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코너/Meaning of life

잊혀져버린 다시 보고싶은 영화 HALF LIGHT 이야기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17. 9. 30. 09:40




| 2006.06.28 개봉 |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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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벌써 10여년 전에 보았던 영화였는데, 오늘 아침 갑자기 생각나 전에 써두었던 글을 포스팅해 봅니다.****


1

저는 주말 부부로 주말에만 집으로 옵니다.

수원에 도착하니 4시가 조금 넘었다. 집에 들어가 아내와 딸의 얼굴을 보니 아! 이곳이 사람사는 집이로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내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했다. 딱히 어떤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것은 없었지만, 아무것이라도 좋다. 집에서 세계문화 유산인 화홍문이 있는 수원천을 따라 팔달문 근처의 지난번에 갔던 극장으로 갔다.


무엇을 볼까 하는데, 아내가 데미 무어가 나오는 「HALF LIGHT」를 보자고 한다. 15세이상 관람가라고 써있다.

매표소 안내양에게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하고 물으니 “스릴러”라고 한다. 아내는 나는 공포영화 싫었지만, 딴 영화들은 모두 오락물 같아 그렇게 하자고 동의를 하니, 영화는 바로 5분 후 상영한다고 했다. 내심 잘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아내가 “딱 시간 맞추어 잘 왔지?”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며 극장으로 들어갔는데, 이게 왠일인가?  사람이 나까지 8명이다. 너무 일찍왔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래서는 영업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영화 제목이 「HALF LIGHT」는 무슨 뜻일까? 속으로 짐작해 보아도 특별한 의미는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희미한 빛> <어슴프레한.....>정도로 밖에......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증이 더 한다. 「HALF LIGHT」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2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가 시작되면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는 매우 감동적이다. 카메라가 잡은 영상이 극적이라 생각될 만큼 시원한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여기에 보이는 데미무어의 모습이 너무 이상하다. 아니 너무 다르다. 내가 아는 데미무어는 <사랑과 영혼>에서 보았던 천진난만하고, 맑고 깨끗한 이미지였는데, 어찌 오늘 보는 그녀의 모습은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 세월은 못속여....!” 를 되뇌이면서.....


 이제 <데미 무어>는  불혹을 훌쩍 넘긴 이 여배우이지만 매력적인 그녀의 눈망울만은 아직도 여전하다. 이 영화 '하프라이트'는 온전히 데미 무어의 영상에서 시작해 무엇인지 모를것 같은 혼돈속에서 그녀의 아픈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데미무어에게는 다소 낯선듯한 느낌을 주는 듯한<스릴러>였다. 그녀의 역할은 스스로 모정을 잃고 방황하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눈빛 또한 수수해보였다. 나이 탓일까? 아니면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경험 많은 노련한 여배우이기 때문일까?


영화는 불행에서 출발한다. 유명 소설가 레이첼(데미 무어)는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의 아들이 엄마에게 자신과 놀아달라고 조른다. 엄마는 일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5분만 시간을 달라고 아이에게 말한다. 아들은 3분, 엄마는 4분으로 타협은 끝났다. 그 때 남편이 들어와 자신의 글이 출판사에서 툇자를 맞았다고 하는데, 그녀는 이야기 설정을 조금 고치면 좋을 것이라고 위로를 한다. 이러는사이에 아들은 사람처럼 말을 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베란다 쪽으로 난 난간으로 나갔다. 호수로 나가는 문이 열려있다. 이때 카메라가 잡은 앵글속에서 무슨 불길한 예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녀가 타이프로 글을 쓰는 4분동안에 그만 자신의 여덟 살 아들이 집앞 호수에 빠져 죽는 사고를 겪는다.


호수쪽으로 나가니, 아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발견되고, 옆쪽의 보트를 밀어내니 아들이 엎어져 죽어 있었다.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죄책감으로 인해 남편과의 관계도 소원(疏遠)해졌다.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그녀는 기자인 친구의 주선으로 집을 떠나 한적한 바닷가에 있는 집을얻어 혼자만의 집필실에 자신을 가두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집으로 가 시내로 가는 길을 물으며, 자신을 소개한다. 그 남자 주인은 그곳의 경찰이라고 소개하면서 친근감있게 대해 주며, 그녀가 머무는 집은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은 집이라고 알려 주기도 했다.


