찰관은

 "수상 각하를 닮긴 닮았는데, 수상인 처칠 경의 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할 리가 없소. 면허증을 내놓고 내일까지 경찰서로 출두하시오."

 교통 경찰관은 수상의 차를 교통법규 위반으로 적발하였다. 처칠은 교통 경찰관이 자기의 직무를 수행하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튿날, 처칠은 경시청 총감을 불러서 그 교통 경찰관을 한 계급 특진시켜 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경시청 총감은

 "경찰 조직법에 그런 규정이 없어서 특진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명령을 거절하였다. 처칠은 경시청 총감이 규칙을 준수하려는 태도를 보고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았다.

 

 

리 장군의 양보

 

 남북 전쟁의 영웅 리 장군이 탄 전차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차가 정류장에 설 때마다 올라타는 사람들로 전차 안은 만원이었다. 어느 정류장에서 초라한 옷차림의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전차가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 이 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할머니와 꽤 떨어진 곳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전차 안의 모든 시선들이 그 쪽을 바라보았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리 장군이었다.

 할머니를 부축해 온 장군은, 자기 자리를 할머니께 양보하고, 조금 비켜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차 안의 많은 손님들이 그 때서야 장군께 자리를 양보하였다.

 "아, 고맙소. 그렇지만 참 이상들 하십니다. 정말 자리를 양보하려면 내가 아니라 저 할머니께 했어야 옳지 않았겠소."

 일어서서 장군께 자리를 양보하려던 한 청년 손님은, 다시 앉을 수도 없어 엉거주춤 서 있다가 다음 정류장에서 슬며시 내려버렸다.

 그 빈자리에는 아무도 앉을 수가 없었다. 전차 안은 갈수록 복잡해졌지만, 그 빈자리는 오래도록 그대로였다.

 

 

한 여인의 잘못과 용서

 

 한 농부의 아내가 그 동네에서 존경받는 어른에 대해 헐뜯는 말을 퍼뜨렸다. 그래서 온 마을에 그 소문이 퍼졌다. 얼마 후, 그 여인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고 그 어른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그 어른은

 "당신이 나의 한 가지 바람을 따라 준다면, 기꺼이 당신을 용서해주겠다."

 라고 말했다.

 "기꺼이 하겠습니다."

 하고 여인이 말했다.

 "집에 가서 검은 암탉 한 마리를 잡아 그 깃털을 뽑고, 그것을 바구니에 담아 가져오십시오."

 30분 후에 여인이 돌아왔다.

 "이제 마을로 가서 각 거리 모퉁이마다 이 깃털을 뿌리고 돌아오십시오."

 여인은 시키는 대로 했다.

 "이번에는 마을로 다시 가서 그 깃털을 다 모아 오십시오. 그리고 한 개도 잃어버린 것이 없나 살펴보세요."

 이 말을 들은 여인은 놀라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은 불가능해요. 바람이 그것들을 들판 저 너머 사방으로 날려 보냈을테니까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습니까? 제가 당신을 용서는 하겠지만, 당신이 말한 그 거짓된 말들이 일으킨 피해를 취소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부처님의 가르침

 

 어느 날, 부처님이 제자 아난과 길을 가고 있었다. 거리는 한산하여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길을 걷다 보니, 저 앞에 웬 종이가 한 장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저 종이가 무엇이냐?"

 그러자 아난이 달려가 그 종이를 주워 왔다.

 "아마 향을 쌌던 종이인가 봅니다. 향기로운 내음이 배어 있습니다."

 아난은 종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나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가다 보니, 이번에는 웬 새끼줄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그 새끼줄을 가져오라고 했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이 새끼줄은 분명 썩은 생선을 묶었던 것 같습니다."

 아난이 새끼줄을 가져오며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조용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보아라.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악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썩은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처럼 고약한 냄새가 나고,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은 향을 쌌던 종이처럼 맑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것이란다."

 뱃길을 따라

 

 1962년 2월, 여수의 어느 초등학교 졸업식에서의 일이다. 6개년 개근상을 받는 13살짜리 딸과 그의 어머니가 받는 '장한 어머니상'으로 졸업식장은 숙연했다.

 이들 모녀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섬에서 산다. 이 섬은 집이 세 채밖에 안 되고 주민은 겨우 20명 남짓하여 육지에 볼일이 있을 경우 섬사람들이 직접 만든 배를 타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섬마을 사람들은 자식이 커도 학교 교육은 감히 엄두조차 못 냈다.

 딸이 일곱 살이 되자, 어머니는 남편과 의논을 했으나 허사였다. 공부는 해서 무엇하며, 설사 학교에 들어간들 무슨 수로 20리가 넘는 먼 뱃길을 6년간 다니느냐며 한사코 반대했다. 당시 그 섬에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어머니는 몰래 딸을 데리고 육지의 학교에 입학을 시키고야 말았다.

 억척스러운 모정의 뱃길이 열렸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6년 동안 작은 배의 노를 저었다.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했다. 시계도 없는 섬에서 매일 시간을 맞춰 딸을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는 일에 한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딸은 어머니가 고마워서 울었고, 어머니는 딸이 대견스러워 울었다. 식장 안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노란 모자를 잡아라

 

 따스한 봄날. 유치원 꼬마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소풍길에 올랐다. 창가에 매달려 창 밖으로 손을 내밀고 웃는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그 때 한 아이의 노란 모자가 바람에 휙 날아가버렸다.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내밀어 바람에 둥실 날리다가 도로 바닥에 떨어지는 모자를 쳐다보았다. 모자를 잃은 아이는 거의 울상이었다.

