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거사의 여행기/여행자료

[스크랩] 성곽의 꽃, 화성(華城), ④ 팔달문을 향하다.

백당 - 백세까지 당당하게! 2010. 5. 13. 10:57

 성곽의 꽃, 화성을 걷다.

四, 팔달문을 향해 걷다

 

역대의 걸작, 수원화성을 걸어 봅니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인류문화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임과 동시에

전세계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임을 세계인이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의 것, 조상들의 슬기가 그대로 담긴 성(城),

그 길을 지금부터 천천히 따라 걸어봅니다.

 

동일포루 가는 길

 

화성, 하면 먼저 떠 오르는 것이 세계문화 유산의 등재에 있다.

1997년 12월 4일, 나폴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 제 21차 총회에서 창덕궁, 불국사와 석굴암, 종묘와 팔만대장경판과 함께 등재 되었다. 등록기준은 첫째, 문화유산중에서 인류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어야 하는 것, 둘째한시대, 한 문화권을 통해 건축, 기념물, 문화환경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셋째, 소멸된 문명이나 문화전통에 대해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한 사례이거나 예외적인 증명이 되는 것등이 있다. 또한 보존의 상태가 열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들어 있다.

이 모든것을 완벽히 갖춘 화성, 그 바탕에는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있었다. 의궤가 없었다면 어쩌면 세게문화유산으로의 등재는 애초부터 불가능 했던 것이다.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2년 9개월만에 화성 쌓기가 끝이 나고, 이를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의궤란, 나라의 행사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여 간행한 책자를 말하는데, 주로 왕실의 결혼식이나 회갑연등의 잔치와 장례증의 절차를 적어 놓기도 했으며, 궁궐의 신축이나 수리가 있을때도 의궤를 작성한다.

화성성역의궤는 화성축성공사에 대한 모든것이 담겨있는 것으로 필사본이 아닌 금속활자를 이용해서 간행했다. 화성공사의 일정과 감독관의 인적사항, 건물설명과 함께 시용한 기계들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 놓았으며, 왕의 명령, 의식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 뿐이 아니다. 공사에 참여했던 장인들의 이름과 소요된 자재들의 수량, 공사비용, 수입과 지출의 내용까지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행궁은 파괴었으며, 성곽은 무너뜨리고 훼손시켰다. 한국전쟁 당시는 동문과 북문이 부서졌으며 화성은 쑥대밭이 되었다. 이후 1964년 부터 부분적인 수리를 하다가 1974년 정부의 국방문화유산 정비계획의 일환으로 5년여에 걸친 대대적인 수리가 이루어지는데, 이 때 결정적인 역할을 '화성성역의궤'가 맡게 된 것이다. 각 건물의 하나하나의 형태와 치수는 물론이고, 사용된 못의 수량까지도 명시 되어 있었다.

 

내용의 방대함은 물론이고,기록의 치밀함은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조선 최대의 건축종합서가 화성성역의궤가 된다.

화성성역의궤가 없었다면 지금의 화성은 전혀 다른 모습일수도 있었으며, 아니면 복원 자체가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세계문화유산의 화성, 그 실질적 가치는 바로 화성성역의궤에 있다.

 

창룡문을 떠나 팔달문으로 향한다.

화성장대의 맞은편 길, 가장 평탄한 지형을 가진 곳으로 동남각루까지의 길은 지루할 정도로 별다름이 없다. 다만, 성밖의 풍경은 생기 넘치는 수원의 모습으로 성곽과 빌딩의 모습이 묘하게 교차 되면서 걷는 길의 기분을 늦추게 하지 않는다. 봉돈에서 한참을 머물며 당시의 신호체계를 공부하게 되고, 튼튼하게 쌓인 봉돈의 매력에 한참을 빠져든다. 팔달문에 닿을때까지 길의 평탄함은 편하고 따분하지만 그 사이에만도 3개의 치와 3개의 포루, 봉돈과 1개의 각루가 자리한다. 가장 완만한 지형이기에 적을 방어하고자 하는 시설물이 그만큼 더 많이 들어섰음이다.

동남각루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화성 성곽에서 유일하게 끓긴곳의 문이 있으니 팔달문이다. 수원시장을 가로질러 사거리를 통과하면서 만나게 되는 거대한 문으로 화성의 남문에 해당하며 그 보존의 가치가 인정되어 보물 4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거리 한복판에 서있는 문인지라 올라보거나 가까이 할 수 없음이 아쉬웠으나 4차선의 도로 건너에서 만나는 팔달문의 모습만으로도 그 위용은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장안문에서 출발해서 이제 팔달문, 화성의 절반을 돌아 본 셈이다.

완연한 봄빛은 이제 햇빛과 더위와의 싸움이다. 남치에 오르기전 작은 가게에 들러 음료수 하나를 비우며 쉼을 한다.

 

 

동일치(東一雉)

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의 바깥으로 튀어 나오도록한 시설물로 성벽에 가가이 접근하는 적군의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다.

화성에는 총 10개의 치가 있다.

 

동포루(東砲樓)

화성내의 5개의 포루중 하나다. 동포루는 정조 20년(1796년) 7월 16일에 완공 되었다.

적군이 성벽에 접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로 치성의 발전된 형태로 보면 된다. 벽돌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공심돈과 같이 안을 비워 위 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봉돈(烽墩)

성곽과 맞불려 벽돌로 지어진 것으로 기존의 성곽양식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봉돈은 화성의 사방경계와 정찰임무를 수행하며,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낸다.

용인의 석성산 봉화와 서해의 흥천산 봉화에서 보내는 위험신호를 행궁에 알리는 역할릏 했는데, 봉돈은 화성행궁의 정면에 자리하며 이는 신호를 한번에 알아보기 위함이다.

 

봉돈에는 화두가 5개 있는데, 신호체게를 살펴보면

평시에는 봉수 1개를 올리며, 적군이 국경인근에 나타나면 봉수 2개, 국경에 도달했다면 봉수 3개를 올린다.

적이 국경선을 침범하였으며 봉수 4개를 올리며, 전투가 벌어지면 봉수 5개 모두를 올렸다.

 

동이포루(東二砲樓)

화성 5개포루 중 하나로 정조20년(1796년) 7월 3일에 완공되었다.

치성의 자리에 지은 목조건물로 초소와 군사대기소의 역할을 같이 한다.

 

 

화성 밖의 풍경

 

동남각루(東南角樓)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거나 군사들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비상시에는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는 곳으로 화성 내 4개의 각루중 남공심돈과 마주보며 군사를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팔달문(八達門, 보물 제402호)

화성의 남문이다. 북문인 장안문과 함께 화성을 남북으로 연결시켜주는 관문이다.

성문의 바깥쪽은 벽돌로 옹성을 쌓았으며, 옹성의 출입문이 중앙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원할한 물자의 유통을 위한 것이다.

옹성 바깥쪽으로는 12개의 현안을 내었으며, 성문 좌측 성벽에 공사 실명판이 있다.

팔달문은 화성내의 시설 중 가장 많은 공사 비용이 들어간 건축물이다.

 

 

 

 

 

by 박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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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길손의 旅行自由
글쓴이 : 길손旅客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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