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의 꽃, 수원화성 따라걷기
二, 방화수류정~동암문
역대의 걸작, 수원화성을 걸어 봅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인류문화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임과 동시에
전세계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임을 세계인이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의 것, 조상들의 슬기가 그대로 담긴 성(城),
그 길을 지금부터 천천히 따라 걸어봅니다.
동북각루(방화수류정)
위민정책을 펴며 축성된 화성,
그러면 화성은 왜 만들어졌을까? 라는 의문점이 들게 된다. 즉 수도부 한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하나의 수도를 만들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데 의문을 갖게 되는데, 그 이면에는 정조의 왕권 확립에 있었다.
1789년, 수원 객사앞에 모인 주민들은 나라에서 전하는 말을 듣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지금 머무는 그 자리에 화성을 축조하게 되니 현재의 집값과 이사비용을 나라에서 지불하기로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 1789년 9월, 수원에는 관청건물이 들어서고 정조가 와서 머물수 있는 행궁이 세워지니 그것이 화성행궁이다.
수원부의 개발에 겉으로 내세운 것은 정조의 아버지, 즉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의 묘를 조선 최고의 명당인 수원부 화산으로 옮기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무덤의 이름도 현륭원(顯隆園)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신도시의 건설은 단순한 이장이라는 목적만이 아니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던 때, 왕권보다는 신권에 비해 많이 약해있던 터다. 왕권 강화책의 하나로 신도시 화성을 계획하게 된것이다. 이미 한양의 지지기반을 잡고 있는 신권에 대항할수 있는 새로운 세력의 거점지로 수원부를 점찍은 것이다.
교통의 요지이며, 상업에 활기를 띠는 도시, 한양으로 오가는 중요한 길목에 자리한 요지가 되는 것이다. 화성의 기능이야 지금의 현재로 보아도 무방하다. 경부선과 호남선이 거쳐가는 길목이며, 경기도의 행정 중심지역이자 경제 중심지역이 되었고, 1990년대에는 전자산업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튼,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의도된 화성의 축성은 그렇게 시작이 된것이다. 주산으로 팔달산을 두고 관청을 배치하였으며 도로는 남북으로 놓이는데 이는 한양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방향을 중시한데 따른 것이다. 1790년, 새로운 도시의 세대수가 700여호가 넘어서자, 정조는 화성을 유수부로 승격시켰으며, 국왕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을 배속 시킨 후, 1794년부터 화성의 성곽 축조에 착수하게 된것이다.
이렇듯 화성 축성은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한, 강력한 왕권 확립을 위한 정조의 치밀한 계획하에 세워진 신도시다.
북수문인 화홍문을 지나 동북각루로 향하는 길,
꽃을 쫒고 버드나무를 따르는 아름다운 정자라는 이름의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이름 그대로 화성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화홍문의 성곽을 따르기 보다. 화홍문 아래의 중앙 석교를 지나 용연을 향하는 길이 운치있다. 초록의 향연과 물빛의 그림자가 함께 어울리고 그 위로 각루가 선 모습은 많은 사진가들로부터도 찬사를 받은 사진 포인트이기도 하다. 밝은 향연의 모습도 좋지만 야간의 조명과 어울린 방화수류정의 표정은 그 보다 더 아름다울수 있다. 성곽의 가장 높은 자리에 세워진 각루들은 주변을 감시 하는 기능도 갖고 있지만, 때로는 휴식을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총 4개의 각루가 화성에 자리하는데 동북각루가 단연 가장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1797년 정조가 화성행차때에는 이곳에서 활쏘기를 하였으며, 신하들에게는 술과 고기를 내어 화성축성의 노고를 치하하던 자리이기도 하다.
방화수류정을 한바퀴 빙 돌아보면 맞닿는 성벽의 사이로 암문이 하나 자리하니 북암문이다. 암문을 지나 선과에 오르면 동북각루의 앞에 닿는다. 동북각루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또 다른 풍광이다. 가까이로는 용연과 어우러진 작은 섬의 경치가 있다면, 멀리는 빌딩숲의 현재를 알리는 수원의 시가지가 눈에 든다. 루에 올라 잠시의 쉼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동북포루와 동암문을 향해 걷는다. 내내 시선은 방화수류정의 먼발치에 가 있다. 그 만큼 멋진 풍광이다. 다시 고개 돌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종암문에 선다. 깊숙히 박힌 출입구, 서늘한 그늘과 만난 문루의 시원함은 어디에 비하지 못한다. 옛 장인들의 손길이 만들어 낸 모습과 성 밖의 시내와의 묘한 어울림은 도 하나의 화성여행의 볼거리가 된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
화홍문의 동편 언덕에 자리한 각루로 화성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경관과 가장 잘 어울리면서 외성의 용연과 어울린 경관은 화성의 백미로 많은 사진가들의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가장 아름다운 만큼 공사비도 많이 들었는데, 다른 각루에 비해 10배의 공사비가 들자 담당자가 정조에게 불려가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동북각루(東北角樓)
화성내 4개의 각루중 하나로 아름다운 경관이 어우러진 곳으로 홧성내에서 가장 풍경이 뛰어난 곳이다.
꽃을 쫒고 버드나무를 따르는 아름다운 정자라 하여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팔짝지붕의 꺽이고 펼쳐지는 것이 여러겹으로 이루어진 양식으로 다른건물에서는 찿아보기 힘든 건축미를 자랑한다. 1794년 10월 19일에 완공했다.
동북각루에서 본 연지 전경
동북포루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
동북포루(東北포樓)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위에 세워진 목조건물로 초소나 군사의 대기장소와 같은 곳이다.
동북포루는 정조20년(1796년) 5월 15일에 완공되었다. 동북포루의 지세가 주변보다 높아 동암누과 동장대, 북암문과 동북각루까지 엄호할수 있었으며, 선비들이 쓰는 모자와 모양이 같다하여 각건대(角巾臺)라 한다.
동암문(東暗門)
화성내 5개의 암문중 하나다.
암문이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자리하여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만들었으며, 사람과 가축, 그리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하여 설치된 문이다. 동암문은 문 위에 벽돌을 깔고 오성지(五星池)와 커다란 둥근 담장을 설치했다. 정조20년(1796년) 3월 25일 완공 되었다.
동암문과 수원시내
by 박수동
www.gils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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