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
1.
새벽마다 절대자에게 무릎을 꿇던 스물일곱째 날,
그날 나는 펑펑 소리 내어 울었다.
아, 나는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2.
여행 경로도, 방법도 전혀 정하여지지 않은 채 우리가 일방적으로 대장으로 추대한 만이 형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기로 약속하곤 오후 5시, 인천 발, 청도 행 페리호에 몸을 실었다.
2인1실의 로얄실 룸메이트인 윤 사장은 진도출신의 촌놈이다.
목포에서 공고를 나와 자수성가한 치열했던 삶의 궤적을,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그려보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요 감동이다.
고교 졸업 후 2년 남짓 직장생활을 했을 뿐 늘 자영사업을 하였다는 그는 몇 년 전 석재광산을 잘못 인수하여 전 재산을 날리다시피 하였단다.
우연히 중국의 석재수입에 눈을 돌린 게 계기가 되어 이젠 거반 본전을 찾았노라고 껄껄 웃는 그에겐 이 땅의 고단하지만 대단하기도 한 아버지들의 모습이 보인다.
인천소재 모 수산물 유통회사의 대주주이기도 한 그는 주업인 석재산업뿐만 아니라 신년도에는 수산물 유통업 경영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 심산이었다.
그의 사업이 날로 번창하기를 진심으로 빌어 본다.
3.
아침녘에 청도부두에 도착하니 웬 덩치 큰 신사가 만이 형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다.
중국식 발음의 한국말로 미루어 조선족 같은데 그 친구 뒤로 검정색양복이나 가죽잠바로 시커멓게 통일한 스포츠머리 다섯이 서있다.
언젠가 만이 형한테 들은 청도 주먹인가 부다.
검정세단을 세대나 끌고 나왔다.
뒤이어 꼭 만화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우리는 그들이 미리 잡아 놓은 조선족이 경영하는 민박집으로 갔다.
민박집에서 만이 형은 저간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조폭두목같은 그 사람은 30대 후반의 흑룡강성 출신 조선족으로 청도에서 상당한 실력을 자랑하는 어깨인데 중심가에서 대형 유흥업소를 경영하고 있단다.
자가용승합차를 소유한, 운전과 가이드를 겸할 조선족 통역인을 구해 달라는 만이 형의 주문에 그 사람이 신경을 써서 우리가 묵을 숙소와 사람을 물색해 놓았다는 것이다.
과연, 과거 한가락 했던 형의 저력이 놀랍다.
4.
청도에서 이틀을 머물며 민박집 주인의 승합차로 주변을 관광했다.
설악산을 빼다 박은 라오산 국립공원, 며칠 전 K*B*S 에 소개되었다는 세계적 규모의 멋진 해수욕장, 해양박물관, 청도 외곽의 신시가지 지역인 黃도등을 돌아보고 오는 이튿날 저녁, 예의 그 주먹이 민박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민박집은 4층으로 1층은 일반식당으로 영업을 하고 나머지 층을 주로 한국인 관광객의 숙소로 제공하고 있었는데 1층방 셋 중, 두 칸을 터서 거창하게 저녁식탁을 차리게 하곤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배가 고플 것 같아 우선 약소하나마 저녁식사를 차리게 했다며 식사 후 본격적인 2차를 가자는 것이다.
정신없이 식사를 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약소한(?) 저녁상에서의 음주량도 상당하고(그러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그 다섯 명의 보디가드들은 보스의 말이 떨어지지 않아 그런지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 그 전율할 규율~~~), 또 2차를 가면 여인이 있을 테고,
통제능력을 스스로 신뢰하지 못하는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윗 층 숙소로 올라와 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날 밤, 웬지 모를 야릇한 흥분에 잠을 못 이루었다.
그런 내 모습이 내 그릇의 한계인 것 같아 몹시도 씁쓸하였다.
5.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태산으로 떠났다.
모두들 엊저녁 술에 떡이 되어 운신도 못할 줄 알았는데 대단한 체력들이다.
