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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고/아들소식

박영훈 교수 이야기

학생들 만족도 늘 체크, 내 수업엔 낙오자가 없다” 힘이 되는 글

2011/01/28 04:07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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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코넬대 MBA에서 ‘최우수 강의상’ 받은 박영훈 교수 

5월 24일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 코넬대 경영대학원, ‘존슨 스쿨’ 졸업식. 졸업생과 가족, 친지 등 2200여 명의 참석자 앞으로 졸업생 대표 델러노 포드가 나왔다. 
“매년 졸업생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교수 한 분을 뽑습니다. 올해 ‘최우수 강의상’ 수상자는….” 

졸업생 320여 명의 투표로 120여 명의 교수진 가운데 한 명만 받게 되는 최고의 영예다. 청중의 박수 속에 한 동양인 교수가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박영훈(40). 마케팅 분야가 전공인 박 교수는 올해 테뉴어(정년 보장) 교수가 되는 감격도 맛봤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난 지 13년 만에 두 개의 ‘별’을 딴 것이다. 

‘영어 스트레스’에 치이며 살아온 기자에게는 표현력과 청취력은 기본이고, 순발력까지 필요한 강의에서 토종 한국인이 1등을 했다는 게 신기했다. 박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원래 영어를 잘하는 편인가 봐요. 
“아닙니다. 유학에 필요한 TOFEL·GMAT 성적은 받아 놓았지만, 처음에 와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강의 절반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어요. 토론할 때 말할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기도 했고요. 망가지고, 부닥치고, ‘1년 뒤도 이러면 어쩌나’ 불안해하고…. 하지만 이런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영어를) 배울 수가 없어요. 입 다물고 있으면 중간은 가지만, 절대 발전하지 못합니다.” 

  
  
-원어민도 아닌 교수가 ‘최우수 강의상’을 받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그런 점에서 저 역시 분에 넘치는 상이라고 봅니다. 포장(영어)이 좋으면 학생들에게 더 나은 강의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아쉬움이 들어요. 그래서 요즘도 열심히 영어 연습을 합니다.” 

-영어 연습이라면? 
“발음 클리닉에 다니고 있어요. 그렇지만 나이 들어 미국에 온 사람이 네이티브 스피커의 발음 구조로 바뀔 수는 없지요. 문제는 리스닝이나 스피킹이 아니라 생각을 주고받는 커뮤니케이션인 것 같아요. 교수나 학생들이 제게 바라는 건 유창한 영어가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와 콘텐트이기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 교수와 인터뷰하기 전 살펴본 존슨 스쿨 홈페이지에는 그에 대한 졸업생들의 평가가 올라와 있었다. “내가 경험한 가장 열정적인 교수다.” “강단뿐 아니라 교실 밖에서도 멘토 역할을 했다.” “그의 에너지와 유머 감각은 모든 수업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강의 방법에 어떤 비결이 숨어 있는 걸까. 

“비결이오? 없습니다. 들으면 잊어버리고, 보면 기억한다. (I hear, I forget. I see, I remember.) 직접 해보면 이해할 수 있고, 즐기면 응용하게 된다. (I do, I understand. I enjoy, I apply.) 이 원칙을 지킬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얼마나 즐겁게 강의에 참여하도록 하느냐, 제가 가르치는 내용이 기업 현장에 적용될 수 있느냐, 학생들이 일자리를 얻고 경쟁력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느냐’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절대 타협을 안 합니다. 딱딱하고 어려운 계량 분석 대신 소비자 심리를 가르치면 학생들도 좋아하고저도 편해요. 하지만 한 학기가 끝나고 제가 듣고 싶은 말은 ‘강의를 들어서 좋았다’가 아니라 ‘강의를 들어서 활용할 자료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개강 때 수요 파악부터 한다. 학생들의 개인 소개와 희망 진출 분야 등을 꼼꼼히 체크한다. 

“학생들 관심사가 매년 달라집니다. 어떤 해는 제약 등 특정 산업에 관심을 갖는 학생이 많다가 다음 해는 컨설턴트가 되길 원하는 학생이 많아져요. 그런 수요를 알아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학기 말에 공식적인 강의 평가가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강의 반응도 조사를 4, 5차례 정도 해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꿔 볼 테니 무슨 지적이라도 해달라’고 합니다.” 

실제 수업 방식이 바뀌기도 한다. 통계 프로그램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법을 직접 시연하자 한 학생이 문제를 제기했다. “교수가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학생들에게 시켜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교수의 속도가 아니라 학생의 속도로 배우고 싶다는 얘기였다. 박 교수는 이 제의를 즉각 반영했다. 그는 철두철미 토론식 교육의 힘을 믿는다. 

