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 기행 (2006. 1. 13)
모처럼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인데, 어제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빗줄기가 더 거세지는 모양이다.
창밖으로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것을 보니, 잠시 내리는 비는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모처럼 여행하기로 했는데, 집에 그대로 있을 수 없어 떠나자고 했다.
매번 여행을 떠날 때마다 반복되는 일과지만, 어디로 갈까? 하는 물음이다. 유명하다고 하는 곳은 이미 수차레나 가 보았으니, 이제는 입장료만 아까운 생각이 든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어디로 갈까? 하고 검색을 하는데, 내가 가입한 여행카페를 검색해도 도무지 가고픈 곳을 모르겠다.
충청도로 갈까요, 강원도로 갈까요?
작년 이맘때는 충주로 해서 지리산 자락을 거쳐, 삼천포와 거제도, 통영, 남해를 여행하였으니 더 갈 데가 없구나!…….
오늘 아침은 간단히 요기만 하고, 빨리 떠나자. 가다가 맘에 드는 곳이 보이면 그곳에서 점심 잘 먹자고 말하고, 나는 빵으로 아내는 간단히 식사를 했다.
벌써 오전 11시다.
나의 든든한 애마가 시동을 거니 힘차게 준비를 한다.
비는 더 오는데도 마음은 여유롭다. 왜? 어제 쌍용자동차 서수원 공장에서 엔진오일과 필요한 정비를 마치었기에 차로 인한 걱정은 덜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목적지로는 여태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북쪽의 <임진각>으로 정했다. 이쪽으로는 특별히 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차를 몰고 가기는 처음이다.
떠나기 전 우리 교감동기회 5분임 회원인 김교감에게 전화를 걸어, 대충 정보를 들은 상태이며, 또 파주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필요한 사항을 대충 보고 났으니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다.
출발하고 얼마 안 되어 문산제일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내가 아까 전화를 드렸었기 때문에....
나는 평촌으로 해서 서울 외곽 순환도로를 타고 인천 공항 쪽으로 차를 몰았다. 가면서 이정표를 따라 임진각 행이다.
처음가보는 길인데, 비가 많이 온다. 윈도우 브러시를 작동시키며 가는데, 시계가 좋지 않다. 비가와도 처와 둘이서 가니 외롭지 않다.
원래 여행은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맛있는 곳을 추천받아 식도락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가 아닐까!
아스팔트 바닥에 쓰여져 있는 안내에 따라 임진각에 도착하니 오후 1시다.
투어 버스가 막 떠난다. 안내소에 들러 문의하니, 두시에 출발하는 것이 있다.
예매(셔틀엘리베이터 3,000원 시설사용로 4,500원, 셔틀버스 3,700원)를 하였는데,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 출발할지 어떨지 두고 보아야 한다고, 전화번호를 알려달란다.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기념품 가게에 들러 1억 2천만원 한다는 소뿔로 만든 장롱을 구경하고, 나와서 주변을 구경하고, 자유의 다리 쪽으로 걸어본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애환이 서린 글과 깃발들로 퍼포먼스를 이룬다. 자유의 다리는 한국전쟁 후 국군과 UN군 포로 12,799명이 귀환한 다리라는 안내문을 보니 가슴이 저려온다.
핸드폰이 울린다. 안내소에서 온 전화로 2시 출발이니 승차하란다.
오후 2시 정각에 투어 버스가 출발한다.
다행히 외국인들과 몇 가족이 신청해서 버스가 출발할 수 있었다.
통일의 관문을 지나 건너는 <통일대교>는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몰고 갔던 다리”라는 버스기사의 설명을 들으니 감회가 깊다.
우리가 건너는 임진강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272Km의 강으로 얼음이 언 모양이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운전기사가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얼음이 언 상태에서 바닷물이 들어오면 얼음이 깨지고, 물이 나갈 때 얼음조각이 바닥에 깔리는 현상이 반복되어 그렇단다.
임진강에서는 고기잡이가 허용되는데, 이곳 주민들만이 허가된 구역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가 저녁 먹었던 매운탕집도 아저씨가 고기를 잡는 어부라고 한다. 음식점 벽에는 경인일보 신문이 확대되어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집 아저씨의 기사와 사진이 걸려있었다.
우리가 가는 길옆으로 허준선생墓가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도로에는 판문점 가는 길이라고 표시되어있다. 왼쪽으로 가니, 개성공단까지 가는 4차선의 연결도로가 있는데, 18Km 떨어져있으며, 시속 80Km로 가면 15~18분이면 도착할 수 있단다.
