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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life/나의 旅行, 山行과 오토캠핑

방태산 휴양림 autocamping

  방태산(1,444m) 휴양림Autocamping 

 

방태산 가는 길


수원 → 광주 → 중부IC입구 → 퇴촌 → 양근대교 → 양평 → ⑥ 홍천 → 철정검문소 右회 전 → 상남 → 방태산 휴양림 … 현리방면

 

 

기간 : 2005년 8월 22(금) ~27(목) → 5박 6일간

 

  

 

 

@@ 2005년 3월에 교감 발령을 못 받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감춰질 수 없었다.

 

애써 마음 달래고 한 달, 한 달 하고 보니 어느덧 7월 이제 여름방학 마치면 발령이 난다. “ 세월은 흘러만 가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이라는 이외수의 말처럼 교감이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와 자세를 가다듬고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이번 여름 방학은 교사로서 나에게 부여되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이번 여행은 <휴양>삼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예전처럼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보려고 애쓰던 모습과는 다른 태도였다.

 

게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QUEST TENT는 둘이서 설치하기가 힘들어, 이번여행에서는 원터치로 설치가 가능한 텐트를 구입하였다. 왜냐? 더운 날 뙤약볕에서 텐트 치던 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LANDROVER 로 펼치는데 그냥 던지면 펴진다. 접는 방법이 어려워 인터넷으로 그림을 다운받고 집에서 몇 번 연습하였다.


금년은 내 딸이 미국에서 연수중이고, 아들 진우도 근무해야 되어 둘이서만 여행하기로 했다. 처음 처는 학원을 그만둘 수 없어 잠간 3~4일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한 달간 방학을 결정했다. 대단한 결정(?)이었다.

 

내가 그동안 많이 지치고 힘들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취한 결정이었으리라 믿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이 여행을 받아들인다.

 

 

8월 22일 (휴양림 첫날 )


 휴양림 찾아 들어가는 중

 

사실 나 혼자 떠나 야영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전에는 가까운 궁평리에 가서 하룻밤만 쉬려고 했었는데, 그것이 사흘이 될 정도로 나는 자연에서 야영을 즐기는 나 이지만....


나는 오늘 여름 방학이 되면서 3월 발령이 안 난 것을 처음으로 감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3월 발령 받은 연수동기 교감님들의 「학교지킴」을 볼 때.....

 

 

 

 

아침 10시경 출발해서 방태산(1,444m) 도착하니 무척 더웠다. 에어컨을 켜고 계속 달리니 코가 이상 신호를 보낸다. 자동차도 연료를 주입해야 하는데 마땅치가 않아, 결국 상남까지 가서야 가득 보충하고, 필요한 삼겹살은 현리에 가서 사려고 했다.

그래서 현리를 향해 가는데 갑자기 방태산 휴양림은 『지금부터 11Km우측』이라 적힌 화살표를 한 안내판이 보인다.

 

급한 김에 우회전하면서 정육점을 찾는데, 휴양림 입구 다 가도록 찾을 수가 없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깥 날씨가 더워 창문은 열지 못하고 연신 콧물만 닦는다.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길은 너무 좁고 민박집들과 가게들만이 즐비하다.

 

얼마를 더 들어가도 휴양림이라는 표지는 보이지 않기에 창문을 열고 묻는다. “여기 휴양림 들어가는 길 맞습니까?” 그렇다고 한다.

 

한 50여 미터를 더 들어가니 「방태산 휴양림」이라는 기둥이 보인다. 정문에서 입장료와 사용료를 내고 텐트 칠 자리가 있느냐고 물으니 자세히 일러준다. “아래쪽은 다 찾으니 상류로 올라가라고…….” 상류에 올라가니 주차 할 공간이 없어 차를 다시 돌리려는데 안내하는 직원이 따라와 다리건너 쪽으로 안내하며, 다리를 막은 출입문을 열어주면서 차를 가지고 들어가 짐을 내리고 다시 다리 밖으로 차를 빼어 길가에 주차하도록 안내해 준다.

 

 

 


 

 

안내하는 직원의 말대로 차를 몰고 물가에 위치한 데크를 선정한 후 차를 대고 짐을 부린 후 다시 주차장으로 갔다. 참 잘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바로 옆 데크에는 먼저 자리 잡은 분들이 생선을 구우면서 소주 한잔하란다. 나는 차를 주차시켜야 하기에 사양하였다. 주차를 마치고 오니 술이 석잔……. 텐트 치는데 정말 끝내준다. 텐트를 던지니 벌떡 서는 것이 아닌가! 와...!

