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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의 모든계절4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19. 2. 3. 23:25


‘세상의 모든 계절’은 제목과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큰 배급사를 가진 블록버스터급 영화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인지도 있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도 아니어서 대구에서는 3월 개봉 당시 볼 수 없었는데, 동성아트홀에서 5월 5일부터 5월 18일까지 상영한다고 해서 부리나케 찾아가보았다. 동성아트홀은 대구에서 학교를 다닌 4년 동안 처음 가봤는데 다른 멀티플렉스 상영관처럼 크고 화려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옛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포스터나 제목을 봤을 때 따뜻한 가족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나니 따뜻함보다는 쓸쓸함이 더 느껴지는 영화였다.

 


  톰은 지질학자이며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요리를 즐기며 가정에도 충실한, 그야말로 ‘모범적인’ 가장이다. 그의 아내 제리 또한 심리상담사로 일하며 온화하고 포용력 있는 성품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조는 인권변호사로 일하며 주말에는 가끔씩 부모님의 주말농장의 일도 거드는, 보기 드문 청년이다. 이렇게 처음에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으나,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톰과 제리 부부의 주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가며 행복한 톰과 제리와 그들과는 반대로 불행하고 고독한 주변사람들을 대비시켰다. 제리의 20년 지기 직장동료 메리는 이혼 후 쓸쓸한 인생을 살고 있고, 가끔 그들 부부를 찾아가는 것이 삶의 낙이다. 메리는 그들과 20년이나 알고 지냈고 아주 가까운 사이이지만, 그들의 가족은 아니다. 행복한 그들과 함께 할수록 자신의 고독과 불행이 극명히 나타난다. 톰과 제리는 메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메리와 친밀하게 지내지만, 그들의 행복한 감정을 메리에게 나눠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톰의 친구 켄도 마찬가지다. 은 실연과 그에 따른 고독으로 허기진 감정을 먹는 것으로 채우는 인물이다. 식욕으로 인해 고도비만이 되어 잘생겼던 외모도 잃어 버렸고, 비슷한 처지의 메리에게 관심을 보이지만 거부당한다. 톰의 친형 로니 또한 아내인 린다를 잃고 경제력도 없으며, 자식이라고는 몇 년 째 집에도 찾아오지 않고 성격도 괴팍한 외아들뿐이다. 톰과 제리 부부는 앞으로 살길이 막막한 노년의 로니와 당분간 함께 지내기로 한다. 한편, 톰과 제리의 아들인 조에게 관심을 보였던 메리는 조가 여자친구 케이티를 데려오자 사사건건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분위기를 흐린다. 더 이상 이 가족의 일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메리의 모습을 보고, 메리에게 한없이 따뜻했던 톰과 제리도 이제 한계를 느낀다.

 

  한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를 ‘연민은 쉽게 지친다.’라고 한 줄 평을 했는데, 아마 이 장면을 떠올리며 영화평을 하지 않았나 싶다. 동등한 입장에서 주고받는 사랑이 아닌, 행복한 누군가가 불행한 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연민에 지나지 않고, 그마저도 자신의 행복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불행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행복한 환경에 편입되고 싶어 한다.

 

  보통 영화에서 '불행'이라는 것은 특별한 인물들에게 대단히 비극적이고 흔하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세상의 모든 계절’에서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을 통해 불행을 나타내고 있다. 누구나 겪는 실연, 실직, 우울증, 질투 같은 일들로 영화를 보는 나를 비롯한 평범한 관객들이 좀 더 불행을 쉽게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별다른 카메라 기법 없이 차분하게 다룸으로써 더욱 더 톰과 제리 부부의 주변인들의 쓸쓸함이 강조되었던 것 같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일상에서 겪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잘 드러내는 ‘메리’를 보면서 한없이 공감되어 불쌍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나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행복에 위로가 되는 것은 남의 불행이다. 그것이 인생이다.’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이런 방식으로 자기를 위로하며 사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또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었던 적이 있다.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챕터로 나누어져서 각 계절마다 주말농장에서 일하는 톰과 제리 부부를 보여주면서 챕터의 시작을 알린다. 이는 삶에서 받는 상처와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근원적 외로움 또한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가모니가 말했듯이 生卽苦, 삶은 곧 고통이다. 이 영화를 보고, 특별히 내가 잘못해서, 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누구나가 다 외롭고 상처를 받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느끼고, 힘든 요즘 생활을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듯이,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행복의 시간도 오리라는 희망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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