길가에는 네모로 된 분홍색 표지판이 있는데, 이것은 항공기 남방한계선 표지로 031 등 일련의 숫자가 써있었으며, “하늘에서 보면 쭉 연결되어 보이며, 남쪽 땅 끝임을 알려주는 표시로 더 이상 올라가지 말라는 남방 한계선을 나타내는 표식”이라고 운전기사의 설명이다.
<백연교>라 부르는 다리를 지나면, 남북출입국 관리소(세관)건물과 육군 제1건설단(공병중대)이 있는데, “이 부대는 DMZ 내(內) 공사를 맡고 있으며, 지뢰제거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6. 25 전쟁 당시 항공기에서 지뢰를 뿌렸기 때문에 어디에 지뢰가 묻혔는지 모른다”는 설명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리가 탄 버스는 북쪽으로 가고 있는데, 지금부터 DMZ 시작이라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기분이 좀 이상하다. 내가 어떻게 이곳을 와 볼 수 있다니…….
삼팔선이라고 부르는 38도선은 1953년에 그어졌으며, 38선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각각 2Km를 비무장지대(DMZ)로 설정하였다.
우리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제3땅굴>이다.
- 제3땅굴 (The third Tunnel)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 (The north Korea Tunnel for invading into south Korea)이다.
1974년 9월 5일 귀순한 제 3 땅굴을 팔 때 측량을 담당하였던, 측량기사 김부성의 제보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북쪽으로 3도의 경사(표지에는 3/1000)가 지도록 하여 배수가 되도록 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땅굴은 남침용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징후라고 한다,
실제로 땅굴을 찾기 위해 관통시추공을 팠을 때, 그 중 한 개에서 폭파 할 때 발생하는 소리가 들려 5개를 추가로 파고 물을 채웠는데, 그 중 한 개에서 물이 빠지는 현상으로 미루어보아 정확한 땅굴 위치 확인 할 수 있었다고 함. 이렇게 땅굴을 발견하기 까지는 김부성씨가 귀순 4년 후에야 발견 했다고 한다.
우리는 제3땅굴 관람시간을 1시간으로 해서 3시 15분 까지 승차하란다.
들어가는 갱도는 300M 로 2002년 5월 파주시청 발주로 현대건설에서 3개월간에 걸쳐 공사를 했으며, 셔틀엘리베이터(요금 3,000원)를 타고 들어가는데, 소요시간은 7분이다.
10년전 스위스로 여행 갔을 때 탔던 톱니로 된 레일을 사용하는 기차처럼 오르내린다. 단지 회전을 할 수 없어 옛날 전차처럼 앞뒤가 구별되어있어, 내려갈 때는 앞쪽으로 가서 운전하고 올라올 때는 반대쪽으로 가서 올라간다. 신기하다. 북한이 파놓은 땅굴의 길이는 1,635m 라고 하는데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이는 265m 밖에 안 된다. 그 이유는 적이 쳐들어 올까봐 그 지점을 국군이 막아 놓았기 때문이란다.
2004년에는 걸어서 땅굴을 관람할 수 있도록 358M 의 도보 관람로(길)를 다른 쪽에 만들었다.
참고로 제 3 땅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978년 아군에게 발견된 제3땅굴은 문산까지의 거리가 12km, 서울까지의 거리는 52km지점에 있다. 폭 2m, 높이 2m, 총길이는 1,635m로 1시간당 무장군인 3만 명의 병력이동이 가능하다. 북한의 무력남침 기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산 증거이다.
북한은 이 땅굴이 적발되자 남한에서 북침용으로 뚫은 것이라고 억지를 쓰기도 하였는데 땅굴 내부 갱도를 살펴보면 굴을 뚫을 때의 폭파흔적이 남쪽을 향하고 있어 북한의 주장이 허구임을 알 수 있다.
2002년 5월 31부터는 셔틀 엘리베이터와 최첨단 시스템을 갖춘 DMZ 영상관, 상징조형물 화장실, 기념품판매장등의 시설이 설치되어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땅굴을 견학하고 밖으로 나오니 왼쪽에 건물이 있는데 DMZ 영상 관람관이 있었는데, 약 10분 정도의 준비된 영상을 관람하고 나서 도라 전망대로 향하였다.
참고로 도라전망대에 관한 설명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도라전망대 >
“송악산 OP폐쇄에 따라 대체 신설되었으며 북한의 생활을 바라볼 수 있는 남측의 최북단 전망대로서 개성의 송학산, 김일성 동상, 기정동, 개성시 변두리, 기차화통(장단역), 금암골(협동농장)등을 망원경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연건평243평으로 관람석 500석, VIP실, 상황실, 주차장(30~40대)등의 부대시설이 있으며 일반에게는 1987년1월부터 공개되었다.”
