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회장이 1999년 일본에
부임했을 때다. 공장을 둘러본 그는 적자에 허덕이던 닛산의 부활을 확신했다고 한다. '현장의 힘'이 그 근거였다. 근로자들의 능력과 의욕, 현장
특유의 노하우 등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닛산을 보기 좋게 되살려 놓은 그는 요즘 "일본경제의 부활은 바로 현장의 힘 덕분"이라고 단언한다.
영어를 쓰면서도 이 말을 할 때는 꼭 일본어로 '겐바(現場)'라고 한다. 현장을 존중하고 그 힘을 살려주려는 자세가 말에서
묻어나온다.
국내 기업 총수들의 신년 경영화두에서도 '현장경영'이 자주 등장한다. 최고경영자들은 생산.판매 현장을
찾아가 직원이나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도 한다. 이론이나 공식으로 나타내기 어려운
주관적이고 비공식적인 지식들이 형성되는 곳이 바로 현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지식을 '암묵지(暗默知)'라고 한다. 개인적 경험, 숙련된 기능,
조직문화, 근로자들의 상호작용 등에 의해 생겨나고 공유되는 지식과 정보를 말한다. 현장경영의 가치는 현장의
암묵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토대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장의 논리가 무조건 최우선이
될 수는 없다. 쓸데없는 고집과 근성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곤조(根性의 일본어 발음)를 부린다'는 부정적인 말도 나온다. 일본의
마쓰시타가 한때 소니에 평면형 TV 개발의 선수를 빼앗긴 것도 "브라운관은 조금 볼록해야 화질이 좋다"는 현장 엔지니어 그룹의 고집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런 오류는 어느 기업에서나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현장은 기업에만 있는 건
아니다. 가정에서도 가사의 현장이 따로 있다. 집안일에 무관심하던 남편이 모처럼 아내를 거들어주려 해도 현장을 잘 모르고선 도움이 안 된다.
세탁기에 겉옷과 양말에 내의까지 함께 넣어 돌리지 않나, 생선 굽는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지 않나…. 그러니 거드는 남편도 힘들고, 바라보는
아내도 편치 않다.
퇴직을 앞둔 샐러리맨들이 손쉽게 생각하는
'먹는 장사'도 무궁무진한 현장 노하우가 필요하다. 손님에게 내주는 물수건.이쑤시개.밑반찬을 어디서 싸게 조달하는지, 설거지는 어떻게 빠르고
깨끗하고 경제적으로 할 수 있는지, 실내조명은 얼마나 밝게 해야 하는지…. 이런 노하우나 지식 없이 무작정 먹는 장사에 나서 카운터만 지키다간
큰코다친다.
주) 일이나 경험을
통해서 만이 얻을 수 있는 이러한 지혜를 직업적 지혜, 또는 심층지식이라고 한다. 흔히 창업에 나서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 바로 직업적 지혜의
부족에서 온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을 마음 먹기 전에 취업을 통해 사전 경험을 쌓도록 권하는 경우가 많다.
취재현장을 뛰어다니는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사장보다는
대리나 과장에게 듣는 얘기가 큰 기사로 이어질 때가 많다. 사장은 최종 확인용으로 만나도 된다. 현장에 다가갈수록 생생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현장에 가까이 가야 한다는 건 불변의 원칙인 듯하다.
그러나 사장이 대외홍보를 위해, 또는
사보게재용으로 행사 치르듯 현장을 방문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간혹 최고경영자가 일선 현장을 방문했다는 보도자료를 돌리며 홍보하는 기업이
있다.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격려하는 자상한 최고경영자의 모습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기까지 현장 직원들은 이런저런 준비와 의전에 치인다. 이는
현장경영이 아니라 '민폐'다.
기업에선 경영자가 현장을 직접 둘러보기만 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장이 일선 근로자에게까지 신경 써주는 모습을 보이면 현장의 사기가 오를 수도 있다. 다만 구호 수준의 현장경영이 관료주의와 결합하면 되레
현장의 힘을 해치고 만다. 올핸 현장 냄새 확확 풍기는 진짜 현장경영을 보고 싶다.
남윤호 경제부문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