 유치원 버스 뒤로는 한 노선버스가 뒤따르고 있었다. 노선버스 운전사는 바람에 떨어지는 노란 모자를 보았다. 그는 승객에게 양해를 구한 뒤 버스를 세우고는 그 노란 모자를 주웠다. 버스는 다시 출발해 조금 속력을 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멀어진 유치원 버스를 따라 잡았다. 운전사는 유치원 버스 운전사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차창으로 노란 모자를 힘껏 던져 주었다. 순간 모자를 받아 쥔 아이들은 일제히 '와!' 하고 큰소리를 지르고 손을 흔들며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두 대의 버스는 나란히 달렸다. 아이들은 그 때까지도 손을 흔들고 있었고 노선버스를 탄 승객들도 덩달아 웃고 있었다.

 

 

시장님의 신문 배달

 

 덴마크에 요한이라는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한 신문 배달 소년이 있었다. 요한은 신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신문 뭉치를 옆구리에 끼고 뛰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 요한은 배를 움켜잡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얘야, 왜 그러니? 어디가 아프냐?"

 그 곳을 지나던 신사가 물었다.

 "예, 별안간 배가 아파서……."

 "큰일났구나! 내가 너의 집까지 데려다 줄까?"

 "아녀요, 저는 괜찮아요."

 "괜찮다니? 그럼 뭐가……."

 "신문 배달이 늦어져 걱정이에요."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더욱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경황에……. 기특하구나. 내가 네 대신 신문을 배달해줄게."

 "고맙습니다. 빠뜨리는 집이 없도록 해주셔요."

 "오냐, 걱정 말아라."

 신사는 신문 뭉치와 독자들의 이름이 적힌 노트를 챙겼다.

 그 날 저녁 그 신사는 문병을 왔다.

 "아무 걱정 말고 편히 쉬도록 해라."

 요한은 다 나아서 다시 신문을 돌렸다. 신사에게 고맙다고 다시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궁리 끝에 시청에 찾아가 부탁을 해 보았으나 이름과 주소를 모르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었다. 실망한 요한이 힘없이 시청을 나설 때, 한 대의 자동차 문이 열리면서 시장이 차에서 내렸다. 요한은 시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시장이 바로 그 친절한 신사였다.

 

 

 통화 시간

 

 누가 인사말을 길게 하느냐 하는 세계 대회가 벌어졌다. 준결승에 오른 인도대표인 두 스님(바라문)이 나와 인사를 나눈다. "거룩하신 바라문의 덕망은 산보다……" 하면 "거룩하신 바라문의 지혜는 바다보다……" 하면서 좋은 말은 다 들추어 인사를 주고받는다. 아랍대표는 이 인도대표를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다.

 두 사람의 아랍대표(베두인족) 인사말을 들어보자. "할아버지는 안녕하신가?"로 시작하여 외손자, 조카 며느리까지 샅샅이 안부를 묻고 이어 그 집에서 키우고 있는 짐승의 안부를 묻는다. "낙타는 안녕하신가? 양은 안녕하신가?, 고양이는……" 하는 식으로 줄줄 이어진다.

 그러나 이 아랍대표도 무대에서 참패를 당하고 내려간다. 우승을 안은 대표는 한국대표이다. 바로 조선 말기에 등짐을 지고 팔도를 누볐던 보부상. 들어보자.

"보아하니 동무이신 듯합니다." "아이참, 동무이십니다 그려." "첫인사는 올렸지만 거주지는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피차 일반이올시다." "소생 살기는 진주……." "좋은 데 계십니다. 소생 살기는……." 이렇게 기본인사를 하고는 다시 보부상 전체의 안부에서 가족 모두의 안부를 묻고 각자가 지나온 마을의 알 만한 사람들의 안부까지 묻는다. 이 인사만 해도 좋게 10분이 걸린다고 하니 아랍대표가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지금도 우리 한국인이 긴 인사 부문에서 최고라고 한다.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내놓은 1인당 인사성 대화의 평균 통화 시간은 1분 47초.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자.

미국은 54초, 영국이 50초, 프랑스 55초, 서독 60초, 일본은 1분 11초, 대만은 1분 20초다. 꼭 해야할 말보다 인사성 대화에서 예나 지금이나 세계 최고인 셈이다.

 

 

"걘 내 친구니까요"

 월남전이 한창일 때, 조그만 월남인 부락의 고아원에 박격포탄이 떨어졌다. 몇 사람이 죽고 몇 명의 어린이가 부상을 당했다. 의사들이 급하게 도착했으며 그들은 부상자들 중 여덟 살 가량의 소녀를 먼저 치료하기로 결정했다. 부상이 심했던 것이다.

 당장 수혈이 필요했다. 서둘러 검사를 해본 결과, 부상당하지 않은 고아들 중 몇 아이가 같은 혈액형이었다.

 의사는 월남어를 몰랐다. 그렇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손짓 발짓을 뒤섞어가면서, 박격포탄에 놀란 아이들에게 그 소녀가 흘린 피를 지금 보충해주지 않으면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려고 애썼다. 누군가가 피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참 후, 조그만 손 하나가 머뭇거리며 올라갔다가 도로 내려가더니 다시 올라갔다. 그 손의 주인공은 '헹'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오, 고맙구나 헹." 간호원은 즉시 헹의 팔을 걷었다.

 잠시 후, 헹은 자유로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몸을 떨었다.

 "왜 그러니?"

 헹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가 조금씩 흐느꼈다.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오자 헹은 작은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다 두 눈을 꽉 감더니 흐느끼는 소리를 죽이기 위해주먹을 입에 갖다 댄다. 당황한 의사와 간호원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 때 마침 월남인 간호원이 도착했다. 사정을 들은 월남인 간호원은 헹과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싱긋이 웃었다.

