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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코너/교육정보

소박한 꿈

소박한 꿈

 

  몇 주 전에 시작한 TV 드라마 <공부의 신>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주인공으로 나오는 어느 변호사가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학교를 살려보려고 교육계에 만연되어 있는 기존의 관행에 저항하면서 안간 힘을 쓰고 있는 장면일 것이다. 그가 구상하면서 밀어붙이는, ‘천하대학 진학률 상승’ 곧 ‘일류 학교화’라는 등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절망하고 있는 학교에 대해서 가능성을 모색하고 무언가 개혁해 보려고 몸부림치는 결단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 드라마에서 정작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교실 안의 풍경이다. 수업시간인지 쉬는 시간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산만하고 무절제한 광경은 수업시간이면 으레 엄숙한 태도로 임했던 우리들 세대에는 낯설기 그지없다. 교실이 무너졌다는 말을 들었지만 저 정도까지 되었는가 하면서 한숨이 절로 났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한국 교육에 희망을 말하는 것이 사치스럽게 여겨졌다. 교실의 수업풍경이 정말 그런가 하고, 지난 주 교사들에게 특강하는 기회에 선생님들에게 물어봤다. “그렇지는 않아요”라고 하는 대답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광경이 현 교실상황을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측면은 있지만, 크게 틀리지 않다는 대답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는 TV프로그램에서 몰래카메라에 비쳐진 수업광경이 떠올랐다. 그 카메라에 비쳐진 수업광경도 이번 드라마가 전해준 수업광경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배우고 가르치면서 경험했던 그런 수업광경과는 판이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런 광경을 절망적으로 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거기에다 아이들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칠판을 향해 혼자서 떠들고 있는 교사의 수업광경도 비쳐주었다. 심지어는 “이건 학원에서 배웠지” 하면서, 교육을 사교육 시장에 맡겨버린 듯이 자포자기하는 태도로 수업에 임한다는 교사들 소식을 들을 때에는 그 절망감이 더욱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며칠 전 아내가 전해준 이야기는 이런 다소 실망스런 광경과는 다른 것이었다. 아내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서 손녀의 초등학교 졸업반 어느 모임에 참석했다. 졸업을 앞두고 부모들이 자녀를 축복하고 아이들이 장래의 꿈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아들 내외가 딸에게 쓴 축복의 말 가운데는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사실적으로 생생한 그림과 조형물을 척척 만들어내는 **이를 통해 더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질 줄을 믿고 감사하며 축복한다”고 했다. 손녀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기 꿈은 무얼 만들어 돈을 벌고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했단다. 손재주가 남다른 손녀는 음식도 곧잘 만들어 귀여움을 받고 있다.

  그 학교의 모임에서는 다른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는 거창한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단다. 자기 아이의 적성을 격려하면서 충실히 자라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는 정도였단다. 아내가 정작 놀랍게 생각한 것은 그 아이들 대부분이 장차 자기 혼자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그마한 힘으로 남을 돕고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뜻을 표명하더라는 것이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어느 어머님은 역시 음악으로 축복했고, 그 딸애는 부모의 그 뜻에 화답이라도 하듯 자기도 음악을 잘 연마하여 불우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했단다. 아이가 그런 말을 할 때, 그 자리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에는 젖어드는 감격의 눈물이 있었다. 그걸 훔쳐 본 아내는 여러 사람들의 그 붉어진 눈시울에서 희망의 싹을 보았다고 했다.

  그렇다. 한국의 교육이 엉망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졸업반 아이들이 자기의 자그마한 재능을 키워서 남을 돕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교육한 그 학교의 6년간의 교육은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그 교육은 분명히 <공부의 신> 드라마에서 ‘천하대학’ 진학을 목표로 특별반을 만드는, 그리하여 혼자 일류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에 뛰어들고 어릴 때부터 폐쇄적인 자기 성을 쌓아야 하는 그런 교육은 아니었다. 자기의 적성을 살려 자그마한 힘이지만 남을 돕고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그런 개방적인 생각을 졸업할 때에 갖게 한 그 학교의 교육은 분명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인재들을 키워갈 것으로 믿는다. 거기에 우리 교육의 희망이 있다. 거기에 성숙한 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과 토대가 있다.

 

글쓴이 /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연세대 석좌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