 

 


 

 

텐트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끈으로 고정시키고 짐을 옮기는데 정말 잘 샀다고 감탄하면서 말이다. 텐트를 치기에 데크가 넓고 평평하여 마음에 든다.

 

휴양림에 있는 오토캠핑장이 이렇게 좋은 줄은 미처 몰랐다.

 

향촌여사가 “이정도면 야영할 말 하다.”고 한다. 나도 기분이 좋다.  

 

 

 

 

텐트를 치고 짐을 정리하고 나니 땀에 흠뻑 젖어있다. 나는 옷을 입은 채로 십여 분간이나  물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물은 그렇게 차지는 않았는데도 나중에 나와 보니 몸이 너무 식었나 보다. 재채기가 연달아 나온다. 내 처도 옆집 처자들 덕분에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적신다. 정말로 좋구나! 어디 가서 이런 맛을 보려는가? 국립공원에서는 語不成說....

 

 

 


 

 

잠시 주변을 살펴 볼 겸 처와 함께 산책을 나가 한 바퀴 둘러보니 정말 숲이 우거지고 사람도 많이 들여보내지 않아 쾌적하다. 항상 북적거리기만 한 곳에서 생활하던 나였으니, 얼마나 좋았으리요.

 

계곡의 물이 작은 나이아가라를 연상케 할 정도의 폭포도 있고,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이 있다. 정말 맘에 든다.

 

오랫동안 머물러도 좋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자연 휴양림이라는 곳이 이렇게 좋은 곳이로구나!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저녁 후 소주 몇 잔을 나누면서 이웃과 친교를 갖는다.


그들을 통해 ‘알뜰한 여행’ 방법도 배웠다. 맑고 밝은 심성을 가진 분들이다. 이벤트로 폭죽을 터뜨리며……. 그쪽 남편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 두 여자는 자매로 언니는 처보다 2살 아래로 같은 세대로 공감할 점이 많아 쉽게 마음을 터놓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작은 텐트 속이지만, 어릴 때의 나만의 공간을 이야기 하면서 만족해했다. 밤에는 추울 것 같아 슬리핑백을 2개나 펴고 긴 옷과 긴 바지 입고 잠을 청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땀에 흠뻑 젖는 바람에 잠을 깼다. 생각보다 텐트 안은 더웠다. 새로 산 텐트가 공기가 잘 빠지지 않는 천으로 만들어져 보온이 매우 잘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환기통이 따로 달려있다. 이런 텐트는 처음이다.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잠을 설친다. 그래도 좋다.  

 

 

 

 

간소한 식탁이지만 끼니 때 마다 따뜻한 밥을 먹으니 행복하다.

 

 

 8월 23 (휴양림 둘째 날)

다음날은 숲 해설가와 함께 하는 숲 해설이 있다는 방송이 나오기에 시간 맞추어 나가 참여를 하였다.

그 중 여러 종의 관엽식물들과 이곳 특유의 식물들을 보면서, 자연의 신비함과 여태까지 수천 년을 죽지 않고 종족을 보전해온 식물들에 대해 존경심마저 갖게 해 주었다. 그리고 많은 나무들이 각자의 생존의 방식대로 자신을 지켜온다는 것과 낙엽송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낙엽송이 많은 곳은 옛날 화전민들이 화전을 이루고 있던 흔적이라고 한다.

 

화전민을 정리하고 나서 그곳에 산림녹화로 잘 자라는 낙엽송을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무는 곧고 키가 커서 보기는 좋은 데 물러서 재목으로 사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곳 방태산에도 낙엽송이 자라고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된다. 그러니 옛날 이런 오지에도 사람들이 모여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숲 해설가가 어떤 나무를 가리키며 잘 보라고 한다. 나뭇가지 사이에 무엇이 끼어있고 이끼가 덮인 모습이다. 그것이 무엇 같으냐고 묻는다.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살던 화전민들이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였던 징표가 아닐까하는 설명이다.

 

모두가 다 웃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김유정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동백꽃은 전남 보길도나 여수 등 남쪽에 피는 붉은 동백꽃이 아니라 강원도에 있는 「생강나무」라는 설명이며, 이 생강나무는 일명 동백꽃이라고도 불리며, 김유정의 동백꽃이라는 소설에 등장한 꽃이며, 동백기름이라는 것도 이것으로 만든 기름이었지 않았나? 하는 설명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로 잘 믿기 어려웠지만, 그 후에 몇 번인가 들었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실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이곳 지리에 어두워 아침가리가 어느 곳인지 알 수 없는 정도이다. 아침가리란 아침에 밭을 갈 정도의 면적을 말한다고 한다.