 "헹은 당신들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습니다. 당신들이 이 어린 소녀를 살리기 위해 자기 피를 전부 뽑아 주겠느냐고 물은 줄 알았던 거예요. 자기는 죽는거고요."

 "그렇다면 왜 이 아이는 자진해서 피를 뽑아주려고 했을까요?"

 월남인 간호원이 헹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제는 울음을 그친 헹, 너무나 맑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걘 내 친구니까요."

 

 

 월터 젠슨의 고향 방문 여행

 

 통조림 회사에 근무하는 월터 젠슨은 그 해가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해가 된다. 40년 동안 일한 그는 곧 은퇴할 예정이었다.

그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무척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도 그를 사랑했다.

이 회사에서는 정기적으로 '고향방문 여행'이라는 큰 행사를 가졌는데 매년 12월, 200가구에 이르는 근무자들은 한 가구당 5달러(그 당시의 하루 임금)와 자기 이름을 쓴 쪽지를 통에 넣는다. 그런 다음 사장이 눈을 가리고 쪽지 한 장을 뽑는다. 뽑힌 사람은 그 돈 모두와 회사에서 주는 적지 않은 축하금, 그리고 한 달간의 휴가를 가게 되는 것이다.

 3시까지 모든 가구가 5달러씩 냈다. 그리고 행운의 제비를 뽑기 전에 사장은 월터를 불러 기념패를 주었다. 그것은 그가 여러 해 동안 우정과 친절로 성실껏 봉사한 데 대한 감사의 뜻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이어 사장은 다음 행사를 진행했다. 통 속에 손을 넣고 쪽지 한 장을 뽑았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쪽지에 적힌 이름을 읽었다.

 "월터 젠슨!"

 환호성 때문에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끌어안고 축하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통 속에 든 200여장의 쪽지에는, 글씨체는 달랐지만 모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월터 젠슨"

 

 

 사람다운 사람

 

 이솝이 어렸을 때 이야기다. 이솝의 주인은 훌륭한 학자였다.

 어느 날 주인이 말했다.

  얘, 이솝아! 공중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많은지 보고 오너라.

 이솝은 목욕탕으로 갔다. 그런데 목욕탕 문 앞에 끝이 뾰족한 큰 돌이 땅바닥에 박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욕하러 들어가던 사람이나 목욕하고 나오는 사람 모두가 그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어떤 사람은 발을 다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코가 깨질 뻔했다.

  에잇! 빌어먹을!

 사람들은 돌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그 돌을 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도 참 한심하지. 어디, 누가 저 돌을 치우는가 지켜봐야지.' 이솝은 목욕탕 앞에서 그것만 지켜보고 있었다.

  에잇, 빌어먹을 놈의 돌멩이!

 여전히 사람들은 돌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는 욕설을 퍼부으며 지나갔다.

 얼마 후에 한 사나이가 목욕을 하러 왔다. 그 사나이도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이솝은 여전히 그 사나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웬 돌이 여기 박혀 있담!

 그 사나이는 단숨에 돌을 뽑아 냈다. 그리고 손을 툭툭 털더니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솝은 그제야 일어서더니 목욕탕 안에 들어가 사람 수를 헤아려 보지도 않고 그냥 집으로 달려갔다.

  선생님, 목욕탕 안에 사람이라곤 한 명밖엔 없습니다.

 이솝이 주인에게 말했다.

  그것 참 잘 됐구나. 너 나하고 목욕이나 하러 가자!  

 주인이 말했다.

  네, 선생님!

 이솝은 주인과 함께 목욕탕으로 왔다. 그런데 공동탕 안에는 사람이 우글우글, 발을 들여놓을 틈도 없었다.

  이 녀석, 사람이 한 명밖에 없다고? 너 왜 거짓말을 했느냐?

 주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선생님, 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솝이 말했다.

  무슨 거짓말을 하려느냐?

  아닙니다, 선생님. 목욕탕 문 앞에 뾰족한 돌부리가 튀어 나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다치기도 했는데, 누구 하나 그 돌멩이를 치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그 돌멩이를 뽑아 치우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오직 그 사람 하나가 보였을 뿐입니다.

  허허, 그래서 그랬구나.

 주인은 훌륭한 학자답게 껄껄 웃었다.

 

목숨보다 귀한 우정

 

 한 청년이 폭군이 좋아하지 않는 일을 저질렀다. 그 죄목으로 그는 감옥에 갇혔고 사형 날짜가 정해졌다. 그의 집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는 죽기 전에 부모님과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한번만 허락해주십시오. 그러면 돌아와서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폭군은 그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약속을 지킬지 어떻게 알겠는가? 너는 다만 나를 속여서 목숨을 건지겠다는 것이구나.

 그 때 그 청년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아, 임금님! 제 친구 대신 저를 감옥에 넣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가 고향으로 가서 자기 일들을 정리하고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도록 해주십시오. 저는 그가 약속한 대로 돌아올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임금님이 정해주신 날짜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때는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폭군은 이러한 제의를 하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마침내 폭군은 청년을 가도록 하고 대신 그의 친구를 감옥에 가두도록 명령했다. 날짜가 지나가고, 이윽고 사형 당할 날이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폭군은 간수에게 친구를 엄중히 감시하여 친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친구는 도망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친구의 신의와 명예를 믿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제 친구가 제 시간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의지로써는 어쩔 수 없는 뜻밖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그 날이 오고 그 시간이 되었다. 친구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친구에 대한 그의 신뢰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슬프지 않다고 말했다. 이윽고 간수가 와서 그를 사형장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청년이 문 앞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는 폭풍우를 만나 조난을 당해 늦은 것이었다.

 그 임금은 폭군이라 해도 사람의 미덕을 알지 못할 정도의 악인은 아니었다. 그는 두 청년처럼 서로 사랑하며 믿고 있는 사람들이 부당하게 괴로움을 당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폭군은 두 사람을 모두 살려주었다.