 소설가인  레이첼은 바다가 보이는 창가의 탁자에 타이프라이터를 올려놓고 글을 써보려는데 마음이 안정되지를 않는지, 이리 저리 몇 번인가 자리를 옮겨본다. 집 앞 저 건너편으로 오래된 등대가 보인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던 그녀는 자신의 보트로 등대를 찾아간다. 아름다운 등대섬의 풍경을 사진찍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등 뒤에서 낚시대와 물고기를 든 젊은 남자 앵거스를 만난다.


자료 조사를 위해 찾은 외딴 섬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앵거스(한스 매디슨)를 만나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간다. 사진도 찍기도 하고 풀밭에 놓여있는 말들을 함께 타보기도하며, 인간적인 이해를 나누던 둘의 만남은 새로운 사랑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랑만큼이나 황홀했던 바닷가 풍경은 이내 알 수 없는 혼란스런 공간으로 바뀐다.


동네 사람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갔을 때 레이첼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앵거스가 등대지기 생활을 하다 이미 7년 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듣는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정신만 산란해진다.

분명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으며 같이 하룻밤을 보냈던 남자가 이미 죽은 사람이라니 레이첼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뿐이다. 더구나 죽었던 아들의 영혼까지 자신의 꿈 속에 나타나 집요하게 괴롭힌다.


찍었던 사진필름도 없어지고 앵거스가 만들어준 나무 배도 없어지고 이상하고, 혼란스럽다. 정말 나는 현재에 살고 있는데, 나의 기억은 믿어주지 아니하고, 남들은 마치 나를 정신병자로 여기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다.

나의 삶과 기억은 무엇일까?  데미무어는 내가 본 것은 환상일까?하고 의문을 갖는다.

나중에 모든것이 무시무시한 음모였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마누라가 죽으면 그 막대한 저작권료가 탐이나 ....!!!!

400만불이던가? 저작권료가?

그것 때문에 계획적인 음모를 꾸미다니, 그것도 자신과 제일 친한 친구와 남편이 저지른 자작극이었다는 것을 ......

남편과 친구가 레이첼의 발목에 쇠사슬로 묶어 자물쇠를 채워 수장시키려고 배에서 밀어내던 장면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다리를 묶인채 물속으로 던저져 가라앉는 동안 “뒤를 보아요”라고 말하는 아들 그리고 아들이 던져주는 열쇠, 죽어서도 엄마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들의 영혼, 삶과 죽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과연 그것은 '하프라이트(Half Light)'란 제목대로 빛과 어둠의 구분이 뚜렷치 않은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도대체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나 자신만 믿고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믿어주지 않는 거짓이 되어버린 따뜻한 느낌과 뜨거운 정사의 기억도,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이 혹독한 상황 속에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진실은 레이첼과 관객인 나 자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어 전개되는 상황속에서 정신병자처럼 취급받던 한 여인이 자신의 영감으로 처음 이사와 만났던 경찰관을 등대로 가도록 부탁하던 진지한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  등대에서의 의문스러움은 이 경찰관의 등장으로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레이첼은 무너져버린다. 살인 청부를 맡은 가짜 등대지기 앵거스에게도 마지막 사랑이라는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웃들의 따뜻한 인간애와 남편과 친한 친구의 부도덕성과 잔인성을 빛과 어두움으로 나타낸 것이다. 영화 내내  의문스러웠던 HALF LIGHT의 의미가 경찰관의 등장으로 모든 사실들이 명백해진다.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모든 사실들이 밝혀짐에 따라 데미무어의 혼돈속의 흐릿한 기억을 확연한 빛으로 바꾸고 있다. 

 

부부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을 빛과 어두움으로 표현하는 인생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혼란스럽다.


이글을 마친 내겐 아직도 '슬픔에 젖은' 슬픈 데미무어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