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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의유럽자동차여행기(클릭)/1.출발-(프)파리-고흐-모네-에트레타

4. 여행1일 -1(차량인수- 빈센트 반 고흐 무덤)

2007년 7월 15일 일요일(여행 1일)

파리도착 - 차량 인수 - 오베르 수와르와즈  관광- Giverny 관광 - 유럽첫날 Etap Hotel 숙박 (프랑스)

 

파리도착 ㅡ 차량 인수 -빈센트 반 고흐 무덤 -

모네의 집과 정원 이야기

 

오늘은 두 곳을 여행했다.

파리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려 출구로 향하기 위해 공항버스를 탔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모녀가 우리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동양사람이긴한데 알 수가 없다. 공항으로 들어오면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고, 우리는 가족이 유럽여행을 하러 온 것이라 말하니, 자신들은  영국에 있는 오빠를 만나 프랑스 여행을 하기로 한 부산사람이라는 것을…….그 딸도 여행이 처음인 듯 보이는데, 굉장히 비싼 옷에 화려한 치장을 한 멋쟁이 아가씨로 오빠 (그집 아들)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검색을 끝내고 나가니 좌측, 우측 어느 곳으로 나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눈치껏 좌측으로 나가 짐을 찾아 카트에 싣고, 출구로 나갔다.

 리스한 차량을 인수하기위해 푸조회사에 전화를 걸어야 한다. 나는 알려 준 쪽을 찾아보아도 전화통이 보이질 않는다.

 

 아들 진우가 한국에서 찾아온 자료에 의해 쉽게 전화기를 찾을 수 있었고, 전화를 걸고 차가 오기로 한 장소로 가는데, 출구에서 아까 셔틀버스에서 만난 그녀들을 만났는데, 기다려야할 오빠가 보이지 않는다고 매우 당황해한다.

 

 우리는 그녀의 엄마를 우리와 함께 있도록 취하고, 내 아들과 딸이 그녀와 함께 인포메이션으로 가서 오빠가 기다린다고 했던 출구를 확인하러갔다. 이곳 드골공항은 6개의 출구가 있어 각 비행기마다 출구가 정해져 있는 곳인데, 아들이 나타나지 않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러다가 우리를 만난 것이다.

 

우리 집 애들과 그 집 딸이 이리저리 찾아다녔는데도 오빠가 보이질 않는다. 이제 우리를 태워갈 차가 올 시간이 되었다. 할 수 없이 떠나야 하는데, 불안하다. 우리가 전화가 없기에 오늘 묵을 호텔주소와 아들 메일을 적어주고 떠났다. 그 엄마와 딸은 우리가족의 친절에 매우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만약 우리를 만나지 못했다면 얼마나 당황했을지 몰랐을 거라고 하시면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다.


나중에 사흘이 지나서 메일을 보니 우리가 떠난 지 15분 후에 오빠를 만났단다. 아마도 이곳 사정에 익숙지 못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작은 친절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렌터카에서 우리를 태우러 온 청년은 키는 크지 않았는데, 눈썹이 짙고 잘 생겼다. 우리를 확인하더니 우리를 차에 태우고,  푸조 리스 회사로 데려다 주었다.

 

 

차에서 짐을 내리고나서,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면서 아들과 나를 사무실로 데리고 간다. 내가 가니 신분확인하고, 우리가 한국에서 가져간 서류를 주니 자동차키와 보험증서 등을 주며, 회사 남직원이 따라 나온다. 키를 달라고 해서 주니 우리가 탈 차를 가져다준다.

 

 우리가 빌린 자동차이다. 내가 운전석에 앉아 계기판을 확인하는 동안...."꿈이 현실로....!"

 

 

 자동차를 빌리는 이곳에서도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그렇구나! 이곳이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 이구나!

긴장이 된다. 

 

자동차키를 두개 주는데,  보조키는 따로 보관하고, 리모컨 키로 운전해야 한다고 한다. 보조키 잃어버리면 변상해야 되니 잃어버리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보조키는 메고 다니는 가방에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시동을 걸어보니 엔진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어~ 뭐 이런 차가 있어....!!! 방음이 잘 된 차로구나!

 

우리가 받은 차는 차량이 출고 되어 이곳까지 온 거리가 12Km가 찍혀 있었다. 우리는 렌터가 아닌 <리스>를 했기 때문에 새차를 준다고 하더니 정말 새차를 주는 구나!

  

남자 직원은 에어컨 설정하는 법과 조작방법 몇 가지 알려주더니 가버린다.

 

나는 출발하기 전에 이것저것 만져보고, 라이트를 조작해 보기도하고, 의문이 있어 다시 그 직원에게 묻기도 하였다.