 

 

장님과 절름발이

 

 어느 날, 눈 먼 사람 하나가 혼자서 험한 길을 가게 되었다. 눈은 보이지 않고 길은 매우 험하여 몹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 절름발이가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불편한 다리로 험한 길을 가려고 하니 여간 힘드는 것이 아니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인기척을 듣고 그가 절름발이인 줄을 모르고,

 "여보시오, 나는 앞이 안 보여서 그러니 좀 도와주시겠소?"

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절름발이는

 "당신은 눈이 안 보이지만 두 다리는 튼튼하지 않소.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나를 도와 줄 수는 없겠소?"

 서로의 사정을 알고 딱하게 느끼던 중, 절름발이가 제안을 하였다.

 "그러면 서로가 어려운 형편이니 우리 서로 힘을 모아 봅시다. 당신이 나를 업으면 나는 당신의 눈이 되고, 당신은 내 발이 되어 함께 갈 수 있지 않겠소?"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오. 그렇게 합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험한 길을 안전하게 갈 수가 있었다.

 

 

 

도둑과 스님

 

 외딴 암자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이슥한 밤, 밤잠을 이루지 못한 노스님이 화장실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방으로 향하려는데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을 들었다. 스님이 소리나는 쪽으로 가보니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도둑이었다. 도둑은 지게까지 준비해서는 뒤주에서 쌀 한 가마니를 퍼내어 그것을 짊어지고 갈 참이었다.

 그러나 도둑은 쌀짐이 너무 무거운지 지게를 진 채 벌떡 일어서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도둑은 그렇게 한참을 주춤거렸다. 이를 조용히 지켜본 스님이 발소리를 내지 않고 도둑의 뒤로 가 섰다. 그리고는 도둑이 다시 한번 일어서려 할 때 지그시 지게를 밀어주었다. 한층 가볍게 일어선 도둑은 그 힘에 놀라 힐끗 돌아보았다. 사람이 서 있는 걸 확인한 도둑은 들켰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려왔다.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도둑은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 때 스님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울려왔다.

 "아무말 하지 말고 어서 내려가게."

 도둑은 그 길로 지게를 지고 산을 내려갔다.

 다음날 아침, 암자에는 도둑이 들었다며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노스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그 도둑은 암자의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함장에게 바친 노래

 

 무뚝뚝한 스타크 함장의 함선에 4명의 말썽꾸러기 수병이 새로 승선하게 되었다. 같은 고향에서 자란 크레이코우, 크래지, 케니크, 켈리 이 넷은 모두 부모가 없었으며 다른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불손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래서 스타크 함장이 병사들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의 이름과 주소를 물었을 때 이들은 리타 하이웨이 등 당시 유명한 여배우들의 이름을 댔다. 스타크 선장은 조롱하는 듯한 네 수병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 여배우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며칠 뒤 함선에선 함장과 상관들을 놀리는 상스러운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네 명의 말썽꾸러기들이 어릴 때 성가대에서 닦은 실력으로 노래를 지어 부른 것이었다. 그 노랫소리를 못 들었는지 선장은 밤마다 누군가에게 열심히 편지를 쓸 뿐이었다.

 겨울이 되자 구축함은 잠시 브룩클린에 정박하였다. 그 때 소포 수십 개가 스타크 선장 앞으로 배달되어 왔다. 선장은 소포를 풀지도 않은 채 탱크 속에 넣고 자물쇠로 문을 잠궜다. 그러자 네 명의 수병들은 선장이 마약 밀매를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윽고 구축함은 다시 바다로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탄절이 되었다.

 저녁 무렵 선장은 병사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후 크리스마스 선물을 차례차례 나눠주었다. 그것은 모두 가족들이 보내온 것으로 스타크 선장이 틈틈이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 선물을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선물을 받지 못해 시무룩한 네 명의 수병들 앞에 함장이 꾸러미를 던졌다. 거의 희망을 품지 않았던 이들은 부랴부랴 선물을 뜯었다. 크레이코우의 상자엔 놀랍게도 진짜 리타 헤이워드가 보낸 장갑과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나머지 세 명 역시 모두 여배우들의 선물을 받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연단으로 올라가 함장을 위한 노래를 부르겠다고 자청했다. 수십 명의 병사들은 그들의 입에서 어떤 노래가 나올지 궁금했다. 잠시 후 어두운 밤바다를 가르며 아름다운 화음이 퍼져 나갔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느 새 스타크 함장도 옆에 서서 같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마침내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가 되었다.

 

 

원숭이 사로잡기

 

 아프리카 한 지방에서는 재미있는 방법으로 원숭이를 잡는다.

 원숭이가 있는 곳에 가죽으로 만든 자루를 매어 놓는다. 이 가죽 자루는 겨우 원숭이의 손이 드나들 정도의 작은 입으로 되어 있다. 이 가죽 자루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을 하나 넣는다. 이 과일은 가죽 주머니의 입에 간신히 들어 갈 정도로 크고 단단한 것을 쓴다.

 숨어서 원숭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얼마 후, 원숭이가 나타나 자루 속을 들여다보고, '이게 웬 떡이냐?'며 좋아라고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과일을 잡는다. 이 때 고함을 지르며 뛰어나간다. 급한 원숭이는 과일을 쥐고 달아나려 애쓴다. 그러나 원숭이의 손은 과일을 쥐고서는 빠져 나오지 못한다. 과일을 놓으면 쉽게 손이 빠지는 데도 놓지 않는다. 과일을 쥐고 달아나려다 원숭이는 결국 잡히고 만다.