도라전망대 가는 길 양쪽에는 NICE 1 사단 관할이라는 표시가 보이는데, JSA 미군이 철수해서 막사가 지금은 비어있다고 설명해 준다.
좀 더 올라가니 평양 입성 선봉부대라 표시된 막사가 보인다.
전망대에 올라 군인병사의 안내를 받고 보니 개성공단 조성현장과 개성시가 보인다.
예전에 오두산 전망대에서 처음 이북을 보았을 때 만큼의 긴장감이 없었던 것은, 물자를 싣고 개성공단으로 가는 차량의 모습과 오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날씨가 흐려 멀리까지는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건너 보이는 땅이 북한이라는 사실에 가슴 뭉클하다.
사천 강이 흐르는 벌판위에 우뚝 솟아있는 도라산(155고지)은 1952. 3 ~ 53. 7.27 중공군 정예사단과 해병 제1전투단과의 전투에서 고지를 사수함으로서 38선 긋는데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고, 이곳에서 서울 까지는 40Km 떨어져있고 개성은 12Km 거리에 있는 지점이다. 여기에 전망대를 만든 것이 이름하여 도라 전망대 이다. 이곳에서 관람시간은 15분을 주며 3시 35분까지 탑승하라고 한다.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니, 병사가 안내를 해 준다. “도라전망대 (Dora Observatory)는 북한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전망대(The Northern Most Observatary to See North Korea)로서 도라산역과 제3땅굴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맑은 날이면 북한군의 행동 하나하나는 물론 개성 송악산, 개성공단 등이 보일 정도로 북녘 땅에 근접해 있다.”고 안내한다. ‘분단의 끝, 통일의 시작’이라는 건물 상단의 문구가 印象的이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 왼쪽으로 출구로 나가니 망원경으로 이북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사람이 없어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볼 수 있었는데, 흐려서 시계가 나쁘다.
지금 이 순간 도라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잡목만 보인다. 아마 視界확보를 위해 그런 것이겠지만, 왠지 마음이 공허함을 금할 수 없다. 오른쪽으로 북한의 인민기 깃발이 보이며, 그 너머로 개성시가지가 보인다. 그런데 저기가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이라니, 그 왼쪽으로 개성공단 조성지가 보인다.
나와 내 妻家의 부모님들이 모두 이북 出身이라 오늘 임진각을 찾아봄에 감개가 무량하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도 투어를 하면서 그쳤다.
날씨가 흐려 멀리 보이지는 않았지만, 도라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저 건너편은 가까우면서도 갈 수 없는 항상 그리워하시는 우리 부모님들의 고향이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萬感이 교차한다.
우리가 다시 찾아간 곳은 도라산역 (Dorasan Station)으로, 경의선 최북단역 (Gyeongui Railway northernmost Station) 이다. 서울에 온 기차는 <임진강역>에서 일단 하차한 후 다시 도라산역까지 가는 기차를 다시 타야한다고 한다. 한정거장이지만 [여기서부터]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라 생각된다.
“[임진강역으로부터 도라산역 까지 한정거장의 열차 탑승시간은 불고 5분 남짓하지만, 그러나 끊어졌던 경의선이 민간인 통제구역인 도라산역 까지 복구되는 데에는 장장 52년의 세월이 걸렸다. 남한의 최북단역인 도라산역은 평양을 지나 중국과 시베리아 나아가 유럽까지도 뻗어나가려는 우리 민족의 꿈을 담고 있으며, 남북화합을 상징해 화해의 악수를 나누는 모습과 태극무늬를 형상화한 역사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이기도 하며, 월요일은 휴무라고 한다.
그 누가 그러던가? “도라산역은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으로 대륙을 향한 출발점”의 意味라고....... 언제나 북쪽으로 내어 달릴 수가 있을 까!
도라산역 驛舍의 특징은 지붕모양에 있다고 한다.