 

숲 속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넓은 마당바위가 있는 계곡이 보인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넓은 바위가 많은 곳이다. 저 곳에 들어가 시원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싶다.


 

8월 24일(휴양림 셋째 날)

 

다음 날 계곡으로 산책을 나갔다. 울창한 숲속에 들어가니 풀과 나무 냄새가 다르다.


가슴가득 심호흡을 하며 걷는다.  이곳 계곡의 특징은 바위가 넓고 평평하다. 즉 마당바위가 많으며, 깨끗한 물이 풍부하다. 이 산 정상에는 2톤 가까이 되는 바위가 있는데 그곳에는 구멍이 크게 뚫려있다고 한다. 그 옛날 큰 물난리 때 바위에 배를 매어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인지 그 누군가 방태산을 ‘노아의 방주’라 표현한 것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이정표를 발견하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는데, 마침 부모님 모시고 함께 왔다는 앞서가는 부부가 길을 안내한다. 자기들은 정상까지 등산을 하는데, 거기까지는 “자기들 가는 길이 평탄해 오르기에 좋다”고 함께 가자고 한다. 우리는 등산화 없이 아쿠아 운동화를 신고있어 망설이고 있는데, 그들이 함께 가자고 한다.

 

 

우리는 그들을 따라 걸으며, 이 얘기 저 얘기를 주고받으며 걷은 동안, 계곡은 끝나고 가파른 언덕이 기다리고 있다. 여 편 둘의 등산 실력이 비등하다 힘들어 자주 쉬었다. 그쪽 남편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준다. 처가 건강이 좋지 않아 함께 데리고 다닌다고 하는 정말 처를 아끼는 사람이다. 자신은 대학교 2학년 때 처를 만나 지금까지 30년을 함께 살았다고……. 자신은 대학교 때 Royal Saloon 자동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부자였노라고 하면서 해병대 특전사를 마치고 제대해 보니 완전 집안이 거덜 나 있었고, 그래서 학교를 중퇴하고 동대문시장에서 장사해서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하며,  IMF 때 부도 맞아 고생 많이 했으며,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개인주택소유하고 있으며, 그 당시 개인주택 구매 시 아파트를 샀으면, 지금쯤은 수십억 부자가 되었을 거라는 등 구수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이 요즈음은 경기가 나쁘니 사업을 하지 말고 조금 기다리라고 하여 지금은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하는 말솜씨도 구수하다. 작년 홍천에 땅 보러 왔던 이야기, 지금도 살만한 땅 보러 다니는데, 너무 기가 막힌다고 이야기를 한다. 3년 전에 5만원 하던 땅이 20만원을 호가한단다.

 

 

이런 저런 이야 기속에 우리는 삼거리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앞으로 목적지인 <주억봉>은 400여미터거리의 평지 길이다. 얼마를 기다리니 두 여 편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올라온 등산코스는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힘에 부치는 코스인데 그래도 잘 올라왔다. 기특한 생각이 든다. 잠시 휴식하고 우리 남편들은 정상을 향해 먼저 출발하여 드디어 <주억봉> 정상을 찾았다. 정상이라야 큰 나무가 없는 잡목만 있는 언덕과 무엇을 심은 듯 한 밭 모양에 쇳덩어리들이 널려있다. 나는 제일 높을 것 같은 작은 바위위에 올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야-호를 외친다. 눈 아래 펼쳐지는 파아란 하늘은 더 한층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었고, 목청껏 소리를 질러본다. 야-호! 가슴이 탁 트인 것처럼 후련하다. 사방에는 된장잠자리가 떼를 지어 나른다. 신기하다. 이렇게 높은 곳에 잠자리가 있다니…….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구령덕)봉이 나오는데, 林道를 따라 1Km 정도 걸어야 한단다. 날씨는 뜨겁고 지루하다고 해서 다시 오던 길로 내려오기로 했다.  내려오는 도중 복장을 갖추고 등산하는 산악회 회원들을 만났다. 그들도 힘이 들긴 드나보다. 얼마나 남았냐고 묻기에 “2/3쯤 왔습니다.” 역시 오를 때는 힘이 들었지만 내려가는 길은 그래도 수월하다. 오르는 사람들을 보니 “매도 먼저 맞는 쪽이 그래도 낫다”는 말이 실감난다.