 

 

너의 등번호는 남겨둘게

 

 182㎝의 트레이시는 브랜든 대학교 여자 농구부의 촉망받는 선수였다. 지난 1993년 1월의 일이었다. 다른 대학과의 경기가 있던 그 날도 트레이시는 유감없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갈 무렵 트레이시가 슛을 하고 바닥에 오른발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그녀는 경기장이 울릴 정도의 비명을 질렀다. 무릎뼈가 충격으로 으스러진 것이었다. 즉시 병원으로 옮겨진 트레이시는 몇 시간의 대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의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 후 트레이시는 3개월에 걸쳐 아홉 번의 수술을 받았다. 의사들은 트레이시의 오른쪽 다리를 살리기 위하여 뼈를 이식하고 살을 옮기는 필사의 노력을 했으나 이식된 뼈와 살은 제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결국 다리를 잘라야 했다. 절단 수술 전날 농구팀 감독이 트레이시를 찾아왔다. 트레이시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트레이시, 너의 등번호인 10번은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남겨두겠다."

 감독의 말에 트레이시가 대답했다.

 "감독님, 꼭 팀에 복귀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트레이시의 부모들은 트레이시를 위로하기 위한 말쯤으로 생각했다. 3개월 후, 브랜든 대학교 농구부의 첫연습이 있던 날, 농구장에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연습가방을 어깨에 맨 트레이시였다. 그녀는 오른쪽 무릎 아래 의족을 끼고 있었다. 이윽고 선수들이 집합하자 감독이 선수들의 연습조를 불러주었다.

 "트레이시! 너는 1번 조다!"

 감독은 전력질주만 뺀 나머지 모든 연습에 트레이시를 참가하게 하였다. 다리를 절단한 뒤 4개월만에 트레이시는 첫 경기에 참가하였다. 이 날 그녀는 12점을 득점하고 6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다리를 절단하기 전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었다. 그녀의 등 번호는 여전히 10번이었다.

 

 

눈 먼 벌치기

 

 아이들 학교 때문에 춘천으로 이사온 박광호 씨는 가리산에 두고 온 벌통이 눈에 어른거린다. 벌들은 어릴 때 눈이 먼 박광호 씨의 이제까지의 삶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박광호 씨는 소양강에서 한참이나 안으로 들어간 첩첩산중 가리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얼마 후 벌목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마저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고 말았다.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아버지가 살아있으니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광호는 성한 사람도 하기 어렵다는 벌치기를 이웃집 벌치기 노인으로부터 배웠다. 뒷산에 지천으로 핀 꽃들 사이로 벌들이 날아다니면서 꿀을 벌통으로 모았다. 그러는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2백만원만 있으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서울 의사의 말에 2년 동안 부지런히 돈을 모아 달려갔지만 그 동안 그의 시신경은 이미 말라 수술이 불가능해졌다. 광호 씨는 가슴을 뜯으며 울부짖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광호 씨는 천사와 같은 아내를 만났다. 서울 가리봉동에서 미용사로 있던 아내는 솜씨 좋은 눈먼 벌치기 청년의 사연을 라디오에서 듣고 가리산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광호 씨의 눈이 되어 평생 밥을 지어주겠다던 그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셋째 아들을 낳다가 죽고 말았다. 광호 씨가 아내를 묻고 집으로 돌아오자 방안에는 이제 갓 태어난 아기와 두 살, 세 살인 딸아이가 울고 있었다. 광호 씨는 더듬더듬 아이들을 안고는 큰 소리로 울었다.

 광호 씨는 부지런히 벌을 쳤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잘 자랐다. 앞을 볼 수 없는 광호 씨는 혹 아이들이 화상을 입을까봐 상에는 뜨거운 음식을 올려놓지 않았다. 어느 땐 둘째 아이는 안고 막내는 업고 해서 길을 가다 황소를 지팡이로 건드려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손끝의 감각만으로 벌을 쳐온 지 16년여, 세월은 큰애가 중학교에 다닐만큼 빠르게 흘렸다. 눈먼 아비가 정성으로 키운 아이들은 흉터 하나 없이 너무나 곱게 자랐다.

 

 

 

 

일으켜 세워준 여왕

 

 전 캐나다 수상 피에르 트뤼도의 부인인 마거리트는 남편을 따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 마거리트 여사가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였다.

 어느 해 캐나다 수상 부부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여왕을 찾아 뵙기 위해 수상 부부는 수십 명의 수행원들을 이끌고 왕궁으로 향했다. 마거리트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수상의 부인으로서의 당당함을 보여주기 위해 최신 유행의 옷을 차려입고 굽이 아주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차안에서 마거리트는 이상한 초조감에 어쩔 줄 몰랐다. 초조함은 왕궁에 들어설 때까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근엄하면서도 인자해 보이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미소를 지으며 수상 부부를 맞았다. 트뤼도 수상이 먼저 여왕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수상은 여왕에게 부인 마거리트를 소개했다. 마거리트의 가슴은 마구 쿵쾅거렸다. 마거리트는 예를 갖추기 위해 왼발을 뒤로 물리고 무릎을 굽혀 인사를 한 뒤 여왕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 다음 마거리트가 일어서려고 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높은 굽 탓이었는지 무릎이 삐끗한 것이었다. 주위엔 양국의 정치인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기자들의 카메라는 쉴새없이 찰칵거렸다. 당황한 마거리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위기를 대충 짐작한 여왕이 마거리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오른 팔의 근육에 온 힘을 모아 마거리트를 끌어 당겼다. 그러면서도 여왕의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며 시선 역시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거리트는 여왕이 손을 잡아준 덕분으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똑바로 일어설 수 있었다. 여왕은 영국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하고는 인자한 미소로 마거리트를 쳐다보았다. 그 날 마거리트가 실수할 뻔한 일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야의 코미디언

