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이야기 |
누구나 학창시절에 별명을 하나쯤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필자의 별명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청개구리였다. 물론 유쾌하진 않았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스스로 인터넷 필명으로 즐겨 쓰기도 한다. 특히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경칩이면 생일처럼 반갑다. 오늘이 바로 그 경칩이다. 예로부터 차가운 북풍이 걷히고 따뜻한 동풍이 불면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는 입춘이 봄을 상징하지만, 기실은 개구리가 활동을 개시하는 경칩이 되어야 봄기운이 완연하니, 봄은 개구리와 함께 시작된다 하겠다. 그런데 개구리는 생김새 덕분인지 아이들 동화에서도 천대 받는 존재로 등장하고 특히 유머 시리즈에서 개구리는 놀림감의 대상이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어느 날 개구리가 입 작은 놈이 입 큰 놈의 등을 무조건 밀어줘야 하는 목욕탕에 갔다가 하마를 만나 녹초가 될 때까지 등을 밀어야 했다. 억울한 개구리는 다음날 또 그 목욕탕을 찾았다. 아니, 이번엔 악어가 있지 않은가! 또 다시 고생한 개구리는 성형외과를 찾아갔다. “선생님, 제 입을 귀밑까지 완전히 찢어주세요.” “어렵진 않지만 그러면 하루밖에 못삽니다.” 그러나 개구리는 복수심에 결국 수술을 하고 의기양양 목욕탕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개구리는 도착하자마자 거품 물고 쓰러졌다. 왜? 목욕탕 문 앞에 “금일휴업”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러나 웃을 수만 없다! 문제는 이 유머가 우리 인간 세상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구리의 허무한 결말은 힘의 논리에 이끌려 무한경쟁에서 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다가 결국 일을 그르치고 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니던가! 기왕 말 나온 김에 개구리 이야길 하나 더 해 보자. 필자는 어린 시절 말 안 듣고 말썽부릴 때마다 어머니로부터 청개구리 동화를 귀 따갑게 들었다. 그런데 죽은 엄마 개구리를 냇가에 묻어 놓고, 뒤늦게 잘못을 깨달을 아들 개구리가 비만 오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 울게 되었다는 그 비극적인 이야기 앞에서는 아무리 심한 말썽꾸러기라도 기가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너무나 기가 막힌 이야길 듣고 웃지도 울지도 못했던 적이 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 여기서 우리친구들은 아들 청개구리한테 뭐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은가요?”라고 물었더니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서슴없이 “청개구리야 걱정 마! 곧 새엄마가 생길거야!”그랬다는 것이다. 요즘 참새들은 허수아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더니 요즘 영악한 아이들에겐 청개구리 이야기가 먹히지 않나보다. 요즘 아이들뿐만 아니다. 특히 국가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구 입이 더 큰지 경쟁에 급급하여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영악함이 도를 넘쳐 그러면 안 된다고 야단쳐도 “새엄마 생길거야” 권력만을 탐하니 이 일을 어찌 할 것인가? 경칩을 맞으며 개구리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2006년 03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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