매뉴얼을 주는데 모두가 불어로 써 있으니, 알 수가 있나?

 

차를 새로 받았으니 걱정이 되기도 해서 주차장에서 차를 조금 운전해 보았다.

 한국에서 수동차를 오랫동안 몰아보았는데도 자신이 서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익숙하지 않아서겠지 하며, 자신을 가져본다. 우리가 빌린 이 차는 디-젤을 사용하는 수동이다.


자 ! 출발이다.

 

프런트에서 여기서 나가 조금만 가면 주유소가 있으니 거기서 기름을 채우라고 알려 준다. 우리는 거기서 기름을 충분히 채우고 출발이다.

 

이제 여행이 시작 되는 것이다.

 

얼마쯤을 가는데 시동이 꺼진다.

어~ 내가 얼마나 스틱(수동)을 운전했는데…….

 

우리가 빌린 후조 307SW는 디젤차이다.

클러치를 너무 빨리 떼었나 보다.

몇 번의 시동을 꺼 먹고 나니 차차 적응이 되어간다.

 

 오늘은 유럽여행 첫날  불우했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첫 번째 여행이다.

 

 

첫 번째 코스가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았던 시골 마을 오베르 수와르와즈이다.

 

 

 오베르 수와르와즈 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주차장에는 주말에만 선다는 벼룩시장이 섰다. 빵 냄새가 구수하게 코를 자극한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럴까 주차장에 빈자리가 있구나.

 

이게 웬 떡인가? “오늘은 주차해도 무료”라고 한다. 주차장 한 가한 곳에 주차하고 문이 잠겼나 재차 확인해보았다. 차가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다.

워낙 주차할 때 조심하라고 수없이 읽었었던 터라 긴장이 된다. 우선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자. 이것도 여행의 또 다른 맛이리라.

      

주변을 돌아보니 동양인은 우리식구 뿐이다.

시장 한쪽에서는 식료품과 빵, 과일을 파는 장이서고, 또 고흐가 당시에 그림소재로 삼았다는 작은 호텔 앞에서는 광대모양의 복장을 한 어릿광대가 사람들을 웃기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무엇이라 말하는지 전혀 모르니 더 머물 필요가 없구나.

 

고흐가 그림소재로 자주 그렸다는 그 호텔

 

  다음은 일요일에만 서는 시골 시장 풍경입니다. 

 간이 시장으로 빵 냄새가 구수하다

 장식용품도 있네요!

 여기서 빵냄새가 나는구나!

 

   

시간이 지체되어 발길을 돌려 고흐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하고 나선다.


아들 딸이 몇 사람에게 묻더니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한다.

정말 영어가 잘 안 통하는 나라가 아직도 있다니 내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 애들 뒤를 따라 좁을 골목길을 올라가는데 이 길은 고흐가 살았을 때의 길 그 대로라고 씌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 보이는 꽃이 무궁화 아닌가! 반가워 한 장 찍어 두었다. 

좀 더 걸어 올라가니 고흐의 그림 소재가 되었던 집들이 그대로 보전되고 있었으며,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어느 시골길 모습처럼 낯설지가 않다.


여기서 프랑스 사람들의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마을로 내려오는 길에서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가족사항  2남 1녀 중 장남

출생 : 1853년 3월 30일   

사망 : 1890년 7월 30일

출생지 : 네덜란드    

직업 : 화가, 해외 역사인물

 경력 

경력기간   경력내역

1863   ~   살롱 악선전 열림

1864   ~   제벤베르겐 기숙학교 입학

1869   ~   미술품 상점 점원

1877   ~   서점에 근무

1879   ~   바스메스에서 부목사 

1880   ~   브뤼셀의 미술학교 입학 

1882   ~   거리에 창부 시엥을 만나 모델로 씀 

1889   ~   정신병원 입원 

1890.1  ~  브뤼셀 그림 전시


기타작품 

         

분류  년도   상세내역 

미술    1890   붓꽃 

미술    1890   낮잠 

미술    1890   천둥치는 하늘밑의 들판 

미술    1889   빈센트의 방 

미술    1889   별이 빛나는 밤 

미술    1889   황금빛 밀밭 

미술    1889   셍폴 정신병원의 복도 

미술    1888   밤의 카페 

미술    1888   아를의 도개교 

미술    1888   해바라기 

미술    1885   감자 먹는 사람들 

유화    1890   붉은 포도밭


빈센트 반 고흐

가난한 빈민굴에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도 못 받고 그 이름마저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삶은 한 마디로 불행의 연속이었다. 화랑 직원, 초등학교 교사, 목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으나,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늙은 과부에게 구애를 하고 성병 걸린 창녀와 동거하는 등 기괴한 연애만 하다 그나마도 모두 처참한 실패로 끝났으며, 뒤늦게 동생 태오의 후원을 받아 그림 공부를 시작했지만 살아생전 그림이라고는 단 한 점을 판 것이 전부였으니 오늘날 전 세계에 떨친 그의 명성이 부질없게만 느껴진다. 이렇듯 우울하고 광기 어린 삶을 살던 고흐가 아주 잠시나마 행복을 느꼈던 곳이 바로 프랑스의 아를이라는 조용한 마을이다.