 

 미국의 대표적인 코미디언 봅 호프,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때문에 마을에 들른 극단을 무작정 따라 나선 봅은 이 후 코미디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봅은 이 세상에서 사람을 웃음 짓게 만드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갈 정도로 부지런했다. 그곳이 아무리 멀리 떨어졌어도, 혹은 총탄이 오가는 전쟁터일지라도 봅은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해 봅은 영국에서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을 위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수천 명의 군인들은 봅의 재치와 유머스런 몸짓에 웃음을 터뜨리며 잠시 전쟁의 시름을 잊었고 애잔한 고향 생각에 눈물을 짓기도 하였다. 그 때 봅의 공연을 보기 위해 황야를 가로질러오는 부대가 있었다. 6백여 명의 군인들은 봅의 공연장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지만 끝내 되돌아가야만 했다. 공연시간이 지난 데다가 피곤에 지친 군인들이 그 먼 거리를 걸어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연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우연히 이 소식을 들은 봅은 군인들의 박수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단원들을 태운 버스는 황야로 들어섰다. 봅의 눈앞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한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세차게 비가 쏟아졌다. 그래도 봅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갔을까. 폭우 속에서 희미하게 움직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봅이 뒤쫓아 간 부대였다. 순간 봅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봅은 군인들을 향해 멈추라는 뜻의 경적을 울렸다.

 다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6백여 명의 군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세찬 비가 얼굴을 때렸지만 봅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군인들의 얼굴엔 눈물과 빗물이 섞여 흘러 내렸다. 비가 쏟아지는 거친 황야에는 끝없는 웃음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누가 자랑 좀 해주소!

 

 지난 여름의 일이다.

 퇴근길이라 사람들은 지쳐 보였고 날씨도 여름이라 몹시 덥고 장마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버스가 한 정거장 두 정거장 지나 통도사 입구에서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 그 할머니는 통도사 근처에서 장사를 하시는 듯 머리에는 당신보다 더 큰 봇짐을 이고 있었다. 그러자 기사 아저씨가 "할머니 수고 많으십니다" 하고 정겹게 얘기를 건넸다.

 버스 안은 이미 만원이었으나 마침 운전사 바로 뒷좌석이 비어 할머니는 지친 다리를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누가 듣지도 않는 얘기를 계속하셨다. 집에는 아무도 없이 병든 아들이 두 명이 있고, 돈이 없어 할머니가 직접 봇짐으로 장사를 다니는데 오늘은 너무 장사가 안됐다고 신세한탄을 하셨다.

 그 투정 아닌 투정을 기사 아저씨는 싫은 표정 하나 지으시지 않고 연신 "할머니가 고생 많습니다" 하시며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셨다. 그리고 할머니가 내릴 준비를 하자 기사 아저씨는 꼬깃꼬깃 접은 만원짜리 한 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할머니 손에 쥐어주셨다.

 "할머니, 요기나 하십시오."

 "기사 아저씨, 이러면 안됩니다."

 할머니가 펄쩍 뛰시자 아저씨는 그러면 목적지에서 내릴 수 없다는 엄포(?)를 놓으셨다. 할머니는 끝내 눈시울을 붉히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손님들, 누가 TV에 이 아저씨 자랑 좀 해주소. 난 무식쟁이라 글도 모르고 전화도 못하요. 좀 부탁합시다. 예!"

 그 날, 버스 운전사 아저씨의 모습은 한여름 장대비 만큼이나 시원한 것이었다.

 

 

 

 잊을 수 없는 선생님

 

왓슨 선생님은 6학년 과학을 가르치셨다. 선생님은 첫날 수업시간에 우리에게 주위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빙하기에 멸종된 캐티 웜퍼스라는 동물에 관해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캐티 웜프스의 두개골을 보여 주셨고 우리는 요점을 학습장에 기록했다. 그리고 나중에 간단한 시험을 치렀다.

선생님에게서 답안지를 받아본 나는 깜짝 놀랐다. 영점이었다. 시험에 실패한 것이다. 뭔가 착오가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왓슨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정확하게 답을 적어 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 반 학생 모두가 영점을 받은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왓슨 선생님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셨다. 캐티 웜프스에 관한 얘기는 모두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그런 동물은 있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기한 내용은 틀린 지식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는 분개했다. 뭐 이런 시험이 다 있어? 무슨 선생님이 이래?

"나는 캐티 웜프스의 두개골(사실은 고양이의 두개골)을 돌리면서 너희들에게 이 동물의 흔적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그 동물의 놀라운 시력과 털의 색깔, 주로 먹는 음식 등 나도 알지 못하는 사실을 얼마나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던가? 또 그 동물의 우스꽝스러운 버릇도 설명해주었었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여전히 의심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의 잘못이다. 시험점수는 영점이다."

왓슨 선생님은 그렇게 설명하셨다.

왓슨 선생님은 우리가 이 경험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선생님은, 교과서가 절대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실 절대로 확실한 것은 없다는 말씀이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마음을 잠재우지 말고, 선생님이나 교과서가 틀렸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떳떳하게 주장하라고 일러주셨다.

나는 지금도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사람

 

"제게는 아들녀석이 하나 있는데 아주 개구장이죠. 그러나 녀석이 어찌나 마음이 여린지 조금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미모사처럼 대번 달라지는 거예요. 그 애는 매일 아침 학교에 가는 길에 철도 건널목에서 새벽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린답니다. 그리고는 팔이 빠져라 손을 흔드는 거죠."

"아, 그래요? 그리고요?"

얼굴이 검고 인상이 좋지 않은 사내가 자기 목발을 만지면서 관심을 보였다.

"그러고 나서 학교로 가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멍청하니 앉아 운다니까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제 몸만 축이 나지."