지붕의 모양은 서로 손을 맞잡은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도라산역 망배열차운행은 2002. 2. 12에 처음으로 운행했으며, 2002. 2. 20김대중 -부시대통령이 친목을 목적으로 이驛을 방문했으며, 그것을 기념하기위해 침목에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시대 >를 기원한다는 글귀와 <9월 18일 기공식 김대중, 이희호> 이렇게 서명을 하여 이곳에 남겨 놓았으며, 김대중과 부시가 연설하였던 연설문과 함께 연설장소도 함께 보존되어있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도라산역에 대한 자료를 찾아 옮겨보면, “도라산역은 민간인 통제구역인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에서 700여 미터 떨어진 남쪽 최북단역이다. 2002년 2월 20일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방문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끈 그리고 남북화해의 미완성 역이기도 한 도라산역은 2001년 10월 임진강역 개통에 이어 2002년 2월 12일 설날에는 철도운행이 중단된 지 52년 만에 임진강을 통과하는 특별 망배열차가 운행되었다. 도라산역의 평양 205km, 서울 56km의 이정표는 남북분단의 현실과 앞으로 극복해야 할 희망과 기대를 담고 있다. 도라산역은 남방한계선상의 남측 최북단 역인 관계로 향후 경의선 철도연결이 완료되어 남북왕래가 가능해질 경우 도라산역에서 북한은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를 가는 사람 및 화물 등에 대해 관세 및 통관 업무를 담당하는 역사성을 지니게 된다. 향후 도라산역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적 장소이면서 남북교류의 관문이라는 이중적 역사의미도 아울러 내포하고 있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통일촌 이었다.
통일촌은 1973년에 군인출신 45세대와 민간인 45세대가 들어와서 총 90세대가 마을을 이루었으며, 주 耕作物로는 人蔘으로 개성과는 18KM 거리에 있어 개성인삼과 같은 품질을 가지고 있어, 담배인삼공사가 전량 수매하여 <정관장>으로 판매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군내초등학교가 있다.
운전기사의 설명에 따르면, 대성동 자유마을은 휴전선 비무장지대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유의 마을’로 불리며, 병역 납세의무가 면제된다고 함. 즉 통일 촌과 대성동 자유마을의 차이점은 대성리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민통선 안쪽에 살고 있어 세금을 내지 않는 반면, 이곳 사람들은 민통선 남방 내에 위치하므로 조세부담을 한다고 한다.
이곳 통일촌에는 주소에 번지가 없으며, 민통선 내이기 때문에 도둑이 없어 대문이 없다고 설명한다. 또 이곳에는 카터대통령이 관계하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헤비닥트)으로 국내에서 1호로 지어진 집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으나, 마을 저쪽에 있어 실제로는 가보지 못하였음
이곳 통일촌은 장단 콩 마을로 알려져 있으며, 고추장과 된장을 만들고 있으며, 콩1말에 보통은 3~4만원하지만, 이곳은 장단 콩은 8~9만원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파는 고추장, 된장은 비싸다고 설명해 준다.
이곳에는 통일 정보화 시범마을 정보센터도 있으며, -옛날부터 전래되는 민통선 내 장단지역에서 생산되는 무공해 콩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소비자-농민 직거래 만남의 장이 되도록 <파주 장단 콩축제>가 11월 중에 열린다고 한다.
이 지역에는 허준선생묘, 덕진사상, 마애사면 석불이 있다고 안내판에 써있는데, 가볼 수는 없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통일촌 식당과 판매점에 10분간 들르고, 4시16분에 임진각으로 출발 하였다.
여행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기념품 가게에 들러보아도 우리나라의 특징을 나타낼만한 기념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이런 곳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이곳에도 부동산 (통일촌 공인중개사 사무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곳에도 땅을 사고파는가 보다 하고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임진각으로 다시 돌아간다. 2시간 반 동안의 투어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곳을 여행하실 분들을 위하여 안내를 해본다.
-DMZ 관광시설이용권 : 반드시 신분증 지참해야 하며, 일반인 11,200원 - DMZ 관광시설이용권은 파주시와의 협약에 의하여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에서 징수를 대행하고 있습니다.(당일에 한함)
-임진각 관광지: 임진각에는 슬픔이 있다. 임진각에는 눈물이 있다. 6.25전쟁과 남북분단이라는 뼈아픈 역사 때문에 대표적인 통일 안보관광지가 되어버린 임진각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7Km 남쪽에 위치한다.
1953년 6.25전쟁포로 1만 2천 773명이 북으로부터 귀환하였다하여 명명된 자유의 다리를 비롯하여 북한의 생활필수품 및 사진들을 볼 수 있는 북한관, 21톤의 육중한 무게로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낸 평화의 종 등이 있다.
TV에서 많이 보았던 망배 단은 1950년6월25일 전쟁과 그이후의 민족대립으로 인한 슬픔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으로 휴전선 북쪽에 고향을 가진 실향민들이 매년 설날과 추석 때나 가족이 보고 싶을 때에 배례하는 장소이다.
임진각 관광지내 주요시설물로는 전쟁기념관 / 철마는달리고싶다 / 통일연못/자유의 다
리/ 평화의종 등이 있다.
