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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 Lee Daniels' The Butler , 2013 제작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19. 2. 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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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일하던 세실 게인즈(포레스트 휘태커)는 손님을 응대하던 성실하고 진실된 모습이 백악관 관료의 눈에 띄어 꿈에도 생각지 못한 백악관에 들어가게 된다.
1952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34년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8명의 대통령을 수행한 세실 게인즈. 흑인 꼬마에서 최고의 버틀러가 된 그를 통해 지금껏 아무도 몰랐던 백악관 사람들의 감동 실화가 펼쳐진다. 케네디, 닉슨, 레이건 등 8명의 대통령들의 마음을 움직인 그가 올 가을,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다음은

http://cafe.daum.net/475people/AyYp/1135?q=%EC%98%81%ED%99%94%20%EB%B2%84%ED%8B%80%EB%9F%AC 에 실린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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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영화는 흑인 전체 역사와 흑인 의식의 성숙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흑인이 백인 못지않게 지적인 수준과 인간다움에 관한 의식, 그리고 권리를 쟁취하기까지를 보여주는 굴곡진 역사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버틀러"라는 제목에서부터 살펴보면 이 영화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사전은 버틀러 즉 집사란 주인 가까이 있으면서 그 집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집사란 자신의 집안이 아닌 남의 집안을 돌보는 사람이다. 자잘한 청소와 요리부터 시작해 건물 관리, 각종 물건을 사들이거나 인테리어를 하는 일까지 모두 집사의 손에서 이루어지니 주인의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주인이 아니되 주인처럼 일해야 하는 사람이 집사인 것이다. 따라서 집사는 주인의 생각을 잘 읽어야 한다.

 

주인의 지적 수준에 혹은 취향에 맞추어야 하며, 예술적 안목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주인의 집안 내력을 숙지하고 있어야 할뿐더러 집안 물건의 역사와 조상의 역사 또한 꿰고 있어야 한다. 즉 집사란 주인의 의식에 동화하되 주인이 아닌 하인이라는 의식이 확고해야 한다. 주인과 동일한 수준을 갖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도록 마음을 쓰되 사람들 앞에 나서면 안 되는, 어둠 속의 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집사의 역할은 나이되 내가 아닌 존재와 같다. 나라는 주체적 의식을 온전히 삭제하고 주인의 의식에 맞추되 나는 주인을 위한 존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즉 자발적 노예이다.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는 화이트 하우스에서 34년간 집사 역할을 한 한 흑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흑인 감독이 흑인 배우를 기용해 흑인 역사를 응축해 담은 이 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그들의 의식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억압받던 그들의 의식이 깨어나 현재의 성숙한 의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인물들, 특히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이러한 의식 성장과정은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까지의 성장에 비유할 만하다.

 

아이는 주체적인 생각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이의 생각은 아직 미숙해 자기라는 개념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도중에 있다. 따라서 아이는 주위 어른들, 특히 자신을 키우는 부모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던 아이가 사춘기에 도달하면 자신의 독자적 가치관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체험을 통해 자아개념을 형성해가는 것으로, 자아는 청년기에 이르러 뚜렷해지고 이어 성인 초기까지 확실히 굳어지게 된다.

 

자신의 독특한 자아개념을 형성하는 것으로 사회에 내보이는 인격은 페르소나 그렇지 못한 것은 그림자로 갈라진다. 즉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합당한 것은 페르소나로 정착되고 나만의 비밀 혹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은 그림자로 나뉘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의식적 자기와 무의식적 자기가 된다.

 

페르소나가 강화됨에 따라 그림자 또한 강화된다. 따라서 나 자신의 인격 내에서 표면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과 억눌러야 하는 것들 사이의 불균형이 심각해진다. 이 불균형은 때로는 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업에서의 실패나 가까운 이의 죽음 등을 맞이해 격렬하게 나타난다. 예술적 성향이 강하지만 살아오느라 억눌렀던 사람이 중년에 이르러 회사를 그만두고 화가로 변신하거나 다른 면모를 내보이는 일이 이 경우에 속한다. 즉 그림자가 표면에 나서는 것으로, 이는 심각한 불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것이 융이 이야기하는 개성화 과정이다. 개성화 과정은 평생에 걸친 의식성숙과정으로  달리 말해 자기 실현, 자기 완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의식적 자기와 무의식적 자기를 통합하는 작업으로, 살아오면서 획득한 면모와 감추어두었던 면모가 부딪쳐 충돌을 일으키고 마침내는 통합되어 온전한 자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따라서 개성화는 성숙한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 된다. 이는 또한 성숙한 의식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의 흑인들의 역사는 노예제로 시작한다. 노예제는 한 인간으로서의 인격을 말살하는 것으로 백인은 흑인을 가축으로 여기면서 흑인이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인간다움, 흑인성(blackness)을 거부한다. 백인은 흑인에게 폭력으로 열등의식을 강요한다. 즉 백인은 흑인을 세뇌, 자신들의 생각에 동화시킨 것으로, 흑인은 노예제 이후 줄곧 자신들이 열등하다는 의식을 갖고 살아왔다. 이것은 곧 자신의 인종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이어진다.

 

물론 흑인들이 자신들의 동물성에 전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노예제에 대해 저항하고 자신들을 교육해 무지의 상태에서 깨어난 인간의 상태로 올라서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들이 모여 흑인성에 대한 자부심을 논하게 된다. 이것이 1920/30년의 할렘 르네상스 시대로, 이 시대 흑인예술가들은 그들의 전통과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내보인다. 재즈, 블루스, 기타 흑인을 다룬 문학 및 예술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이처럼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는 뜻에서 이 시대 흑인들은 새로운 흑인(뉴 니그로)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 시대의 노력은 일부 지식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으로 보통 사람들은 이들에게 호응하지 않는다. 즉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흑인이 부끄러운 인종이라고 느끼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1960년대에 이르러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말콤 엑스(Malcom X)등을 비롯한 인권운동가를 중심으로 흑인성에 대한 자부심을 논하는 흑인 권리 운동, 흑인 예술 운동 등이 일어난다. 이 운동은 곧 정치사회면을 비롯해 예술로 급속히 번져가며 거의 모든 흑인들과 많은 백인들이 참여하게 된다.

 

흑인도 백인과 다름없는 인간임을 주장하는 이 운동의 중요성은 할렘 르네상스와는 달리 평범한 사람들이 주역이었다는 데 있다. 이 운동의 시발점은 한 청소부 여인, 로자 파크스(Rosa Parks)가 버스에서 백인 전용석에 앉은 일에서 촉발된다. 63년에서 시작 65년까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진 이 운동은 이어 여러 가지 움직임을 가져온다. 이때 이르러 비로소 흑인들은 적어도 법적으로 백인과 평등해졌다고 볼 수 있다. 투표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 이르러 흑인들은 성숙한 흑인의식을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최소한 백인과 흑인에 대한 법적 차별은 거의 없을 정도이고 지금 흑인 차별은 개인적인 인권 문제로 치부될 정도로 많이 좋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