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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양식/좋은 글과 詩

벚꽃 그늘 아래서/오세환

 

 

벚꽃 그늘 아래서

                   

달이 환한

사월의 밤은

자욱한 꽃그늘이기에

만사를 잊습니다

한겨울 초승달 같이

날선 조선낫으로

시퍼런 수풀을 헤쳐오던 일들도

여기에 앉아서 까맣게 잊습니다

잠시잠깐

다녀가는 유정한 꽃그늘이기에

마냥

꿈결로 취(醉)하고 싶습니다

몸끝 스쳐가는 사연 많은

인연마다

꽃 핀 얼굴 가득이

길을 메우며 그늘을 지웁니다

사랑할 시간도 모자라는

순간의 길 위에서

꽃들은 속가슴에 별로 남아

봄날의 아름다운 낙관을 찍어 놓습니다

모래톱 맑은 물살로 씻어주듯

속절없이 피고 지는 현세(現世)의 생(生)도

꽃비 분분히 내리는 날

고운 꽃잎이 되길 소원 합니다.

09-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