"왜 그럽니까?"

"  그애는 매일 손을 흔들지만 승객들은 아무도 마주 흔들어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애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지요."

"그래서 댁이 내일 새벽 차를 타고 손을 흔들어 아들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이 기차를 탔습니까?"

"휴, 그렇습니다."

기차가 기적을 두어 번 올리더니 작은 역에 섰다. 남자가 일어섰다. 목발을 가진 사내가 피곤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잘 해보세요."

하지만 남자는 다음날 새벽기차를 타지 못했다. 어쩐 일인지 늦잠을 자고 말았던 것이다. 죄책감에 힘없이 집으로 돌아 왔을 때, 남자는 아이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버지, 어떤 아저씨가 오늘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흔들었다구요. 나중에는 작대기 같은 것에 손수건을 매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흔들어 주었어요."

 

 

 

 공부를 하는 까닭

 

공자의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왜 힘든 공부를 해야 하나요?"

 

공자가 대답했다.

공부란 태평할 때 군인이 칼을 가는 것과 같다. 태평할 때 칼을 갈아두지 않으면 갑자기 적군이 쳐들어 온 후에 칼을 갈 수는 없다. 공부도 앞으로 닥칠 세상살이에 미리 슬기롭게 대처하자는 것이다.

또 공부는 농부가 농사철이 닥치기 전에 우물을 파고 둑을 쌓고 농기구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 한가한 겨울철에 미리 우물을 파놓으면 가물어도 논밭에 물을 대고 사람도 물걱정을 하지 않게 된다. 또 강가에 둑을 튼튼히 쌓으면 장마가 닥쳐도 걱정이 없다. 농기구를 미리 준비하면 봄에 삽과 괭이로 논밭을 갈아 씨앗을 뿌리고 호미로 김을 매고 낫으로 곡식을 거두어 큰 풍작을 맞을 수 있다.

또한 공부는 어부가 항구에서 배와 그물을 손질하고 식량과 연료를 준비하는 것과 같이 미리 사회 생활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어려서 기회를 놓치면 돌이키기 어렵다.

 

 

 턱을 더 들어!

 

 옛날 소련의 한 작은 마을에 기독교를 몰래 전파하는 목사가 있었다. 종교가 금지되고 있던 당시 목사는 감시 대상이었다. 그러다 그만 경찰에 들키게 되어 목사는 정치범만 수용되는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목사에겐 같은 마을에 사는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발사인 그는 목사의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했다. 결국 목사 친구가 너무나 걱정이 된 그는 친구를 따라 시베리아로 무작정 떠났다. 그리고 수용소에 일자리를 구했다. 거기에 있다보면 언젠가는 목사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발사는 믿고 있었다. 이발사의 일은 죄수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것이었다. 감시가 심했기 때문에 이발사는 죄수들과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는 가운데 몇 주가 흘렀다. 여느 때처럼 죄수들의 머리를 깎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온 이발사는 놀랐다. 거기에는 덥수룩한 머리의 목사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눈빛만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나눌 수 없었다. 목사의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 이발사의 손은 가늘게 떨렸다. 목사에게 이발사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머리를 고르게 자르기 위하여 고개를 들라는 주문뿐이었다.

 "이봐, 턱을 들어."

 이발사는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러시아 말로 '힘 내!'라는 관용적 뜻이 숨어 있는 이 말을 듣고 목사는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

 '고맙네 친구, 턱을 빳빳이 들고 이 무서운 곳에서 꼭 살아 남겠네.'

 이발사는 목사가 풀려날 때까지 3년 반 동안 수용소에서 그 일을 계속했다. 비록 몇 개월에 한번씩 이루어진 만남이었으나 그 때마다 이발사는 목사에게 말했다.

 "이봐, 턱을 더 들어!"

 그러면 목사는 턱을 들면서 이발사의 눈빛을 슬쩍 바라보았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도끼를 잃은 사람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다. 그 도끼는 푸른 날이 선, 아주 성능이 좋은 것이었다.

 나무를 할 때 이 도끼는 매우 잘 들어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그런데 바로 그 도끼를 잃어버린 것이다.

 여기저기 찾아보았으나 도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옆집 아이가 왠지 의심스러웠다. 자기가 도끼를 잃어버리고 난 뒤부터 옆집 아이는 자기를 보고 인사도 잘하지 않고 슬슬 피하는 것이 아닌가! 길 걷는 모습도 왠지 불안했다. 뭔가 죄를 짓고 눈치를 보는 듯했다. 음성도 떨려 나오는 것 같았다. 물론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얼굴이 명확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저 아이가 내 도끼를 훔쳐 간 것이 틀림없어. 어떻게 혼내줄 수 없을까?'

 그 남자는 매일 아이의 거동을 살펴보았다. 범인은 바로 그 아이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안 되어 그는 잃어버린 도끼를 찾아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조심하지 않고 도끼를 산에 두고 왔던 것이다.

 도끼를 찾은 다음 날 그는 또 옆집아이와 만나게 되었다. 그가 다시 이모저모 살펴보았더니 이번에는 모든 것이 달라져 보였다. 길 걷는 모양이나 말하는 음성 할 것 없이 그 일거일동이 물건을 훔친 사람 같지 않게 보였다. 물론 그 아이는 그전과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때의 일이다. 한 건달 같은 남자가 어느 날 부처님에게 찾아와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건달 같은 남자의 욕을 모두 다 듣고 난 부처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묻는다. 만일 어떤 손님이 그대를 찾아왔을 때 그대가 손님에게 음식을 주었는데, 그 손님이 음식을 받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겠는가?"

 건달 같은 남자가 대답했다.

 "물론 제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은은한 목소리로 이렇게 이르셨다.