“학생들 사이에 토론을 붙입니다. 예를 들어 ‘신제품 가격을 어떻게 정하는 게 좋겠느냐. 경쟁사 제품과 동일한 가격으로 하느냐, 낮게 잡느냐, 높게 잡느냐’를 묻지요. 실제 기업에서 벌어지는 고민을 미리 해보게 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논리적으로, 충분한 논거를 제시하느냐’이지요. 비즈니스엔 정답이 없으니까요. 교수는 토론 방향을 조절하고 양념을 치면서 체계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돕습니다. 그러다 보면 학생들에게 사고의 채널이 하나씩 뚫리게 됩니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의 초보적인 아이디어가 전체 이론 체계에서 어디에 속하는지를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흥미와 자신감을 갖게 되지요.” 

토론식 교육은 개개인이 지닌 잠재 능력을 실현시켜 낙오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교수가 인내하고 노력하는 만큼 학생들의 학습 만족도는 높아진다. 강의에 게스트 스피커로 초청하면 미국 전역에서 6, 7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제자들이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 그에게 코넬대의 강의 평가 방식을 물었다. 

“5점 만점에 4.7이니, 4.6이니 하는 강의 평가 점수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학생들의 육성을 들어야 해요. 존슨 스쿨에는 강의 담당 부학장이 따로 있습니다. 학생들을 5~6명씩 계속 만나고 식사도 하면서 교수들의 강의에 관해 묻습니다. 강의의 질도 문제지만, 수업 내용이 교수 간에 겹치지 않는지 파악하지요. 그 내용을 교수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해 줍니다.” 

-지적을 들으면 오싹하겠네요. 
“하지만 교수 자신을 위해 알아야 합니다. MBA는 선택 과목이 대부분인데요, 자기 강의를 듣는 학생이 없으면 교수도 버티기 힘들어요. 그런 피드백이 올 때 더 노력해야 합니다.” 
교수에게 지적인 싸움을 걸어 이겨 보겠다는 학생도 적지 않다. 그들을 압도할 만한 실력과 강의 내용에 대한 권위가 없으면 설 자리가 사라진다. 

-그래도 일단 테뉴어 교수가 되면 달라지지 않나요? 
“테뉴어가 되더라도 ‘크루즈 컨트롤’(차가 같은 속도로 주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 안 되게 돼 있어요. 연구와 강의를 게을리하면 연구비가 줄고, 월급이 줄어요. 교수 채용에 참여할 권한도 없어지죠. 의사가 실력 없으면 환자를 죽인다고 하지요. 교수가 더 성장할 잠재력 있는 학생을 못 크게 하면 그것도 큰 죄 아닐까요?” 

박 교수는 방학인 요즘도 아침 9시에 출근해 저녁 식사 전까지 연구실에서 생활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집에 가서도 컴퓨터 앞에 앉을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유학을 떠나려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없는지 물었다. 

“자신이 가진 꿈의 크기만큼 집요하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유학 온 지 1년쯤 되면 영어가 잘 안 돼도 편안해지는 분을 많이 봅니다. 상대방이 ‘네가 할 수 있는 게 그 정도구나’ 하고 포기를 하는 것인데, 그걸 모르는 거죠. 일단 편안해지면 애초만큼 투지나 깊이가 안 나와요.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게 달려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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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훈 교수는 

전남 장흥에서 작은 지물포 가게를 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광주 인성고를 거쳐 서강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풍족하지 않은 여건 속에서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다녔다. 새벽 2~3시까지 술을 마셔도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공부벌레’였다. 

영화 동아리(서강 영화 공동체) 활동도 열심히 했다. 영화 관객들이 보이는 반응에 대한 관심이 마케팅 쪽으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동아리 선배인 CJ엔터테인먼트 조장래 부장은 “영화든, 공부든 자신이 관심을 가진 분야는 진지한 자세로 끝까지 파고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한다. 

대학 졸업 후 KAIST 석사 과정을 거쳐 1995년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세계 최고의 MBA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아침 7시에 학교에 가서 새벽 2시까지 의자에서 일어서지 않는, 부단한 노력으로 영어의 벽을 뛰어넘었다. 

그는 2001년 박사학위를 받는 것과 동시에 코넬대 존슨 스쿨 교수로 임용됐다. 존슨 스쿨은 미국 MBA 순위에서 10위권을 오르내린다. 세계 최대의 곡물 회사 카길의 워런 스탤리 회장, 맥스웰 하우스 커피로 유명한 미국 식품업체 크래프트 푸드의 아이린 로젠펠드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과 이호진 태광산업 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사장 등이 이곳 출신이다. 

박 교수는 2005년과 2006년 존슨 스쿨에서 선정한 ‘우수 연구상’을 받았다. 올해는 인터넷 경매를 주제로 한 논문이 미국 마케팅학회 ‘최우수 논문’ 최종 심사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