청도와 태산은 1:1600만의 중국전도에서 보면 2㎝정도의 짧은 거리로 표기되어 있는데 7시 반에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서 태안시에 도착한 것이 오후 1시 가까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태산으로 올라가는 공원입구에 들어서니 일단의 중국인들이 앞을 가로 막는다.
차로는 못 올라가고 조금만 올라가면 케이블카가 있으니 그걸 타고 올라가야 된다면서 자신들이 안내를 하겠다는 것이다.
차를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각자가 무거운 배낭을 짊어졌다.
‘좋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라고 했으니 오기로라도 올라가보자’
서로 가이드 하겠다는 중국인들을 모두 물리치고 산을 오른다.
‘한 시간만 올라가면 케이블카가 있다는데 안내가 무슨 필요가 있나? 눈으로 보고 즐기면 서 가면되지~~~’
기세 좋게 올라가며 이것, 저것 경치를 감상하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오가는 등산객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추운겨울이라 등산객이 귀하다지만 천하의 태산인데 이건 뭔가 이상하다.
두 시간을 올라가다 마침 하산하는 젊은이 한 그룹을 만났다.
그들을 붙잡고 이것, 저것 물어보니 ‘아뿔사! 우린 완전히 속았다!’
공원 입구에서 케이블카까지는 공원버스가 운행하고 있으며 버스운행이 어려운 산의 6부 능선에서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는데 앞으로 두 시간은 더 가야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뗏놈들, 지들 가이드 비 벌려고 거짓으로 안내를 하고 이리 무거운 배낭을 지고 산길도 아닌 돌계단 길을 네 시간씩 오르게 하다니~~~.쌍욕이 저절로 나온다.
중국말 제대로 못하는 우린 그렇다 치고 민박집사장인 저 조선족 가이드는 무언가?
생긴 건 당차고 약게 생겼는데 그도 이 넓은 대륙에서는 완전 얼빠진 촌놈에 불과하다니.
만주 하르빈에서 젊은 시절 택시를 몰았다는 그의 운전솜씨는 가히 예술이었다.
일찍 한국에 들어와 부부가 10년을 고생하여 작년가을 청도시내에 4층짜리 건물을 짓고 식당 겸 민박집을 경영하는 한편 황도 신시가지에 34평대의 아파트도 장만하여 포스코 직원에게 월세를 주고 있는 그는 코리아드림의 산 표본 이였다.
그의 악착같음과 똑똑함과 부지런함을 높이 사, 중국 보통 노동자의 반 달치 임금에 해당하는 돈을 하루 가이드비로 지출하는데 우리를 이리 실망시키다니---.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그도 꼼짝없이 당하는걸 보니 정신을 단단히 차려야만 이 거대한 블랙홀에서 살아 돌아 갈 것 같다.
6.
20K짜리 배낭을 메고 한발 한발 전진한다.
끝없는 돌계단 길, 그래도 처처에 아름다운 풍광이 보이고 구비 구비마다 도교 사원이 자리잡고 있어 눈은 황홀하다.
쉬엄, 쉬엄 사진도 찍고 사원구경도 하면서 오르는 길,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야 겨우 케이블카 운행 장소에 도착하였다.
가까스로 마지막 승객이 되어 태산 정상에 오른다.
산꼭대기엔 천가라고 멋지게 이름 지은 식당가와 여관촌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사위는 벌써 어둠 컴컴하고 기온은 급강하하여 영하 15도가 넘는다.
서둘러 빈관을 잡으니 벽에 조그만 고물 난방기 하나 달랑 달려있는 꾀 제제한 방을 산 아래보다 서너 배 비싸게 받는다.
소변을 보려고 욕실 문을 여니 변기에 오줌이 가득 차, 꽝꽝 얼어있다.
방의 온도가 영하 5~6도는 될 것 같다.
저녁을 먹으러 빈관 식당으로 갔다.
이것도 바가지의 극치다. 태안시에선 일행 모두가 한상 잘 차려먹고 우리 돈 15000원 정도를 주었는데 이곳에서 그 반도 안되는 초라한 상인데 45000원 정도를 달란다.