 


다시 계곡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시원한 물로 세수를 하고 목을 축인다.

 

<생명의 물> 처럼 달고 맛있다. 그쪽 남편인 金氏 曰 “우리 아버지가 처신을 잘못해 그 많던 재산 다 날렸다고” 또 우여곡절을 겪고 빚 독촉을 받고도 이겨냈던 처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도 부모님을 자주 모시고 여행 다닌다는 이야기 등등을 목소리도 큰 김 씨는 넘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 중 다녀본 곳 중에서 인상적인 곳을 추천해 달라는 나의 말에 그는 즉석에서 충남 태안에 있는 <구레포>를 꼭 가보라고 한다. 주차는 그곳 주차장이 아니라 학암포 옆에 있는 곳에 주차하라고 자세히 알려 준다. 꼭 한번 가보리라 마음에 새겨본다.


이야기에 팔려 힘든 줄을 모르고 내려오다 보니 계곡이 시작된다. 엎드려 맑은 물을 마시면서 더위를 식혀본다. 정말 상쾌함 그 자체로구나!

 

 

출발점이 있던 계곡을 거의 다 내려와서 우리들은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풍덩……. 정말 내 적성에 맞는다. 물속에 잠수하길 몇 번, 향촌만 물에 못 든다. 간신히 발만 적시고…….  잠시 후 그들 부부는 부모님이 기다리신다고 급히 서둘러 내려간다. ‘비오기 전날 연락해서 함께 야영하자“고 했는데 연락처도 못 받고……. 오늘 하루도 좋은 사람 만나 덕분에 힘들다는 주억봉 정상 까지 등산을 할 수 있었다.

내려오니 거의 3시쯤 된 것 같다. 점심을 간단히 해서 먹고 쉬다가 연락처를 알겸해서, 그들이 있다는 아래쪽 텐트 촌으로가보니, 부친인 듯한 분만 계시고, 내외는 없다. 아마 외출한 모양이다. 결국 인연은 그것으로…….

 

 

 저녁에 함께했던 경기도 화성의 병점에 사는 젊은이와 방동약수의 맛을 보도록 해 주었던 김포의 큰 붕어 사장과 친구 1명과의 재미있었던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어두움이 깔린 밤에는 처제랑 함께 온 부부인 옆집 사람들과 소주 몇 잔 기울이며 사람 사는 이야기와 동요를 불렀다.  정말 멋을 아는 사람들이다. 자기가 경험한 여행지에 관해 들었고, 그들이 디카로 몇 장 찍었다. 메일로 전해 받기로 하고……. 그분의 처(이*희-방태산- 01*-988*-*536)의 말처럼 “기록은 소중한 것이다”라는 것을 또 다시 깨달으며 HP 에 기록된 주소를 확인한다.

 


----  < 매 봉 령> 등산  ---

 

8월 25일 (휴양림  넷째 날)
 

그 다음날은 아침을 먹고 향촌과 둘이서 <매봉령>으로 등산하기로 했다.

 

출발점에서 약 2.0Km 로 표시되어 있다. 물 한 병 손에 쥐고 (향촌이 당뇨기가 있어) 천천히 오른다. 낙엽송이 빽빽하게 뻗은 모습이 하늘을 찌른다.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을 것 같은 계곡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한 시간쯤 오르니 POST④ ~ ⑤ 사이에 있는 <매봉령 마지막 쉼터>가 보인다. 찬물에 손을 담고 물 한 모금 마시니 천지가 다 내 것 같다.

 

이제부터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하다. 힘을 내어 걷는다. 이 등산로에는 위치 표시 기둥이 잘 되어 있어서 지루하지가 않다. 조금 더 가니 POST⑤번 기둥이 나온다. 표시 기둥간의 거리가 발걸음으로 재보니 대략 500M 쯤 되는 것 같다. 

 

 ⑤번 POST에서 ⑥번 POST로 가는 곳도 경사가 매우 급하다. 오래된 나무들이 곳곳에 눈길을 끈다. 향촌이 힘들어 한다. 자주 쉬었다 가잔다. 그래! 무리하지 말자.

 

 

원래 향촌은 걸터앉을 곳만 있으면 그대로 통과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큰 나무들 중 여성의 생식기 모양을 한 구명에는 누가 끼워 놓았는지 이미 돌들이 몇 개나 끼워져 있다. 아마도 아들을 점지 해 달라고 해서 빌었던 무속신앙의 징표일지도 모른다.