 "그와 똑같다. 네가 내게 욕설을 퍼부었지만 나는 그것을 받지 않았으니 그 욕설은 여전히 네 것이니라."

 "?"

 건달 같은 사내는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잘못을 빌었다.

 

 

 

 알게 뭐야

 

 두 대의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밀가루를 싣고 빵공장을 향해 가는 차와 시멘트를 싣고 벽돌 공장으로 가는 차였다.

 가다 보니 오줌이 마려웠다. 두 차의 운전기사는 같은 시간에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갔다. 한 사람이 먼저 나와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다른 사람도 나와 차에 올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 그 차가 아닌 듯했다. 그 사람은 중얼거렸다. "알게 뭐야." 다른 운전사도 차가 바뀐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중얼거렸다. "알게 뭐야."

 밀가루를 실은 트럭은 벽돌 공장에, 시멘트를 실은 트럭은 빵공장에 도착했다. 벽돌을 만드는 사람은 밀가루를 물에 풀어 벽돌을 찍으며 중얼거렸다. "이 시멘트는 꼭 밀가루 같군. 하지만 알게 뭐야."

 빵공장에서도 빵을 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색깔이 시커메졌다. 빵 만드는 사람은 중얼거렸다. "알게 뭐야."

 밀가루 벽돌은 집짓는 곳으로 옮겨졌다. 시멘트 빵은 빵집을 거쳐 집집마다 배달되었다. 이윽고 "우르르, 폭삭" "와지직" "아야" "앙앙"

 집은 무너졌다. 사람들은 이를 다치고, 배를 움켜쥐었다.

 

 

 피에로

 

 옛날 아라비아의 어느 마을에 왕에게 여러 해 동안 시중들고 있던 피에로가 있었다. 그러나 이 피에로는 어느 날 궁전에서 왕을 화나게 만들었다.

 왕은 피에로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피에로는 왕이 어렸을 때부터 궁전에서 일해 왔었기 때문에 왕은 마지막 자비를 베풀었다.

 "알라신도 나도 자비심이 깊으니라. 내가 어렸을 때부터 너는 착실히 나를 웃기려고 열심히 노력해 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겠노라. 너는 어떻게 죽는 것이 좋을지 네 소원대로 죽는 방법을 택하도록 하여라."

 왕은 조그마한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려놓고 "이 모래가 다 흘러내릴 때까지 생각해서 대답하도록 하라."

 피에로는 모래시계가 마지막 다 흘러내릴 때까지 줄곧 아무 말도 없었다. 그래서 최후의 모래가 밑의 유리 상자 속에 떨어지자 왕이 물었다.

 "자. 이제 마음은 결정되었는가?"

 "예. 정해졌습니다. 저는 늙어서 죽는 쪽을 희망합니다."

 

 

 

콜럼버스의 달걀

 

 항해가이며 탐험가인 콜럼버스는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런 일화를 남겨 놓았습니다. 탐험에 성공하고 돌아온 콜럼버스는 날마다 축하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콜럼버스의 이름이 높아지자, 그것을 시기하고 언짢게 여기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어느 날,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잔치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대서양을 서쪽으로 자꾸 가서 새 섬을 발견한 것이 그렇게 대단한 공로일까요? 당신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

 그러자, 화가 난 콜럼버스는 탁자 위에 놓은 달걀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외쳤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좋습니다. 이 달걀을 탁자 위에 세울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콜럼버스의 말을 듣고 모두 세워 봤습니다. 그러나 실패였습니다.

 "못하십니까? 그럼 제가 해 보겠습니다."

 콜럼버스가 말을 끝내고 달걀 끝을 탁자에 톡톡 쳤습니다. 달걀 껍질이 깨졌습니다. 그는 깨진 쪽이 밑으로 가게 해서 세웠습니다. 달걀은 꼼짝도 안하고 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세우는 것은 남이 하고 난 다음에는 쉽습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탐험한 것도 이처럼 처음 한 일이라 쉽지 않습니다. 이제 대답이 되겠습니까?" 콜럼버스가 빙그레 웃으면서 조용히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그를 우습게 보지 않았습니다.

 

 

내일도 날

 

 몹시 게으른 농부가 있었다. 남들은 들에 나가 일을 하는데도 집안에서 빈둥거리고, 어쩌다 밖에 나가서도 남의 논두렁이나 돌아다니며 말참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농부가 농사철을 놓치면 가난을 면하기 어려운 법이어요. 날씨도 청명하니, 내일은 제발 논갈이를 합시다."

 이튿날 아침 일찍 밥을 먹은 농부가 들에 나가려고 쟁기를 챙기는데, 이웃 친구가 찾아와서 강에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했다.

 "어허, 이거 곤란하군. 논갈이를 해야 하는데."

 "여태 가만있다가 하필이면 오늘 논갈이를 하려고 그러나. 기왕 늦었는데, 내일로 미루고 같이 가세."

 원래 놀기 좋아하는 성미인지라, 두어 번 권하자 그만 따라 나서고 말았다.

 그 날 강가에 가서 마신 술 탓으로 농부는 이튿날 종일토록 드러누워 있었다.

 "내일은 꼭 논갈이를 해야지!"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튿날 비가 쏟아졌고, 또 다음 날은 소가 병이 나서 쟁기를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까운 집에 초상이 나서 다시 내리 닷새를 허비하고 마니, 마침내 모든 시기를 놓친 셈이 되고 말았다.

 겨우 부랴부랴 논을 갈아서 모내기를 했으나, 이미 적기를 놓친 파종이기 때문에 소출이 평년작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듬해 봄에 춘궁기가 오기도 전에 그의 집은 식량이 떨어져버렸다.

출처 : 청오의 미래교육
글쓴이 : 청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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