종업원들의 모습도 가관이다.
두터운 내복에 두터운 겉옷에 또 발목까지 오는 모자달린 국방색 솜 외투를 껴입고 있다.
머리는 얼마나 감지 않았으면 저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기름때가 자르르 흐르고 볼과 손등은 대부분 발갛게 얼어 있다.
손등엔 때가 까맣게 앉은 사람도 있다.
물을 일일이 산 밑에서 케이블카로 날라야 하는 혹한기엔 깔끔함은 지나친 사치인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추운 방에 앉아 있자니 도저히 못 견디겠다.
다시 식당으로 나아가 식당 한 구석에 설치한 조그마한 석탄난로 옆에 가 앉았다.
손님이 거의 없고 있어도 오후엔 서둘러 하산하는 휴한기라 종업원들이 난롯가에 옹기종기 모여 잡담을 하고 있다.
그들과 한 시간 남짓 필담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니 그 사이에 종업원이 고물 난방기를 켜놓아 지독한 한기는 좀 가신 것 같다.
씻을 물도 없어 양말만 갈아 신고 바지와 오리털 파카를 입은 채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냉기에 머리가 서늘해 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또 그 위에 파카에 달린 모자를 덧씌운다.
7.
지난밤 추위를 느끼면서도 몸이 곤해서인지 그런대로 잠을 잘 잤나보다.
몸의 피로가 풀려 가뿐하다.
내 옆에선 J교감이 자고 있다.
요의를 느껴 배낭에서 내복을 꺼내 입고 후래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 황홀한 밤이다.
주먹만한 별들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반짝이고 있다.
온 하늘에 별들이 꽉 찼다.
이렇게 많은 별들을, 이렇게 큰 별들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정신없이 밤하늘을 쳐다보다가 저 멀리 산 아래를 보니 태안시내의 불빛도 장관이다.
산상의 여관촌 거리인 천가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이런 장관을 혼자보기 아까워 룸메이트인 J형을 깨우러 갔다.
추위에 거의 잠을 못 잣노라는 J형이 비척비척 뒤따라 나온다.
하늘엔 뭇별들이 노래하고 저 멀리 태안시내에선 노란 가로등불이 띠처럼 퍼져 있다.
한없는 감흥에 젖어 있는데 J형은 너무 추워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고 오한이 난다며 들어가자고 한다.
아쉽지만 같이 방으로 들어 왔다.
J형은 추워 못 견디겠노라고 배낭을 뒤져 40도가 넘는 중국술을 혼자 해치우고 술기운에 다시 잠을 청한다.
나는 이불속에 누워 이런 저런 감상에 젖는다.
아마 밖의 기온은 영하 30도쯤 될 것 같고 시각은 4시쯤 된 것 같다.
그래도 산 정상치곤 바람도 별로 안 분다.
8.
아침 7시경 각 방을 돌아다니며 투숙객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일출을 보라는 소리다.
여름철엔 아침마다 일출을 보려 중국 각지에서 몰려 온 수천명의 방문객들로 미어터진다지만 지금은 모두 30~40명 정도밖에 안된다.
전통적인 해맞이 장소로 30분 정도 이동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아~ 장엄한 일출!
모두 숙연한 감상에 젖어 있다.
고요함을 깨고 내가 먼저 <대 - 한 - 민 - 국 - 만 - 세>를 외쳤다.
<희망! 2005년!!>도 외쳤다.
그리고 전능자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2005년도엔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주옵소서’
9.
달리고 달렸다.
무려 9시간을 달려 내려와 남경시내의 국영 빈관에 지친 몸을 뉘일 수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앞으로의 여행일정을 서로 상의 하였다.
이 일대의 유명 문화유적지를 J교감은 한번 다녀갔고 만이 형은 이번 중국여행이 세 번째다.