출발할 때 비가오고 어두워 스몰라이트를 켜고 왔다가 끄지를 않았었나보다. 차 곁으로 가보니 스몰라이트가 켜 있다. 아차! 했으나 어이하리……. 다행히 아직은 완전 방전이 아닌 것 같아 시동을 거니, 시동이 걸리지 않는구나,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러야 할 까보다. 당황스럽던 차에 아까 우리가 탔던 셔틀버스 운전기사에게 오는 것이 보인다. 다가가서 사정을 말하니 연결케이블(점프선)이 있느냐? 고 묻는다. 아마 있을 것이라고 말하니, 잠간 기다리란다. 이어 자신의 차 힘도 좋은 무소를 가지고 와서 점프해 준다.
너무나도 고맙다. 아마도 우리가 맨 앞자리 일번과 이번에 앉았기 때문에 기사가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고맙습니다.” 하고 크게 인사를 했다.
임진각에서 나와 반구정으로 향하는데, 내차 계기판의 연료 가열 장치인 기화기 표시가 사라지지 않는다.
배터리가 충전 되면 괜찮겠지 하고 출발했는데도 그대로다. 이것이 고장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된다.
반구정에 도착해서 수원 지역 A/S 센터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으나 대답이 시원치가 않다. 그래서 차량 매뉴얼에 기재되어있는 파주 지역 A/S 센터에 전화를 거는데, 4번이나 잘못 걸린다. 신경질이 난다. 괜찮겠지 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지 않다. 5시 반 넘어 안내해 주신 음식점에서 이병일 교감님과 만났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니 충전이 되면 없어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 교감님께서 음식점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반구정 근처에 있는 <어부집>을 소개해 주신다.
오늘 저녁은 유명한 참게 빠가 매운탕(빠가사리 + 참게매운탕 소- 40,000 중-45,000 대50,000)이었다. 이 집에서 쓰는 고기들은 임진강에서 주인이 직접 잡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집 이름이 어부집이란다. 이집에서 유명한 황복(복어)요리는 잡히는 한 철 밖에 맛을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나는 속으로 돈 많은 사람들은 좋겠다고 부러워하는데 내 속이 아리다.
참고로 그 집의 다른 메뉴를 살펴본다.
이집에는 메기+ 참게 매운탕과 메기 + 빠가 + 참게매운탕 등이 있는데, “모든 메뉴에는 참게가 한 마리씩 밖에 들어있지 않다”고 한다. 모든 메뉴에 <참게>를 추가할 수 있으며, 한 마리 당 5천원이란다. 그래서 3인이 갔을 때 小 하나에 참게 2마리 추가하면 값싸게 개인적으로 한 마리씩 참게 맛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음식점 주변에는 황희선생유적지인 반구정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 방촌 황의정승이 87세의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낸 곳으로, ‘갈매기를 벗한다)이 있어 한번쯤 들를 만하다. 임진강가의 기암절벽에 자리 잡고 있는 ‘반구정’이란 이름 그대로 “예전에는 서해안의 갈매기들이 많이 날아왔다”고 한다.
이제 저녁 식사를 마쳤으니, 이병일 교감님을 만나러 가자. 교감선생님은 손을 다쳐서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시느라 먼저 자리를 떴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가야한다. 이 교감님은 전화로 찾아오는 길을 자세히 알려준다.
음식점에서 나와 그 길로 ‘自由路’를 타고, 서울방면으로 낙하IC를 지나 두 번째인 성동IC에서 내려 좌회전하여 파주시청 쪽으로 계속 직진하니 금천이 나온다. 교감선생님께서는 학교 교문 앞에서 비상라이트를 켜고 기다리신다. 여기까지 왔으니 문산제일 고등학교를 둘러보고 가자. 밤이라 학교는 SECOM 장치가 되어있었는데, 당직자가 열어주셔서 교무실로 가서 교감선생님 자리와 교무실을 한바퀴 둘러보고 문산에서 볼만한 곳을 안내받고 덕분에 새학기 준비에 필요한 좋은 자료 (양식)도 얻었다.
이 교감선생님 고마웠습니다.
내일의 일정을 위하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통일로를 따라 그대로 직진하다보니 양화대교가 보인다.
아차! 외곽순환도로를 타야했는데....
초행길이라 걱정이 되었는데, 이정표만 보고 갔는데, 길을 바꾸지 못했나보다.
할 수 없이 동작대교까지 가서 사당으로 해서 수원으로 향하였다.
벌써 옛날이 되었지만, 이 길은 내가 아침저녁 다니던 길이지 않았던가!
오호! 감개가 무량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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