고흐에게는 멋진 꿈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화가 공동체를 이루는 일이었다. 아를에서 기력을 회복한 그는 노란 집을 사서 해바라기 그림으로 장식한 후 들뜬 마음으로 다른 화가들을 초대했는데, 그의 초대에 응한 것은 고갱 단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고갱마저 그와 다투다가 집을 떠나버리자 이에 큰 충격을 받은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라 술집여자에게 주는 기행을 저질렀고, 이때부터 불규칙적인 발작으로 고통 받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고흐를 너무나 사랑했던 태오는 쇠약해진 형을 극진히 보살폈지만 고흐의 발작은 나날이 악화되어갔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고흐는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까마귀가 있는 밀밭”, “오베르의 교회”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후 어느 날 홀로 밀밭에 나가 스스로 권총을 쏨으로써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결혼해서 아기까지 낳고 잘 살고 있던 테오마저 형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6개월 후 정신병원에서 숨졌다는 것이다. 테오의 시신은 오베르 수와르와즈    Auvers-sur-oiseol에 있는 고흐의 무덤에 나란히 안장됐는데, 이들 형제의 묘지가 너무나 초라하고 애틋해서 오늘날 까지도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심금을 올리고 있다.


“나의그림 그것을 위해 나는 나의 목숨을 걸었고 이성까지도 반쯤 파묻었다.” - 빈센트 반 고흐 자살하기 직전 남긴 메모 중 - 굴러라 유럽에서 옮김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았다던 방이 있는 집과 그의 흔적이 묻어 있는 곳에는 입장료를 받는다. 나는 슬쩍 들어갔다가 나왔지만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분위기의 길과 그가 그렸던 집들이 그의 그림(사진)과 함께 보인다.

 

 

                                               고흐가 그렸던 성당

그가 그렸던 성당도 보이고, 그 옆에는 성당을 그린 그의 그림(사진)이 게시판에 잘 걸려 있다. 성당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그렸을까? 성당을 그 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 속에서 다시 재구성해 그린 듯하다.

 

 

 

 

 

 

나는 과학을 하는 사람이라 사물을 사실대로 보려는 나를 발견한다. 저 건물을 보고 어떻게 이런 색깔로 표현했을까? 감탄하면서…….

잠시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성당은 중세 그 옛날의 모습을 그 대로 간직한 듯 화려하지가 않은 소박한 모습이다. 신자들은 그리 많았으며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들을 볼 수  있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러 지도를 얻어 투어를 시작한다.

 

골목 안쪽에 자리잡은 인포메이션 센터

이곳 마을에서 공중화장실이 있는 유일한 곳임-찾기 매우 어려움(계단 아랫쪽)

 

 

이곳 오베르수와르와즈 안내지도에 관광객을 위한 투어 순서를 번호로 매겨놓아 이곳을 관광하는데, 매우 편리하게 되어 있다.


성당 바로 맞은편에는 중세부터 있었을 듯 한 커다란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 높은 담 속에 숨어있다. 그 속에는 마치 침묵의 문처럼 보이는 커다란 대문을 가진 집이 보인다. 호기심에 차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개인의 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정원이 깊고 크다.


 그 큰 대문은 사용하지 않는 듯 보이는데,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그 문 쪽으로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나오고 있다. 성당으로 가시는 중인가? 산책을 하시는 것인가? 지금 이시간은 일요일 성당 미사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고흐의 무덤

 

 

“나의그림 그것을 위해 나는 나의 목숨을 걸었고 이성까지도 반쯤 파묻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 쪼이는 길을 조금 더 오르니, 그림에서 많이 보았던 넓은 밀밭이 펼쳐져 있다.  딸이 그림에 관심이 많은 터라 고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그의 그림의 세계로 동참해본다. 아! 그래서 이런 밀밭이 많은 소재가 되었었겠구나! 


햇볕이 따갑다. 해가 바로 머리위에 있는 듯 따가운 정도가 아니라 뜨겁다.

             밀레의 만종을 생각나게하는 광할한 밀밭 풍경이 보인다.