나도 장난 끼가 발동해 돌을 하나 더 넣었다. 처가 장난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웃는다.

조금을 더 가니 ⑥번 기둥이 보인다. 기둥이 흔들거려 쓰러질 듯하다. 주변의 돌을 주워 기둥 밑에 끼워 넣으니 한결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조금 더 오르니 내 나이 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이정표 앞에서 묻는다. “얼마나 더 올라야 되나요?” 우리도 잘 몰라 “잘 모르겠네요!” 하니 그들은 거기서 되돌아간다고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곳에 써있는 이정표에는 주억봉까지 거리(출발점에서 3Km) 를 표시한 것으로 매우 멀게 기록되어 있다. 그것을 여기부터 구룡덕봉까지 1,6 Km 등으로 기록 해 주면 힘을 낼 텐데 말이다.

 

우리는 조금 더 오르기로 하고 힘을 내었다. 한 200M 쯤을 더 오르니 우리가 가려고 한 매봉령이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앗! 그분들도 조금만 더 힘을 냈으면 좋았을 텐데…….

 

매봉령에는 이미 주억봉정상으로부터 내려오던 다른 부부가 쉬고 있었는데, 간단한 행동식으로 허기를 메운다.

 

매봉령 주변은 키가 작은 음지 식물들이 넓게 펼쳐져 서식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이런 곳을 좋아한다." 고 처에게 말하며 林道가 있다고 하는 구룡덕봉 가는 길로 가보기로 했다. 평지처럼 평평한 곳으로 100여 M 쯤 더 걸으니 ⑦번 기둥이 보인다. 

 

우리는 어젯밤 옆집과 함께 부르던 여흥이 남아서인지 동요 몇 곡을 부르는데, 하늘에서 물방울이 튀긴다. 구름이 뭉쳐 있는 것을 보니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서둘러 내려가야 할 판이다.

 

몇 걸음을 옮기는데 벌써 후드득후드득 소리가 난다.

 

조바심이 난다. 경사가 급한데다 길이 미끄럽다. 징검다리도 몇 개 건너야 하는데……. ⑥번 기둥이 보인다. 반갑다.

 

서두르는 데도 도통 진도가 안 나간다. 재촉하지 말고 쏟아지면 흠뻑 맞아보자 라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슬로우 슬로우 퀵퀵!!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아마도 높은 산이라 구름이 모인 곳에서는 한차례 쏟아 붓는가 보다.

 

다행히 내려오는 동안 큰 비는 없었다. 다행이다.

우리는 “등산화를 가져와야 했는데”라고 하며 다음번에는 필히 지참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내려오는 도중 마지막 샘물이 있는 곳에서 물을 먹고 땀을 씻으며, 잠시 쉬었다.

 

얼마를 내려왔는데 모자를 놓고 온 것이 생각이 난다.

 

와! 다시 가지러 가야 되나?

 

가지러 가야지.

아내에게 여기서 잠간 기다리라고 하고서 되돌아간다. 그런데 왜 이리 먼지...

 

중간에 처보고 그냥 먼저 내려가라고 할 걸 후회막급이다. 그러나 어쩐다. 아직 사람은 지나가지 않았으니 모자는 그대로 있겠지. 누가 가져가면 낭패인데 하면서 뛰어 올라간다.

 

간신히 도착해보니 모자는 그대로 있다. 다행이다. 기쁜 마음으로 모자를 들고 뛰어 내려왔다. 기다리고 있던 향촌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무서웠고, 자기 혼자만 남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등 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눈물이 나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당신이 그렇게 소중한 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냥 먼저 내려가지 않았느냐니까" 기다릴 것 같아 그랬단다. 참!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제 오늘 송별회를 하자고 내가 제의를 해서 준비 차 매점에 가려니 비가 조금씩 떨어진다.  오늘 저녁에 송별회를 위해 텐트로부터 약 1Km 쯤 떨어진 곳에 관리소가 있는데 그곳에 간단한 물품을 파는 매점이 있기에 삼겹살을 사러 갔다. 마침 내려가는 관리소 직원들의 차를 얻어 타고 가서 물건 (삼겹살 2근 + 소주3병 +상추 = 2만원)을 사고 나니 서쪽하늘에는 해가 떠있는데도 비가 장대같이 쏟아진다. 그런데 그 반대쪽으로는 무지개가 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무지개를 본적이 실로 얼마만의 일인가?

