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사 월간조선부 강인선(36) 기자는 서울대 외교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0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탁월한 영어 실력을 가진 그녀는 월간조선 기자로서 외국인들, 특히 외국 국가원수들과 단독 인터뷰도 문제 없이
해냈다. 또 월간조선이 부록으로 발행한 영어 테이프에 직접 해설을 맡기도 했을 정도로 영어에는 ‘일가견’을 가진
것으로 자타가 인정했다. 그런 그녀가 지난 1999년 7월부터 지금까지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공부하면서
겪은 체험담에는 한국에서 내로라 하는 ‘영어 도사’가 미국 현지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나타나 있다.
(편집자주)
어렸을 때 외국에 살았던 경험은 없으니 필자의 영어는 전형적인 한국식 영어 교육의 산물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철저하게
입시 위주의 영어 공부를 했고, 회화를 따로 배워본 적은 없다. 대학교 2학년 때 영국에 여름학기 과정을 들으러 갔다가
두 달 동안 벙어리와 귀머거리 노릇을 한 후 한국에 돌아와 독한 마음을 먹고 각종 영어학원을 전전했다. 2년 동안 승용차
몇대 값을 날린 후 겨우 잡담 수준의 영어를 익힐 수 있었다.
AFKN 뉴스와 드라마로 그나마 귀가 뚫렸고, 다행히 대학 시절 교재가 모두 영어책이었던 덕에 영어책을 읽는 데 큰 부담은
없었다. 이 영어 실력으로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쓴 적도 있고 외국 국가원수들을 인터뷰하고 다녔으니, 이 정도면 한국에서는
'영어를 좀 한다'는 수준에 속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한국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이 누더기 영어 실력으로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할 때 얼마나 고생을 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 부실한 영어는 언제 어디서 어떤 실수가 나올지 알 수 없는 기본이 안된 영어였다. 'she' 대신 'he'가 튀어나오고, 3인칭
단수 동사 뒤에나 붙는 s가 엉뚱한 자리에 따라붙는가 하면, 시제가 틀리는 것은 다반사였다. 조동사의 미묘한 어감 차이는
언제나 자신이 없었다. 너무나 간단한 말을 못 알아듣는 실수는 한 두 번이 아니었고, 제대로 된 글쓰기는 한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그래도 미국에서 한 두 달만 지내면 문법책 안에서만 힘을 발하던 죽은 영어가 생명력을 얻고, 조각조각 얻어들은
영어가 하나로 연결되어 '현란한 영어'가 꽃피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고 미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 기대는 그야말로
헛되고 헛된 것이어서 미국생활 초기의 스트레스는 대부분 영어에서 왔다.
미국에 온 지 두 달 후에도 영어 실력에는 뚜렷한 진전이 없었다. 한국식 영어 실력만 가지고 미국 땅을 밟는 많은 한국인들
이 그렇듯 나 역시 과묵한 한국인이 되어 갔다. 영어는 늘지 않고 눈치만 늘어서, 말하지 않고도 적당히 살아가는 법을 먼저
익혔다.
■눈에는 익숙해도 입에는 낯선 단어들
단순히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복병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한국식 영어의 허점과 오류는 시도때도
없이 튀어 나왔다. 경제학 배치 고사를 볼 때는 문제는 이해했지만 알고 있는 경제학 지식을 영어로 표현할 길이 없어서
거의 빈 답안지를 제출했다. 수학시간에 답을 말하려고 손을 들었는데, '괄호 열고' '제곱' '로그' '반올림' 따위가 마구 들어
가는 긴 공식을 영어로 설명하지 못해 무안을 당한 일도 있다.
협상 실습을 마치고 평가하는 자리에서 나의 상대였던 미국 학생이 “내가 이러저러한 협상전략을 폈더니 상대가 점점 밀려서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마무리지었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을 지켜보며 '네가 협상을 잘해서가 아니라 내가 영어를 못해서'
라고 지적해주고 싶어 속이 터졌다. 대여섯 명이 한 팀이 되어 프로젝트를 하면 나는 사실상 무임승차했다.
변호사와 컨설턴트 출신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는 마당에 내 영어 실력으로 기여할 여지가 없었다. ·
막상 토론에 뛰어들어 보면 또 다른 문제와 부딪혔다.
프라이버타이제이션(Privatization·민영화), 컨트랙셔너·리 피스컬 폴리시(Contractionary fiscal policy·긴축재정정책),
유틸리테리어니즘(Utilitarianism·공리주의) 등의 단어들은 눈에는 익숙해도 입에는 낯설어서 말할 때마다 다른 발음이 나와
당황했고 일단 당황하고 나면 자연스러운 말의 흐름을 잃어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도 잊곤 했다.
그뿐인가. 수업시간에 교수가 농담을 해서 학생들이 모두 책상을 두드리며 폭소를 터뜨리는 순간 왜 웃는지를 몰라 씁쓸했던,
그래서 죽도록 외로웠던 순간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늘 '내가 이 나이에 왜 이 멀리까지 와서
돈 들여가며 이 짓을 해야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내용을 몰라서라면 바보 취급을 받아도 할 수 없지만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라고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했다.