나머진 다 초행이지만 앞으로 여러 번 올 기회가 있을 테니 문화유적지 탐방은 가급적 삼가고 우리의 강점인 기동력(자가용승합차와 운전기사 겸 조선족 가이드)을 십분 살려 시내 골목, 골목, 이름없는 교외의 마을, 낯선 공원에서 우두커니 서 있어보기. 그리고 공장지대 견학 등을 해 보기로 하였다.
우선 조천궁이라는 명태조 주원장시대의 왕궁을 둘러보곤 혁명 열사비가 있다는 한 공원으로 갔다.
중일전쟁 시 일본군의 30만에 달하는 남경학살 사건은 널리 알려진 만행이지만 국공 내전 시 남경에서 장개석 군대에 의해 10만 남경인이 학살당했다는 이야긴 금시초문이다.
9명의 학생, 노동자, 여인, 노인 등이 결박당한 채 눈을 부릅뜨고 있는 거대한 조각품은 처절하다.
국공 내전 시 무수한 상해노동자들이 학살당했다는 사건은 나도 익히 알고 있었으나 상해와 이웃한 이곳 남경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니 충격적이다.
이념전쟁은 지상 최고의 더러운 전쟁이다.
전쟁에서 무슨 이상과 사랑을 찾으랴만 그래도 이념전쟁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전쟁이다.
이것은 아마 중국전역에서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 중 극히 일부분의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어찌 국민당의 공산당 학살만 있었겠는가?
공산당군의 국민당원과 가족학살도 그에 못지 안았을 터, 6,25사변을 겪은 우리의 아픈 과거가 떠올라 나그네의 마음은 착찹하기 그지없다.
씨 펄, 개도 안 먹을 이념, 그걸 무슨 신비한 보물처럼 끌어안고 풍찬노숙하며 가족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죽어 간 20세기 허리의 그 서러운 세월아,
씨 펄, 그 개도 안 먹을 이념을 반도의 남쪽 땅에서 다시 끄집어내어 좌니, 우니 하며 싸우는 21세기의 내 나라 내 동포야~.
남경은 6조시대의 수도였으며 명초의 수도이기도 하여 주변에 수많은 유적지가 있다.
몇날, 며칠을 보고 봐도 모자를 것 같은 유적지를 주마간산 격으로 흩어 보곤 다음 목적지인 상해로 향했다.
10.
인구 600만명의 남경도 그 발전의 모습이 피부로 느껴졌지만 370KM를 달려 찾아 온 상해의 발전상은 눈이 부셨다.
휘황찬란한 도시와 널찍한 도로, 도도한 황포강의 탁류와 하늘을 찌를 듯 입립한 마천루들.
88층 최신식 빌딩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고 각자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상해지역 조선족 실업인 협회 회장(직함이 맞는지 모르겠다)으로 계신 김 사장님이 마침 우리의 운전기사이자 가이드와 고향친구라 서로 연락을 하니 여러 가지 바쁜 일정에서도 우리를 위해 흔쾌히 하루를 내 주셨다.
중국정부로부터 15년간 10만평의 땅을 임차 받아 상해 교외에 주말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김 사장님은 한국과 중국과의 중개무역에도 손을 대고 계신다.
상해의 어제와 오늘을 보고 싶다는 우리의 뜻에 대 환영을 표하신 김 사장님은 상해의 구석, 구석을 안내해 주시면 사업가적인 안목으로 친절히 설명해 주신다.
세계 500대 기업 중 258개 기업이 상해에 진출했노라고 말씀하시며 자꾸 중국에 잠식당해가고 있는 한국산업의 오늘을 사례를 들어 설명하시면서 동포로서 안타까움을 토로하신다.
호화로운 전통중국음식점에서 근사한 중국식 요리까지 사주신 그 분께 감사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낡고 초라했던 상해 임시정부청사에서 고인 눈물을 감추려 애쓰던 나의 반짝 애국심이 좀 더 성숙되어지길 다짐해 본다.
11.
우리 일행 다섯 중에 리더 만이 형의 큰아들 놈이 있었다.