 

한참을 기다려도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비가 약해질 때를 기다리는데 지루하기 그지없다. 콧노래를 불러본다.

드디어 트럭한대가 올라온다. 손을 들고 태워달라고 해서 올라타려니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래서 반대쪽으로 타려는데 미안하고 죄송하게도 운전사가 내려서 문을 손으로 탁 쳐서 열어준다. 고맙기 그지없다.

 

올라가는 동안 기사님은 자신이 이 휴양림 휴양관 공사를 했다고 소개하면서 동승한 분들을 모시고 이곳을 구경 왔노라고  설명하신다.

 

야영장 입구에 도착하여 내리려하니 또 문이 열리지 않는다. 운전기사가 내려서 열어 주신다. 큰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마음속으로 <복 많이 받으세요>

 

 

전국을 여행하면서 많이 느낀 일이지만, 특히 지방에 갔을 때 도움을 청하면,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는 분들이 많음을 느낀다. 이번 경우도 그렇다. 그런데 왜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가? 나도 될 수 있으면 친절하려고 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아마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 일거라고 생각되지만 가슴 한구석이 아려온다.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은 “관계”의 연속이리라 생각하고 있으며, 

여행의 묘미는 낯선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일일 것이다.

 

래서 인지 나는 주변사람들과 잘 어울려보려고 노력하는 편으로 가급적이면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자」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저녁식사 후 어둠이 깔릴 무렵 옆집으로 갔다. 내가 가지고 간 번개탄으로 삼겹살을 구우면서 참 많이 웃었다. 화음 맞추어 함께 동요와 대학시절의 윤형주, 송창식 등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폭죽 이벤트도 함께하여 이미 옛날이 되어버린 童話 속으로 묻혀버린다.


- 건강하시고 재미있는 삶 사시길 바랍니다.-



8월 26일 (화요일) (휴양림 다섯째 날)

 

 

다음날 아침  옆집 그들이 떠날 때 짐을 싸는 것과 차에 싣는 모습에서, 부인인 이여사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구석구석까지 차곡차곡 싣는 모습과 다음 식사 준비를 하는 처제의 알뜰함(멸치 몇 마리 얻어가는)과 계획성 그리고 닭과 구워먹을 고기도 먹을 만큼씩만 작게 나누어 따로 따로 냉동시켜가지고 다니는 준비성과, 酒類도 가벼운 PET병으로 가지고 다니는 치밀함까지도 나보다 한 수 위임을 인정하며, 캠핑의 참 맛을 배웠다.

 

 

 

 

 

 


어제 자리를 옮기면서 우리가 있던 27번 데크에 새로운 식구가 들었다. 그리고 바로 옆 26번 데크도 (임진영 42세, 안(?)상옥 40세) 같이 온 젊은 사람들인데, 고양시에서 개인 택시한다는 임진영 씨는 딸 하나를 두었고 * 상옥씨는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두 분 모두 성실한 분들로 보였다. 텐트 설치하는 것을 보니 반듯하다. 나는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어딘가 어설프다”는 처의 말이 들린다.

 

내일은 떠나는 날이다. 어제 향촌이 도라지 무친 것과 부침개 몇 점을 주었더니 금방 친해진다.  3집이 모여 저녁식사 후 모이려고, 상옥씨가 고기 굽고 준비하는데 꼼꼼한 모습이 보통이 아니다.

지금자리를 함께할 두 분들의 부인들은 서로 친구로서 두 가정이 친교를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야무지게 보였다. 술 한 잔의 추억이 여행을 즐겁게 했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술이 모자라 개울에 담궈 둔 소주 1병과 맥주 1캔까지 가져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8월 27일 (휴양림 여섯째 날)


 

다음날 우리는 떠나기 위해 서로 부산한 채비를 한다.


즐거운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함께 사진을 찍고 나중에 이 메일로 사진을 보내 주기로 하고, 헤어질 때 “내년에 시간이 맞으면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고 하면서 우리가 먼저 출발했다.

 

 

 


 

 나는 그저께 저녁에 함께했던 경기도 화성의 병점에 사는 젊은이와 방동약수의 맛을 보도록 해 주었던 김포의 큰 붕어 사장과 친구 1명과의 재미있었던 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떠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과 구르는 물소리, 그리고 잘 가꾸어진 휴양림의 모습을 뒤로하면서 내년에 다시 오고 싶다는 강한 감동을 가지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