말하고 듣는 것은 글쓰기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글쓰기는 말하기에 비해 열 배, 스무 배 더 어려웠다. 여름 학기에
낸 첫 보고서를 읽고 영어교수가 써준 평가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로 시작해서 문법상의 오류와 영어답지 않은 표현들을 조목조목 지적한 평가서를 읽는 동안 충격을 받아서
시멘트 바닥이 물결치는 것처럼 보였다. 평생 영어로 글 한번 써본 적 없는 주제에 그 글을 보고 교수가 '네 영어가 완벽해서
참 재미있게 읽었다'고 할 리는 없지 않은가라고 위로했지만, 그래도 사흘 동안 기분이 나빠서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명색이 10년 동안 글써서 먹고 살아온 기자인데, 200자 원고지 스무장도 안되는 보고서 한 편을 쓰기 위해 이틀씩 밤을 새는
것은 예사였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아니라 피를 짜서 글을 쓰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공을 들여 써도 나중에 돌려받은
보고서에는 내가 쓴 글보다 더 많은 새빨간 글씨가 뒤덮여 있었다. 교수는 문법도 고치고 내용도 고치고, 그것도 모자라 뒤에
장문의 편지를 써주곤 했다. 내용은 좋은데 영어가 매끄럽지 않으니 영어로 글쓰기 연습을 더하라는 위로였다.
영어 때문에 이렇게 고전하는 것을 알 리 없는 미국 친구들은 "한국 일본 태국 사람들은 영어에 관한 한 구제 불능"이라는
소리를 해서 나의 속을 뒤집었다. 홍콩 친구는 "우리 강의실에는 섬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코리아 타운, 또 하나는 저팬 타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몰려 앉아 자기네 말로 떠들고, 다른 학생들과는 이야기도 안하고, 수업시간에 손들고 발표하는 일은
거의 없다. 도대체 왜 미국에 와서 학교를 다니는 거지?"라고 의아해 했다. 특별히 성격이 이상해서도 아니고, 무식해서도
아니고, 단지 영어로 말하는 데 익숙지 않을 뿐이라는 설명을 반복해도 미국인들에게는 이 딱딱한 표정의 과묵한 아시아인들
이 부담스럽게 비치는 모양이었다.
미국에 온 지 1년반이 된 지금은 초기의 영어 스트레스에서 많이 해방되었다. 영어가 늘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러워졌다.
수업시간에 갑자기 지적을 당해도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수업 준비를 안 해가도 슬쩍 끼어들어 면피용 발언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영어로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예전처럼 피를 짜는 기분은 아니다. 그래도 어릴 때 배운 영어가 아니라서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는 늘 느낀다. 가장 기본적인 표현, 너무 당연하게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 그래서 여전히 나의 영어는
부실한 채로 남아 있다.
영어를 미국인 수준으로 하지 못해도 미국에서 학교를 졸업할 수 있고, 학위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워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더라면 모든 게 달랐을 것이다. 나의 영어는 수신 능력이 떨어지는 질 나쁜 라디오
였다. 수십개의 방송국에서 다양하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내보내도 내 라디오는 대여섯 개의 방송을 겨우 잡아낼 만한 능력
밖에 없었다. 똑같은 비용과 시간, 노력을 투자하고도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조금 밖에
건지지 못했다.
■특정 언어 아닌 세계 공용어
영어는 세계어다. 특정 국가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 공용의 의사 소통 수단이다.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뛰어난 재능도 환전이 안되는 화폐 신세가 된다. 돈이 많아도 외국에 나가 환전이 안되면 그 지폐는 국경을 넘는 순간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남들은 신용카드를 쓰는데 환전도 안되는 지폐를 들고 나가 어디서 국제 경쟁력을 발휘하겠는가. 경쟁은
커녕 마음고생만 하게 되어 있다.
싱가포르인들이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에 비하여 탁월한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교에서 아시아를 대변
하여 미국인들과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것은 싱가포르인들 뿐이었다. 영어 공용어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주체성 상실에 대한
우려가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싱가포르인들을 보면 그것도 기우라는 생각이 든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아예 이름까지 피터와
데이비드로 바꾸고 영어를 공용어로 써도 속속들이 싱가포르인이다. 오히려 더 지독하게 아시아의 논리를 주장하여 미국인
들을 설득하려 든다. 영어를 인간의 사고까지 지배하는 언어로 보지 않고, 유용한 의사 소통 수단으로 보는 실리적인 접근
방식을 택한 결과다.
지난 여름 보스턴의 로건 공항에 나가보면, 한국발 비행기가 도착할 때마다 수십명의 한국 초등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떠나 15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것을 보면서 지금은 영어
공용화나 조기 교육에 관한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라 더 쉽고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영어 교육 방식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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