그 애가 중3이였을 때, 그 때도 그 놈은 지 애비 친구인 우리 일행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던 버릇이 없는 놈 이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공부완 담을 쌓았는데 이번에 군대를 막 제대한 그 애에게 견문이나 넓혀주겠다고 가기 싫다는 놈을 억지로 끌고 왔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군대까지 같다온 놈이 게으르기 그지없고 지 애비 말에 틱틱거리며 예사로 불만을 토하곤 했다.
중국문물엔 별 관심도 없고 젊은이들의 옷차림, 굴러다니는 차량의 종류 뭐 이런 것에 관심을 표한다.
그래도 J교감은 따뜻하게 대해주어 서로 어느 정도 정이통하는 것 같은데 나와는 영 거리가 멀다.
내 마음이 싸늘하니 이심전심 저도 싸늘하다.
그런 자식에게 기대하며 그래도 컴퓨터 무슨 자격을 땃노라고 세 번씩이나 자랑하던 천하의 만이 형이 측은 하였다.
나도 자식을 키우고 있고 내 자식도 뭐하나 잘난 구석이 없는데 내가 왜 이리 편협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대학시절 중국을 읽은 기억이 난다. ‘중국은 여인의 거대한 자궁이다’ 라고~.
실제 지도를 가만 들여다보면 동남부 지역은 여인의 엉덩이에 해당하고 텐샨 산맥으로 둘러싸인 자루모양의 타클라마칸 사막은 여인의 질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면 이윽고 옥문에 다다른다.
실제 그곳의 중국지명도 옥문관이다.
옥문을 열고 들어가면 널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여인의 자궁같은 중원 땅이 넓게 펼쳐진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이던지 포용하고, 무엇이던지 빨아들이고 그리고 생산해 내는 어머니같이 크고 위대한 대륙을 보았을까?
아니면 옥문을 열고 짙게 교합하는 욕망의 땅, 배설의 기쁨 뒤엔 쉬이 열정을 잃어버리는 먼 추억속의 땅을 보았을까?
대륙을 떠나오던 날 밤, 나는 부끄럽게도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예쁜 여인을 가이드 삼아 정처 없이 중국대륙을 돌아다니는 나.
낮이면 대륙의 풍물에 취하고, 밤이면 질탕한 여인의 교태에 취하는 나.
그건 이번 여행에서 전통 맛사지 체험조차 거부했던 나의 위선적인 겉 모습과는 달리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 오르는 욕망의 속 울음소리의 또 다른 표출이였을까?
그리고 어린 청년하나 보듬어주지 못하는 나의 이 편협성은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깨트려야 할 낡은 세월이 점차 명료해 진다.
* 지난 1월 몇명 지우와 어울려 중국을 다녀 왔습니다.
그 이틀 후 기억이 휘발될까바 두어시간 만에 써버린 여행깁니다.
하루, 하루 바쁘게, 정신없이 지나다가 한가해 지면 무슨 대단한 벼슬도 아닌 교감이라는 직책과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만 감당이 되는 그 끝없는 책무를 생각하고 자신을 추스리지만, 한편으론 석양을 보며 서쪽으로 가는 우리네 삶의 여정도 생각해 봅니다.
감추고 사는데 익숙한 우리의 감정을 한번 까발려도 보고싶고 특히 모두 다 알고 있는, 바보같고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을 그냥 열어 보여도 뭐 어떠랴 싶어 이리 주책을 떱니다.
혹여, 제2, 제3의 주책꾼이 나올런지 누가 알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주책스런 모습을 보는 것도 중늙은이들의 사는 재미겠지요. ㅎㅎ
2005. 1.
'설악거사의 여행기 > 다른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어키 여행 (0) | 2009.10.01 |
---|---|
[스크랩] 독도1 (0) | 2009.07.09 |
[스크랩] 울릉도 독도 갔다왔어요!!! (0) | 2009.07.09 |
[스크랩] 1년 세계일주 여행경비 (06년 5월 ~ 07년 5월까지) (0) | 2009.05.14 |
[스크랩] 반구정 ... 황희 정승을 찾아서... (0) | 2008.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