 

밀밭 길을 따라 조금 걸으니 그 동네에 묘역이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묘지가 아니라 공원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무덤이 나란히 누워있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결혼해서 아기까지 낳고 잘 살고 있던 테오마저 형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6개월 후 정신병원에서 숨졌다는 것이다. 테오의 시신은 오베르 수와르와즈    Auvers-sur-oiseol에 있는 고흐의 무덤에 나란히 안장됐는데, 이들 형제의 묘지가 너무나 초라하고 애틋해서 오늘날 까지도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의 심금을 올리고 있다.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의 묘를 방문하여 그의 넋을 기렸다.

여기에는 놓인 많은 편지와 메모 가운데서, 한글로 쓴 편지를 발견했다. “고흐 형”이라고 쓴 것을 보니 아마도 미술을 하는 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의 무덤 오른쪽에는 그의 동생 테오의 무덤이 함께 누워있다.

형의 유일한 격려자이었고 후원자였던 그마져 형의 죽음을 애도하며 따라 갔었던 그 동생 말이다.

 

잠시 영혼을 위로 하고서 발길을 돌린다.

 

 

  고흐가 즐겨 그렸을 그 넓은 밀밭에는 지금 대형 콤바인이 수확을 하고 있다.

 

밀밭 주변에는 그의 그림에서 보았을 듯 한 키가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서있는 농가들이 보인다. 그러나 매우넓은 들판인데 그림에서 본 듯한 나무가 몇 그루밖에 보이지 않는다.

높은 산은 별로 보이지 않으며, 나지막한 언덕에 푸름이 가득하다.

  

고흐의 무덤을 보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 화장실을 찾았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다. 할 수없이 이곳 사람들에게 물으니 프랑스 말로  설명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손짓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 건물에 있겠지 하며 종종 걸음으로 뛰었는데도,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구나. 

 

벌써부터 유럽의 화장실 문화에 혼이 나는 구나!

 

할 수없어 또 다른 분에게 물으니 다행히도 영어가 된다.

 

인포메이션에 가면 무료 화장실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 Information은 아까 가보았던 곳이었기에 발걸음을 재촉해보았다. 그러나 , 거기에서도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급한 김에 사무실로 찾아가니, 지금이 점심시간이라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다.

 

 

아! 이럴 수가! 낙심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계단 밑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아! 바로 여기로구나…….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여행 중 내내 느꼈던 점은 슈퍼의 영업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과 화장실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사람살 곳이 못되는 곳이로구나.

우리 대한민국처럼 좋은 나라는 없구나!

 

길을 바꾸어 아름다운 집들 사이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로 내려가 본다.

 중세와 현대가 어우러 살고 있는 삶의 공간이며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집들이었다.

 

큰길로 나오니 아까 성당 앞에서 보았던 한국인 신혼여행 부부를 다시 만났다.

반가웠다.

 

앞쪽에는 커다란 슈퍼가 보인다.


점심을 먹어야 하겠는데, 무엇을 먹어야 될까?

여행 첫날부터 레스토랑이라니……. 경비가 많이 들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에서 값싸게 먹자. 아직 배가 고프지 않으니....

 

 


슈퍼 다음 가게에는 빵집들이 몇 개 보이는데 그 중 한 가게에만 사람들이 빵을 사느라 빵집에 기다랗게 줄을 서있다.

 

매우 인기가 있는 집인가 보다. 내딸도 이곳에 줄을 서 빵을 사왔는데 빵 1개 뿐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일어난 해프닝……. 참고로 여기서도 영어는 사절(?)이다. 관광객이 그렇게 많이 오는 곳일텐데도 말이다.

 

리는 그림에서 본대로 대형슈퍼는 아니지만 비교적 큰 슈퍼에 들러 음료수와 빵을 샀는데,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

 

슈퍼 맞은편 쪽 석조건물이 있는 정원에는 다른 사람들도 점심을 먹고있기에 우리도 벤치하나를 차지하고  점심을 해결했다. 

 

비행기에서 아침을 기내식으로 먹은 터라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기에 “나는 됐다”고 하면서 서로 더 먹으라고 사양한다.


 사랑이 넘치는 우리가족…….            

여행 첫날 첫 점심을……. 그런데 너무 허술했던 것이다.

 

닭이 너무 비싼 느낌이 들어 사지 않았더니…….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곳 시장에서 파는 구운 닭 한 마리를 샀어야 했는데…….

 

프랑스는 한국에 비해 유럽은 닭고기가 매우 비싼 편이었음.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한 쪽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어릿광대의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하고 있다.  

 

                 호텔 앞 마당에서 광대가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구경꾼들이 많이 웃는 것을 보니......

 

불어를 할 수 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